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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섭 Jan 08. 2019

서울대 입시로 경험해 본 스카이캐슬

저 캐슬은 10년 동안 더 높아지기만 했구나

재작년에는 모두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를 읊조렸는데,
이제는 '예서 어머니'가 유행이다.


간만에 방에서 귤 좀 까먹으며 뒹굴거리고 있을 때였다. 거실의 TV에서 갑자기 'XX머릴 확 찢어버릴라'라는 충격적인 단어가 들려왔다. 아니 아무리 미디어 자유의 시대라지만 세상에 TV에서 저런 욕설이 나오다니. 부모님과 강아지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 파격적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회사에 가서 팀원들과 식사를 해도 온통 '스카이 캐슬' 이야기뿐이었다. 그 과묵하고, 진중하신 팀장님조차 이태란의 연기에 대해서는 한 보따리 '오늘의 논평'을 풀어내시니 이 '하늘 성'은 그야말로 '진-짜 유행'인 것 같다.


극중에서 점점 악(?)에 물들어가는 예서를 보면서 이제는 10년 정도 되어가는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애초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야간 자율학습을 밤 12시까지 하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에 (당사자는 그냥 토할 지경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코디네이터'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나에게 예서처럼 '김주영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일이란 아마 '학교 셔틀버스 태워 보내기'와 '자장가 불러주기' 정도였을 것 같다.


너무 무서워서 하버드 보내준대도 싫을듯


고등학교 생활 3년을 경기도 구석에서 '영겁의 자율학습'으로 보내다 보니 대치동이란 나에게 저 먼 발할라와 같은 '신들의 동네'였다. 뭔가 집에 엄청나게 돈이 많고, 공부도 무진장 잘하는 그런 애들만 모여있는 '프리미어 리그' 같은 곳. 학원비가 워낙 비싸다는 소리를 들었던지라, 나는 평생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수능이 끝난 어느 날 엄마가 나를 식탁 앞에 앉히셨다. '너 엄마가 어렵게 구했는데, 대치동으로 서울대 논술 학원 좀 다녀라'


강남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 서울은 종묘 한번 가본 게 다였다)  경기도 촌놈은 부모님이 쥐어주시는 30만 원짜리 학원 봉투를 들고 대치동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두근두근 대치역에 도착해서 지상으로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아파트가 후줄근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도 아니었던지라 무슨 한의원 이름을 되뇌면서 어찌어찌 학원을 찾아갔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열 평 남짓한 조그만 교실에 20명의 아이들이 들어가 앉았다.


처음 학원에 갔던 나는 먼저 학원비를 내러 갔다. 30만 원이 든 봉투를 카운터에 내밀며 아주머니께 설명을 들으니 이 돈은 딱 오늘 3시간 만을 위한 수업료라고 설명하셨다. 그러니까 실제로 학원비는 한 달에 150만 원 가까이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용돈으로 월 5만 원을 쪼개서 사용해 왔던 나는 고작 3시간 만에 내 반년치 연봉이 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고 '아니 무슨 대단한 비법을 알려주길래 저런 돈을 받나' 하는 충격에 빠졌었다.


그런데도 당시 다른 부모님들은 그 학원을 못 들어와 안달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입시 광풍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수업이 그렇다고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 수업 내용은 딱 스카이 캐슬에서 '김병철 아저씨'가 '독서토론 모임' 진행하는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엄청 학력이 높은 선생님 한분이 와서 '생각을 교정해준다'는 면이 특히 그러했다. 고전 읽기라는 장르마저 유사했으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 논술 수업은 스카이 캐에서나 있을 법한 교육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없었다


그날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 내가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인가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나는 별로 배것이 없어서 부모님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다만 재미있었던 것은 그렇게 살아왔던 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생활'이 무척 당연하다는 것이었다.(학원 앞에 서계셨던 그 분들은 아마 돈이 정말..정말 많으셨던 걸까) 나는 내가 그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모든 것이 당연해질까 봐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온 뒤 부모님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학원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영겁의 자율학습'으로 돌아가 어찌어찌 운 좋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스카이 캐슬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그때처럼 한 달에 수백만 원을 쓰며 학원에 갇혀있을 아이들이 정말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늘 드라마보다 반걸음 앞서 있으니 말이다. 저 캐슬은 10년 전에도 높았다. 그래서 나 같은 촌사람은 성벽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다. 10년이 지난 지금, 캐슬은 더 높아지기만 했나 보다. 그래서 저런 드라마가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겠지. 재미있지만 쓸쓸한, 기억하지만 추억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드라마가 하나 생긴 것 같다.


다음번에는 내가 대학에서 만난 '예서'들에 대해서도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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