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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Nov 09. 2019

대자연이 빚은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을 가다

히말라야트레킹ㅡ랑탕트레킹

  안나푸르나에서 라운딩,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마리드히말 트레킹을 마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약 3달간 그동안 밀린 일을 처리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사실 약 한 달간의 기간 동안 3가지의 루트를 돌며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생활을 하며 한동안은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잘 씻지도 못하고 불편한 일상인데다 그에 더해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산으로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 더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한국에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이상하게도 왠지 마음 속 한 편이 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네팔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평소 등반을 위해 장비를 사러 오시곤 하던 지인께서 세 명이 랑탕을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던 것. 난 두 말 않고 간 김에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까지 하기로 마음먹고 그날로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천진난만한 빗속에 네팔 아이들

  나는 일행보다 먼저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미리 지프를 준비하고 가이드, 포터와 함께 기다리다가 뒤늦게 도착한 일행과 공항에서 만났다.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오후 늦게야 사부르베시를 향해 출발하게 된 우리는 곡예 운전을 하는 지프 드라이버 옆에서 가슴 졸이며 7시간여를 달려 늦은 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비포장길을 키 위의 곡식처럼 흔들리며 온 탓인지 온 몸이 쑤시고 입맛도 없었으나 다음 날부터의 트레킹을 위해 주문한 프라이드 라이스를 억지로 삼키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본격적인 랑탕트레킹 첫째 날, 기대와는 달리 뜨거운 태양 대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깬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밥을 먹고 고어텍스 점퍼와 우비 등을 걸치고 출발을 강행하였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다 같은지 궂은 날씨에도 가랑비를 맞으며 세발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웃음을 짓게 하였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1시간여를 걷자 비로소 비가 그치고 하늘에 꽉 차 있던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설산과 거대한 수량을 자랑하는 계곡이 나타나 탄성을 자아내었다. 

랜드슬라이드를 지나 뱀부(1,970m)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서 본 풍경의 아름다움에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입맛이 없던 나는 비록 소스 맛이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주문 받자마자 바로 텃밭에서 따온 신선한 야채와 토마토가 어우러진 샐러드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맛을 느끼려고 힘들고 고된 트레킹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오늘의 숙박지인 라마호텔을 향해 또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아름다운 풍경만큼 오르내림이 심한 랑탕 지역에서 그나마 조금 평지가 많은 이곳까지 총 7시간여를 걸어 라마호텔 롯지에 도착하여 옹기종기 난롯가에 모여앉아 떠들썩하게 이른 저녁을 먹었다. 점심 먹던 롯지에서 사 가지고 온 신선한 네팔 야채에 일행 중 한 분이 준비해 온 쌈장을 찍어 먹었더니 고기반찬이 없어도 꿀맛이다. 다른 여행지에서는 되도록 현지의 음식에 적응하자는 생각이 강한 나임에도 트레킹 올 때는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소량의 소스 정도는 준비해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결심이 들 정도의 맛이었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캉진리

둘째 날 시작도 역시 비. 하지만 가랑비를 맞으며 약 1시간을 걸어 곰나초크를 지나 고라타벨라(3,020m)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도 잦아들었다. 습기가 많은 랑탕 지역은 봄에 특히 수시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하였다. 빗길을 걷는 힘든 트레킹으로 흘린 땀을 식히고 따뜻한 밀크티를 홀짝이며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비가 그친 후에 펼쳐지는 그곳에는 가는 길 곳곳에 네팔 국화인 랄리구레스가 잔뜩 피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과 확 트인 공간에 핀 랄리구레스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바로 못 지나고 사진 찍고 차 마시고 하느라 원래의 산행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8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목적지인 랑탕벨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셋째날, 오후가 되면 비를 뿌리거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네팔의 기후 때문에 평소보다 더 일찍 출발을 서둘러 문두(Mundu 3,550m)를 향해 길을 나섰다. 문두로 가는 길에 나지막한 돌담 사이로 짐을 지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자그마한 말과 나귀와 맞닥뜨렸다. 하늘에 뜬 이른 아침의 해가 역광으로 비치며 좁고 협소한 길을 실제보다 운치 있게 비추어 주었다. 이렇게 사람과 짐승들이 한 길을 이용해 통행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했으나 이제는 같이 가거나 땅에 널려있는 똥들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게 되었다. 

문두를 지나자 본격적인 설산이 코앞에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입구에 캉진곰파(kangin gompa 3,800m)의 모습이 안나푸르나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가 이른 봄이었음에도 웅장한 모습인 것을 보면 겨울에는 얼마나 그 위용이 대단할지 가늠이 되는 모습이었다. 일찍 도착하여 간단히 차와 빵으로 점심을 하고 작은 배낭을 꾸려 일행과 캉진리(4,350m-네팔어로 리는 꼭대기를 뜻한다)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캉진리는 캉진곰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뒷산처럼 생긴 곳이었는데 실제 고도차이가 1,000미터 가까이 나는 무시할 수 없는 산이었다. 

