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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Nov 09. 2019

세계의 지붕이자 눈의 거처에 오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 트레킹 

히말라야(Himalaya)는 산스크리트어다. ‘히마’는 빙설(氷雪), ‘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으로 히말라야란 ‘눈의 거처’라는 뜻이다. 쿰부(Khumbu) 히말라야는 2,8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이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 붙인 것으로 네팔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다.


랑탕을 함께했던 지인이 에베레스트를 함께 가보자고 권했다. 그동안 안나푸르나와 랑탕 지역을 트레킹하며 에베레스트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던 터라 함께 가기로 했다. 지인과는 다음날 국내선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쿰부의 관문, 루클라

카트만두 → 루클라 → 팍딩 

다음날 아침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하여 입구의 경비에게 이티켓(e-ticket)을 보여주고 입장하여 부스가 열리길 기다렸다. 국내선을 타기 위해 새벽 같이 왔건만 직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네팔, 어느 누구도 언제 비행기를 탈지 알 수 없다. 기다림이 거의 10시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문화가 일상이 되어 이미 기다림이 습관이 된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싶었지만 불안해하시는 일행 분의 의견을 따라 중국인 일행에 섞여 헬기를 타기로 했다. 평생 처음 타 보는 헬기에서 운 좋게 조종사 바로 옆에 앉게 된 나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루클라에 입성하게 되었다. 루클라에 내려서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이유가 설명되는 좁고 작은 활주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날은 날씨가 흐려 비행기가 대부분 뜨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활주로 근처 롯지에서 셰르파를 만나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가이드 캠과 함께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항을 벗어나자 다양한 등산 장비를 판매하는 상점과 카페가 늘어선 거리. 길에는 해맞이를 하며 누워있는 검정색 개가 나를 처음으로 맞이했다. 50m 정도 지나 항공사 사무실을 지나치자 네팔 여자 둘이 긴 테이블에 앉아 입장료를 내란다. 입장료를 내자 관람권 비슷한 푸르스름한 종이를 준다. 그 종이를 받고 이동하다 얼마 안 있어 트레커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관리소가 나온다. 이곳 지리와 룰에 익숙한 셰르파는 이미 우리가 천천히 이동하는 사이에 앞서가서 허가서를 보여주고는 고갯짓을 한다. 먼저 천천히 가라는 뜻인가 보다.

처음 들어서며 느낀 그대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는 다른, 남성적이고 야성적인 느낌의 산세에 이곳에서 사는 셰르파나 여인네들조차 거칠게 느껴진다. 다른 지역과 달리 이곳 쿰부 지역은 주민들의 대부분이 티베트 셰르파들로 다른 지역보다 부유하단다. 롯지를 가진 사우지의 자녀들은 대부분 좋은 지역에서 유학을 하고, 롯지에서는 다른 아이들을 고용해 일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줄 모르고 사우지나 사우니의 아이들을 가련하게 여겼다. 티베트의 종교가 자비에 기반한 불교임을 감안하면 조금 아이러니하다. 부유한 티베트인들이 일구어 놓은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안나푸르나 쪽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롯지들이 입구부터 입을 떡 벌어지게 하였다


 얼마 후 자그마한 라마교 사원의 탑이 보이고 마니차와 마니석들이 보인다. 마니차는 불경을 넣은 원통으로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마니석에는 ‘옴마니받메흠(om ma ni pad me hum)’ 구절이 곳곳에 보였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하여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춘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종교가 없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그저 읽을 수 없는 상형문자로 보인다.


조금 더 걸으니 200∼300m쯤 되는 기다란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일종의 현수교로 강 양편에 묶어 놓은 굵은 쇠줄을 엮어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이어서 지날 때 많이 흔들린다. 꼭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는데, 이 길로 야크도 사람도 모두 지나다니곤 한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은 두드코시(Dudh Koshi)강이라고 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팍딩(Phakding)의 롯지에 도착할 때 조금씩 떨어지던 비가 저녁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이른 저녁을 먹고 다이닝룸에서 비를 걱정하는 내게 가이드는 내일이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이튿날부터 시작될 트레킹을 위해 일찍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이루려 애썼지만 새벽까지 함석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랄리구라스의 마을, 탱보체

남체 바자르 → 탱보체 

비 온 뒤의 깨끗한 하늘이 아침을 열어주었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디보체까지 가곤 하는데 평소 티베트의 불교 문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이 시기 랄리구라스의 서식지라는 탱보체에서의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긴 오르막의 끝, 마지막 발을 올려 올라선 언덕 위에서 생각보다 훨씬 넓디넓은 길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왠지 중국을 연상케 하는 붉은 문 모양의 곰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인 나를 보던 가이드가 이 곳의 인기가 많은 롯지는 서둘러 방을 잡지 않으면 방이 없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마음을 다잡고 롯지로 가 방을 잡고는 가방과 스틱을 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가이드의 안내로 곰파 안에 들어간 나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말을 찍어도 된다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내부 사진을 찍어버리고 말았다. 언어의 다름이 아닌 해석의 다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동안 보아왔던 곰파 중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숙박시설에 비해 이곳을 찾는 이가 많아 늘 붐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터들이 잘 곳이 없기가 일쑤라 곰파 주변의 몇 곳에 포터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할 수 있는 여인숙 비슷한 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그룹들과 달리 혼자 트레킹을 하러 온 내가 안쓰러운지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 중에서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 중 하나는 곰파 주변에 자리 잡은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의 군락이었다. 남체에서 탱보체로 향하는 오늘 산행 루트는 계곡과 흰 스카이라인 그리고 야생화 외에도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랄리구라스는 네팔의 국화다. 흰색, 분홍색, 빨간색등 보통 3가지 색의 꽃들이 피는데 한 봉오리에서 거의 10송이 이상 핀다고 한다. 한 나무에 수도 없이 많이 봉오리들이 피며 또 대부분 군락을 이루고 있어 모든 산이 알록달록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맑은 계곡, 랄리구라스 향기,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있어서인지 또 한 번의 급경사 언덕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고소보다 식욕

