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_ 쿰부히말 임자체 등반
히말라야의 만년설산, 임자체
임자체(Imja Tse, 6,189m)는 네팔 동부의 쿰부 지방 있는 산으로 히말라야산맥의 일부이다. 1951년 영국의 탐험가 에릭 십턴(Eric Shipton)이 이끄는 등반대가 딩보체(Dingboche)에서 바라본 이 산봉우리의 모습이 얼음바다에 뜬 섬과 비슷하다고 하여 아일랜드피크(Island Peak)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산 이름은 1983년 현재의 명칭인 임자체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일랜드피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4월의 어느 봄날. 랑탕국립공원을 다녀와 지인과 우연히 가게 된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3패스와 3리를 마치고 남체바자르를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는 나에게 가이드 상계가 빙그레 웃으며 영어로 물어왔다. “임자체 가볼래요?” 오늘 하산하면 에베레스트 마지막 날이구나 하고 속으로 아쉬움 반 기쁨 반이었던 내게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을 하는 이에게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나는 임자체가 어떤 곳이라는 상세한 정보가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과연 내가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날로 나는 남체에서 와이파이 카드를 사서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카톡 전화를 걸었다. 등정에 확신이 없어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남편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당신에게도 언젠가는 꼭 한 번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어”라며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날 루클라로 내려와 임자체를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20여일 묵은 때를 롯지 수준의 호텔에서 샤워로 씻어내고 찌든 때로 물든 빨래들을 맡긴 후 그날 임자체 지도를 샀다.
20여일 묵은 때 씻고 임자체로 향하다
지도를 보고 가이드와 루트를 상의하니 루클라에서 추쿵까지는 3패스와 루트가 겹치고 추쿵에서 갈림길 오른쪽으로 올라 임자체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루트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클라이밍 퍼밋을 받아서 추쿵까지 갈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지 않고 바로 등반을 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동안 3패스를 고산병 없이 잘 진행했으나 임자체는 높이가 6,189m에 달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높이였다. 게다가 고정로프를 주마라는 등강기를 사용하여 피크 정상까지 등반해야 할 정도로 상당히 난이도가 높다. 그동안 그 어떤 곳보다도 걱정이 많이 앞섰다. 도전과 한계를 극복해야 만이 정상에 설 수 있는 곳이었다.
막상 등반을 승낙한 남편조차도 중간 중간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크램폰과 기어 사용, 게다가 커다란 크레바스에 부실하기 그지없다는 알루미늄 사다리 이미지를 보여주며 생각보다 힘들테니 지금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시작이 반.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3패스를 함께했던 가이드와 루클라에서 클라이밍 퍼밋이 오기를 기다리며 다음 등반을 위해 말린 과일, 초콜릿 등 등반준비를 하였다. 사실 이때까지도 내게 무슨 일이 다가올지 모르고 마냥 기뻐하기만 했다. 다시 한 번 들뜸 반, 걱정 반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추쿵까지 이동했다.
추쿵에서는 규모가 큰 롯지에서 클라이밍을 위해 필요한 빙벽화, 크램폰 등의 전문장비들을 갖추고 각국의 클라이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또한 한국에 두고 온 하네스와 빙벽화 등을 사이즈에 맞춰 고르고 고락셉과 추쿵으로 갈라지는 갈림길까지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바라본 산들 중 임자체 베이스캠프의 모습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았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약 11킬로미터로 6시간 만에 걸어서 도착했다. 클라이밍 가이드와 함께 이동한 쿡포터는 도착하자마자 친절하게도 나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다이닝 텐트에 차려주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주마링 실전 연습
등산학교에서 배운 적은 있지만 사용한 적이 없던 내가 주마 사용법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자, 클라이밍 가이드가 베이스캠프 주변의 커다란 바위에 보조자일을 걸어 고정해주는 나에게 훈련을 해보라고 권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다 장비 또한 아주 오래된 주마로 익숙하지가 않았다. 가이드는 친절하게 주마링 기술을 알려주고는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 연습을 시켰다. 사실 필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긴 시간 몸에 맞지 않은 하네스를 착용하고 주마링을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반복 연습을 끝낸 후에는 다이닝 텐트에서 달밧을 먹고 일찍 잠들었다. 임자체는 해가 떠오르면 눈이 녹아 눈사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새벽 1시가 채 되기도 전에 정상을 향해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12시경.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깬 필자는 졸린 눈을 치켜뜨고 부어오른 몸에 가지고 있던 옷들을 죄다 껴입고 등반준비를 하였다. 옷을 다 입고 추쿵 롯지에서 렌트한 장비들만을 다시 패킹하고 클라이밍 포인트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에 긴 팔다리를 한 네팔 셰르파를 쫓아가는 것만도 버거웠다. 너럭바위 길은 중간 중간 커다란 바위들이 많은데다 경사까지 져서 가는 내내 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임자체 정상에 서자 히말라야가 발아래 펼쳐져 클라이밍 포인트에 도착하여 클라이밍 쿡포터가 싸준 점심 중
