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리는 기획 공유 이렇게 하세요
PM은 발표할 일이 많습니다.
문서를 쓰면 꼭 설명할 시간이 따라붙습니다. 대개 일주일에 적게는 1번, 많게는 4-5번까지 동료들 앞에서 기획공유(=발표)라는 것을 해야합니다. 프로젝트마다 수십 명이 함께 일하는 만큼, 어떤 날은 사람들 찾아다니며 설명만 하다 하루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공유가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떠드는데, 1) 사업기획자는 반대로 알아듣고, 2) 디자이너는 딴짓하고 있으며, 3) 개발자는 엉뚱한 지점에 꽂혀서 물음표를 띄웁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PM이 생각을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몇 가지 요령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공유를 시작하기 전 가벼운 대화를 나눕니다.
핵심은 동료들이 한마디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PM이 혼자 농담 한 개 건네고 웃는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 동료들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들을 준비만 합니다. 귀만 열어둔다는 뜻인데요. 기획 공유는 일방향 소통이 아니기 때문에 귀와 입 모두 열린 상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회의 시작 전, 동료들이 한 번이라도 입을 열어야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쉽게 치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실패한 기획 공유의 상당수는 이해가 안 되는 곳이 있는데 제때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이스브레이킹 과정은 동료들에게 ‘당신도 이 회의에서 발언자이고 언제든지 끼어들 수 있어요’를 무의식을 심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간단하게는 날씨 얘기를 해도 되고(와 오늘 너무 춥죠?),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스타일 변화를 물어봐도 좋습니다.(어 머리 자르셨어요?) 스몰톡이 어렵다면 일 얘기를 해도 됩니다. (혹시 지난번에 말씀드린 거 어떻게 하고 계세요?)
공유를 시작하면 즉시 1) 전체 구조와 2) 결론부터 말합니다.
듣는 사람의 집중도가 가장 높은 시간은 발표 시작 직후입니다. 영어도 어렸을 때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처럼 회의도 조기 전달(?)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흡수할 수 있는 시간에 중요도 순서대로 이야기합니다. 보통 아래 두 가지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첫째는 전체 구조입니다. 동료들의 머릿속에 오늘 발표의 지도를 그려 넣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집중도가 올라갑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발표를 들으며 퍼즐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느낌을 줍니다. 딴생각을 했다가도 쉽게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 큰 성인들도 내내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둘째는 결론입니다. 간혹 주니어들을 보면 공유 시 핵심을 뒤에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스티브 잡스식 아이폰 발표인데요. 이런 방식은 득 보다 실이 많습니다. 기획 공유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합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보다 한 가지라도 더 많이 납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장을 최대한 짧게 끊어서 말합니다.
모든 문장을 로봇처럼 딱딱하게 끊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되도록 끊을 수 있게 노력하자는 뜻입니다. 기획 공유를 하면 PM은 필연적으로 말이 장황하게 길어집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능적으로 부연을 끊임없이 붙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의도적으로 짧게 말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짧게 말하고 잠시 머무는 것도 좋습니다. 아래 2가지 발화 방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번 짧게 말하기]
앞으로 한집 배달 정책을 확대하겠습니다.
서초, 강남, 송파에만 한정된 서비스 지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합니다.
[2번 길게 말하기]
보시는 것처럼 저희가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한집배달 정책을 조금씩 확대해보려 하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서초, 강남, 송파처럼
강남 쪽 권역에만 한정해서 서비스하고 있었던 것을
다들 아실 것 같습니다,
이 권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세워보고 있습니다.
설득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들에게 1) 자신감 있고, 2) 똑똑한 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말을 되도록 짧게 끊으며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짧게 말하려고 열심히 노력해도 1번과 2번 사이 정도 수준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합니다.