딩보체 → 로부제 → 고락셉 

보통 다른 트레커들의 경우 딩보체에서 두클라를 거쳐 로부제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나는 5,000m 높이의 고산 경험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는 가이드의 의견으로 별도의 고산적응 없이 고락셉으로 바로 가기로 하였다. 딩보체에서 로부제로 가는 길에도 전날과 다름없이 키 큰 나무 대신 작은 관목들이 주로 보였고 빙하에 밀려 쌓은 모레 지대를 이동하였다. 그래서일까 왠지 이국적이고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드는 풍경이었다. 그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가이드도 그런 것인지 갑자기 ‘옴마니받메흠’을 틀어준다. 우리나라에서 듣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주는 편안함이 느껴져 이날부터는 아침마다 틀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좋았다.

마지막 롯지가 있는 고락셉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자마자 하얀 구름이 내리깔리기 시작하더니 눈이 오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는 오후가 되면 일기가 불안정해지며 눈이 오거나 구름이 깔리기 시작하여 서둘러 오후가 되기 전에 숙소로 들어가야 한단다. 아마도 조금만 더 가려고 욕심을 부리면 자칫 길을 잃기 일쑤라고.

숙소 다이닝룸에 들어가니 고산을 호소하며 산소통을 잡고 숨을 쉬려고 애쓰는 유럽 여자가 있었다. 또 반갑게도 이곳에서 한국 분들을 만났는데 물속의 석회질 때문인지 아니면 고산 증상인지 설사를 계속 하시는 분이 계셔서 가지고 있던 지사제와 이온음료를 드렸다. 고산의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아마도 이분은 설사로 발현된 것 같았다. 나는 다행히도 고산 증세도 없고 식욕도 좋아 주문한 맛없는 스파게티에 한국에서 가지고간 고추참치 캔을 따 섞어 맛있게 먹었다. 식욕도 좋고 고산 증세도 없어 마음의 짐을 덜고 편안히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 칼라파타르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일찍 잠을 청하였다.


칼라파타르에서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다

고락셉 → 칼라파타르 → 고락셉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새벽 5시에 가이드가 문을 두드렸다. 이미 침낭 속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 있던 나는 겉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설 준비를 했다. 전날 미리 준비해 둔 포트의 따뜻한 물과 간식을 배낭에 챙겨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고락셉에서 3시간 정도를 천천히 호흡하며 추위와 싸움이 시작되었다. 호흡하는 것보다 추위와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 두터운 울 양말을 신었는데도 발끝에 감각이 없고 모자 밖으로 나와 있는 머리칼은 할머니처럼 하얗게 얼 정도였다. 올라가는 내내 추워하다 7시 정상에 도착해서야 해가 뜨기 시작했다. 전망대에 도착하기 직전,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과 얼음이 뒤섞인 돌을 밟고 미끄러져 정강이를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순식간에 두터운 양말을 뚫고 피가 많이 났다. 날이 추워서인지 피가 멎지 않고 한동안 계속되었다. 평소였다면 배낭 안에 상비약이 있었겠지만 작은 배낭만 들고 온 까닭에 주변 사람들도 약이 없는 상황.

잠시 앉아 준비해 간 차를 마시며 피가 멎기를 기다리면서 사진도 찍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 무섭게 춥더니 해가 뜨자 따뜻한 온기가 주변에 가득찼다. 이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나는 가이드가 알려주는 에베레스트(8,848m), 쿠모리(7,161m), 눕체(7,855m), 아마다블람(6,856m)을 볼 수 있었다. 칼라파타르의 일몰도 아름답다고 했지만 나는 칼라파타르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바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비록 다치긴 하였지만 칼라파타르는 꼭 가 볼 만한 곳이었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꼭 가볼 것을 권한다. 반면 고락셉 숙소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오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생각보다 조금 실망스러웠다. 내가 갔을 때는 중국인 커플 두 명이 준비해온 예복을 등산복 위에 입고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멀리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보이고 노란 텐트들이 군락을 이룬 것을 볼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볼 것이 없었다. 그래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갈 기회가 있다면 들러보기를 권한다.


이제는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함께 온 지인과 이별을 고하고 3패쓰를 도전해 보기로 했다.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네팔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힘들다는 생각보다 안도가 드는 건 왜일까? 오늘도 뜨거운 물이 든 물병을 껴안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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