급속도로 높아지는 고도로 인한 급격한 일기의 변화로 중간까지 올라가서 낮게 내려오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이 가득하였다. 이렇게 안개가 심하면 자칫 내려오는 길이 위험해질 수 있어 가이드 캠과 다라의 말대로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내려와야만 했다. 나중에 롯지 주인에게 들으니 실제로 안개나 구름이 내려오기 시작하면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단다. 대자연 앞에서는 의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런 때인 것 같다. 


체르고리가 선사한 대자연 풍광

다음 날 대망의 체르고리(4,984m)를 위해 일찍 잠을 청한 나는 한 시간 남짓 자다 화끈거리는 얼굴과 심장의 심한 두근거림으로 잠을 깨었다. 이 느낌은 고산증세였다. 속이 답답하고 오늘은 전에 없이 얼굴까지 화끈거리고 열이 올라왔다. 잠자기 전 캉진리에서 햇볕을 많이 받은 얼굴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고산증세인 것 같았다. 깊은 잠을 자는 일행들에게 피해가 될까 해서 혼자 방에서 뒤척이다가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 비아그라를 꺼내 반으로 잘라 입안에 물과 함께 털어 넣었다. 몸이 천근만근 늘어지며 침대에 눕고만 싶었지만 불편한 몸을 질질 끌며 홀로 헤드랜턴을 머리에 끼워 쓰고 롯지 앞에 나가 한참을 서성거렸다. 무심코 바라본 하늘의 별이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 저 수 많은 별 중에 그리고 이 광활한 대자연 아래서 무한히도 작은 내가 고작 3,000미터 고도에서 쩔쩔매고 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다잡고 미리 넣어 둔 물병의 따또파니(따뜻한 물)를 홀짝이며 여러 번 나눠마시고는 내일이면 나아지기를 바라며 다시 잠이 들었다.

 네번째 날 새벽 4시, 날이 다 밝기도 전에 일어난 우리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전날 미리 주문해 놓은 찐 감자, 계란 그리고 보온병에 든 블랙티를 챙겨서 길 떠날 채비를 하는데 내 옆방에 있는 20대의 아리따운 유럽 아가씨(그녀는 아무래도 전날의 샤워가 말썽인 듯하였다)와 우리 일행 중 한 분인 유 선생님이 고산증세를 보여 숙소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걱정되는 맘이 굴뚝같았지만 늦어도 10시까지는 정상에 도착해야 위험하지 않다는 가이드 캠의 조언대로 캄캄한 새벽길을 서둘러 나섰다.

평지를 지나 자그마한 강물을 건너자 바로 경사가 급한 흙길이 나타났다. 전날부터 고산증세가 있던 나는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호흡을 하며 저 멀리 서둘러 가는 일행과 거리를 두고 걸었다. 경험상 오버페이스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아는 나는 조급한 맘을 한 편으로 밀어두고 멀리 점처럼 보이는 일행의 머리를 눈으로 쫓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이제는 흙길이 사라지고 눈길이 나타났다. 게다가 경사도 급하다. 이 때부터 급격히 오르는 고도에 손끝이 찌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을 따라 겨드랑이 부위까지 저리더니 숨쉬기도 힘들어 중간 중간 준비해 간 에너지젤을 꺼내 먹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이동해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곳에 내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도착하니 몸도 말을 안들을 뿐더러 한참을 숨쉬기 힘들어 십여 분을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내 평생 이렇게 힘든 때가 있었을까? 몇 년 전 혼자 뛴 마라톤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참을 앉아 숨을 가다듬자 그제야 주위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게 간 덕분일까? 힘들게 간 그곳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관이었다. 

한참을 풍경을 만끽하다 하산해 캉진곰파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오신 일행들이 차를 마시며 쉬고 계셨다. 그 틈에 끼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쉬고 있는데 새벽에 고산증세를 보이던 아가씨는 결국 고산증세가 심해 내려갔다고 하였다. 역시 고도 높은 곳에서의 샤워는 금기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하산 길 롯지 풍경들

정들었던 캉진곰파에서의 아름다운 키친(이곳의 주방은 동선대로 잘 정돈된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을 정도로 보기 좋았다)을 뒤로하고 가볍고 신나는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하산길이긴 하지만 잠시 고도를 내렸다가 라마호텔에서 하루를 숙박하고 오르막이 다시 시작되는 툴르사브르(2,250m)까지 가야한다. 