PM은 발표 중에 동료들을 계속 둘러봐야 합니다. 특히 얼굴을 관찰합니다. 우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부터 찾아냅니다. 이들은 대개 미간을 좁히고 눈을 작게 뜨며 화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요. 귀를 닫고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겁니다. 이럴 때는 발표를 잠시 멈추고 ‘혹시 어떤 점이 궁금하세요?’ 질문합니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거나, 멍한 표정을 짓는 동료가 있다면 ‘혹시 지금 말씀드린 내용 이해되실까요?’라고 공손하게 물어봅니다. 발표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내 의견도 중요하구나 느끼게 될 때 회의의 몰입도가 올라갑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획 공유는 쌍방향 소통입니다. 혼자 떠들고 나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유치원 소풍의 인솔교사처럼 동료들을 한 사람씩 보듬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제대로 전달했는데, 저 사람이 집중 안 해서 못 들었고, 그래서 내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유치원 교사건, PM이건 용납될 수 없습니다.
공유 중간에 의도적으로 끊어갑니다.
PM은 10분에 한 번씩 발표를 의도적으로 끊으며 ‘여기까지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진 ‘일방적 듣기’의 집중력은 10분을 넘지 못합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혼자서만 떠든다면 청중이 딴짓 한번 안 하기 어렵습니다. 마이크를 의도적으로 넘겨주어야 합니다.
꼭 10분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기획안의 목차를 따라 끊어가도 됩니다. 예를 들어 배경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면 즉시 1) 사업목표나 2) 상세과제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한 번씩 눈을 맞춰봅니다. 대부분 기획안은 5-6개의 목차가 있고 공유도 1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상으로도 잘 들어맞습니다.
확보한 여유는 특히 평상시 말수가 적은 동료를 배려하는 데 활용합니다. 회의에 의도적인 장치가 없다면 보통 말하는 사람만 말합니다. 하지만 일부 동료들, 특히 개발자들 중에는 훌륭한 생각이 있으나 자리가 깔리지 않으면 말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지정해 의견을 구합니다.
비유의 힘을 활용합니다.
좋은 PM은 이야기꾼과 비슷합니다. 공유가 끝나면 업무가 아니라 재미있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조직의 분위기가 살짝 들뜰 수 있어야 합니다. 발표 중간에 비유를 조금 섞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공유 중 한 번은 화면이 아니라 PM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하면서 소위 썰을 풀어봅니다.
예를 들어 [악성리뷰 방지 시스템] 기획을 리뷰한다면 아래처럼 말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도입하는 [악성리뷰 방지 시스템]의 역할이 저는 [주차 차단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불법 주차를 허용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애초에 불법 주차가 불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죠. 리뷰를 작성하는 바로 그 시점에 부적절한 워딩이 있는지 사전에 차단하는 게 핵심이에요.
물론 과도한 비유는 해롭습니다. 비유는 마치 조미료와 같아서 너무 많이 넣으면 원래 음식의 맛이 사라집니다. 보통 가장 어려운 개념을 이해시키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험적으로 1시간 리뷰에 1-2번에서 최대 3번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되도록 동료들을 즐겁게 합니다.
그들의 호감을 얻어야 합니다. PM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들과 일합니다. 아무리 혼자 똑똑하고 준비를 잘했더라도 어느 정도 인간적인 지지가 있어야 좋은 성과가 나옵니다. 어려운 업무 얘기를 팀에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전에 실리콘밸리 취업 인터뷰 영상을 볼 일이 있었는데요. 꽤 인상 깊은 답변이 있었습니다. ‘면접관을 2번 웃겼는데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였습니다. 나를 즐겁게 한 상대에게는 인간적 호감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되도록 지켜주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PM은 최우선적으로 기획의 알맹이를 잘 만들고, 논리적으로 의견을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몰토크 단계건, 비유 단계건 조직원 모두 한 번쯤 피식 웃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단순히 ‘기획서만 잘 쓰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기획 공유를 잘하면 PM이 인정받습니다. 동료들은 1) 현장을 잘 알고, 2) 논리적이며, 3) 아이디어도 훌륭한 PM을 좋아합니다. 여기에 더해 PM이 청중을 납득시키는 카리스마적 요소까지 가지고 있다면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많은 존중을 얻습니다.
스몰톡하세요, 중요한 것부터 말하세요, 짧게 말하세요, 눈치 보세요, 자주 끊으세요, 비유하세요, 웃기세요. 이상 7개 원칙을 한 번쯤 생각하고 공유를 시작해 보세요. 기존에 하던 공유보다 조금 더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효과적인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