음료수 한 개만을 먼저 입에 넣었다. 그 당시 먹었던 망고 주스의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그만큼 내게는 그동안 겪어보지 않은 힘든 등반이었다.) 클라이밍 포인트에서 크램폰을 얼른 갈아 신고 장비 착용을 한 이후에 임자체 피크까지 늦어도 9시나 10시에는 도착해야 했다. 해가 떠오르면 유난히 강렬한 태양이 에베레스트의 눈까지도 금방 녹여 눈사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가는 내내 ‘웅웅’ 거리는 동물의 그것과 같은 무서운 소리가 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크램폰 포인트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둘러 장비를 장착하고 등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도사람 8명과 가이드와 포터가 두 조를 이뤄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가서 우리는 1명이니 먼저 가면 안 되겠느냐고 조용히 물어보니 괜찮단다. 그때부터 평소 유하고 착하던 가이드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빨리 가요”를 연발하며 재촉했다. 선두에서 서둘러 이동하지 않았으면 미숙한 인도사람들의 등반 뒤에서 정체되어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실제로 앞사람이 텐션에 걸려 주마를 못해 뒤에서 기다리던 이가 추위를 못 이겨 동상에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하네스를 장착하고 발에 잘 안 맞는 빙벽화에 크램폰을 장착하니 비로소 이곳이 ‘히말라야 피크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크램폰 포인트에서 옷자락에 걸리지 않도록 갈지자걸음 걷기를 약 30분. 드디어 고정로프가 장착된 곳에 다다르자 주마를 설치하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30분은 연습한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는 하네스를 하고 긴 시간 주마링을 하다 보니 통증이 온몸을 관통했다. 3, 4피치를 남겨뒀을 때는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였다. 내 귀에 “힘들면 내려가”라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였을까? 더 오기가 생겼다. 이를 악물고 엄습하는 고통을 이겨내며 피크 정상으로 향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힘든 곳인가? 과연 내가 끝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속에 어느덧 마지막 피치를 남겨두게 됐다. 통증으로 마지막 한 발이 좀체 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걸 알았는지 가이드가 내 몸에 매달린 로프를 당기어 정상으로 인도했다.
만국기가 나부끼는 정상에 다다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상의 협소한 공간에서 확보줄을 걸고 주저앉아 한참을 발아래 펼쳐지는 임자체 호수와 건너다보이는 산군들을 바라봤다. 저절로 감동의 물결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해가 떠오르면 눈이 녹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힘든 하산은 또 다른 도전의 시작
긴 시간 오름짓이 무색할 정도로 긴 시간의 하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주마링으로 내려가는 것을 경험해 보고, 확보를 옮기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필자는 렌트한 8자 하강링으로 하강을 시도하였다. 이 또한 어찌 보면 내게는 다소 무서운 경험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튜브형 하강기를 이용해 하강을 하였기 때문이다. 현실에 순응하여 한두 번 사용해본 8자 하강기를 설치해 내려오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우여곡절 끝에 긴 피치를 8자 하강링을 이용해 하산했다. 처음 크램폰과 장비를 장착했던 곳에 도착하여 쿡포터가 싸주었던 도시락을 펼쳤다. 간단한 요기가 될 수 있도록 샌드위치와 비스킷 하나가 전부였지만 너무 힘든 후라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겨우 망고 주스 하나만 삼키고 발을 옥죄고 있던 크램폰과 빙벽화를 벗어던졌다. 그 순간 얼마나 날아갈 것 같았는지, 아마도 신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고통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처음 새벽에 올랐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이 길이 그렇게 길었나?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긴 하산을 했다. 내려서다 뒤처지면 먼저 내려간 클라이밍가이드가 기다려줬다.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임자체 베이스캠프에 내려섰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놓은 쿡포터가 다이닝과 키친텐트를 모두 정리하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눕기만을 고대하며 도착한 나에게 이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가이드는 포터에게 먼저 내려가라더니 슬리핑텐트에서 잠시 눈을 붙이라고 권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얼른 텐트 안에 들어가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미리 꾸려둔 짐을 한편에 두고 기다리는 가이드와 함께 또 다른 긴 여정을 시작하였다.
당시 추쿵까지의 11킬로미터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유난히 길고 힘든 지루한 길로 남아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쓸 일이 평생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 집에 두고 온 가족도 보고 싶고, 내가 왜 이리 낯선 먼 타국 땅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또 다른 도전을 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