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삶이 너에게 위대하고 과분한 기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 이성의 방향이 잘못 되어 있는 결과일 따름이다.
오늘은 형편 없었다.
너와 나의 선을 지켜달라는 말을 세련되게 하지 못해서 상처를 줬고,
작은 돌부리에도 넘어지는 마음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내일 일도 모르는 주제에 먼 미래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부분 놓쳤다.
그러나, 비관은 오만이다.
낙관보다 더한 오만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넓고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높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과 죽음 이후, 그 무한과 무한 사이의 찰나에
그 넓고 깊고 높음을 피하지 않고 다녀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좀 더 단단해지고 벼려지고,
그러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초라하고 자주 형편 없지만,
매번 새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이고 싶다.
눈 앞에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비록 오늘 나는 형편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 당장부터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이 무겁고 축축할 때 촛불을 켜듯 <평화의기도>를 외워 본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오늘은 마음이 많이 슬펐는데
내 무례를 참아준 사람이 있고,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고마워하는 손편지도 받았고,
내 경솔함을 용서해준 사람도 있으며,
먼저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걸어오는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슬펐다면
그건 모두 온종일 내가 나만 들여다 본 탓이다.
평화의 기도는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로 끝난다.
줌으로써 받는 정도는 못 되더라도
받은 만큼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