또 다시 흩날리기 시작한 안개비를 피해 마을 급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야채를 담뿍 뜯어주며 아들이 운영하는 롯지로 가라던 뱀부 아낙네의 말대로 주인아들이 운영하는 롯지에 짐을 풀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집안일을 하는 자매가 있어 안쓰러운 맘에 말을 붙였더니 주인여자가 쓴웃음을 짓는다. 물어보니 주인이 집에서 돌봐주는 자매란다. 내 보기엔 돌봄 받는 것은 자매들이 아닌 집주인인 듯 우리가 묵는 내내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자매들 모습에 눈물이 나려고 하였다. 돈독이 잔뜩 든 주인여자는 자신이 이러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협회에 있다며 저질의 그림책을 주더니 기부를 하란다. 과연 제대로 쓰여지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소액의 루피를 주었다. 롯지에서 떠날 때는 너무 마음이 안 좋아 공부 열심히 하라고 두 아이 모두에게 가지고 있던 필기도구와 쓰던 것이지만 수가 놓여있는 손수건 두 장을 주며 꼭 안아주었다. 부디 건강하길.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일곱 번째 날, 툴루사브르를 나와 무카르카까지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힘든 길이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잔디밭에 물기도 마르기 시작해 잠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간식과 물을 먹으며 쉬었다. 늦은 오후에나 되서야 비인지 안개인지 모를 하얀 공기와 함께 뛰어들 듯 라우레비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마치 방주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층구조 나무로 만들어진 이곳은 나무 틈사이가 다 벌어져 1층에서 피운 난로의 매운 연기가 방으로 들어오는 기이한 구조로 도저히 방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에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덟 번째 날, 라우레비냐(3,930m)에서의 눈 매운 추억을 뒤로 하고 고사인쿤드(4,380m)까지도 어제와 같은 긴 오르막이다. 여러 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힌두교도들의 성지 고사인쿤드로 출발하였다. 힘들고 긴 오르막에 올라서자 눈을 떼기 힘든 하얀 설산 사이로 파란 연못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곳에서 함께 간 일행들은 다른 코스로 하산하여 버스를 탄다고 하였지만 다음 EBC일정까지 여유가 있는 나는 다른 루트로 내려오기로 결정하고 헤어졌다. 

이제부터 가이드 캠과 함께 페디까지 가는 길. 캠은 당시 랑탕가이드 경험이 없이 일행에서 한국어 통역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 둘은 이제부터 감각적인 능력에 의존하며 이동해야했다. 사람 한명 없이 하얀 눈만 있는 곳을 가리라고는 이때는 미처 예상할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눈길에 길 물어 볼 사람하나 없는 길을 힘들게 걸어갔다.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날이 어두워졌다. 더럭 겁이 나기 시작할 즈음 저 멀리에 작은 롯지가 보여 반가움에 달려드니 문 닫은 롯지다. 급 실망하는 나에게 괜찮아요. 조금만 힘내세요 하는 가이드 캠에 말에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한 30여분을 더 그렇게 갔을까 어두컴컴한 롯지 하나가 나타났다. 그 곳에는 다행히 미국 여행객과 가이드, 포터들이 이미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아홉 째 날, 어렵게 찾아간 페디의 숙소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비교적 편안한 내리막길인 곱테(Gopte, 3.440m)에 들어서면 타레파티(Tahrepati, 3,690m)로 향하는 랄리구레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고도가 급해 오르락내리락 하기는 하였지만 꽃들이 만발한 모습이 우리나라 지리산의 연하선경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나이 많은 단체 트레커들을 이곳에서 많이 보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셔터를 누르고 탄성을 지으며 도착한 타레파티에 앉아 짐을 풀고 차를 마시고 있자니 어제 함께 묵었던 미국인 노인 세 분이 차례로 들어와 반가움에 웃으며 안아주신다. 그 사이 정이 든 모양이다.

열 번째 날, 타레파티에서 아침 일찍 오믈렛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전날 아름답다고 극찬을 하던 미국인팀 가이드 부자의 말을 듣고 원래의 일정과는 달리 멜람치온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곳에 아름다운 케이브와 마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랑탕의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인 EBC를 위해 또 하루를 보내고 카트만두로 가기로 하였다. 랑탕 다음에 펼쳐질 에베레스트는 어떤 곳일까를 상상해 보며 오늘도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이 들었다. 



 

<info>

랑탕 트레일

랑탕은 카트만두 북쪽으로 티벳 남쪽과 국경을 접하는 좁은 골짜기를 말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별명대로 웅장한 히말라야의 풍광과 다양한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어 네팔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랑탕 트레일은 표고 1.410m의 사부르베시(Syaburbesi)에서 시작해 3,870m의 캉진곰파(kanjin Gompa)를 돌아 다시 사부르베시(Syaburbesi)를 돌아 나오는 코스를 말하는데 이 트레일은 걷는 동안 숲과 계곡을 따라 티벳티안과 타망부족의 마을을 지나며 랑탕 리륭과 가네쉬 히말의 전망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트레킹 가기 가장 좋은 시기는 비가 내리지 않는 9월 중순부터 5월 중순사이가 좋다. 특히 10월 11월이 일기가 건조하고 시야가 맑아서 좋다. 하지만 12월에서 2월까지는 네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추위와 눈으로 힘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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