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같은 도미토리에 '낭만'이 머물 자리는 없다

해외 호스텔에서 배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도미토리의 본질

by 공간지휘자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20대 때 세계일주 할 때까지만 해도

나도 호스텔의 도미토리 단골 고객일 때가 있었다.

남들과 욕실을 함께 사용하고

여러 개 침대가 한 방에 놓인 도미토리 객실은

개인실의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나라의 여행자들이랑 어울리기 쉬워서

여행을 할 때 정말 자주 묵곤 했다.

어쩌면 도미토리가 여행에서 가장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 번 도미토리 객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한국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는 어땠을까?

한국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의 전형적인 풍경에

답답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 흔히 보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는

좁은 방에 어떻게든 욱여넣은 이층 침대 3~4개가 들어찬 공간이다.

흡사 '닭장'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 도미토리는 '싸게 잠만 자는 곳'이라는

호스트의 안일함도 작용한 듯 보인다.



왜 해외 호스텔은 '저렴한데도' 머물고 싶을까?


2년 전,

경제 지표로만 보면 우리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고 생각했던

베트남 호찌민에서 나는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호스텔의 도미토리는

내가 한국에서 보아온 풍경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순히 '잠만 자는 칸막이'가 아니었다.

넉넉한 층고 덕분에 침대 위에서도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여행일지를 쓸 수도 있었고,

암막 커튼을 치는 순간 그곳은 완벽한 '나만의 방'이 되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캐리어는 큼직한 개별 락카 속으로

깔끔하게 사라졌고,

침대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콘센트와 은은한 조명은

호스트가 게스트의 동선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 충격을 안고 다시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본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을지 모를

도미토리의 본질'에 대해 쓴소리 일 수도 있겠다.



495039629.jpg 베트남의 호스텔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했던 한 호스텔. 이 숙소의 도미토리는 아직까지도 내게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한국 호스트들이 당장 버려야 할 '효율'이라는 함정


도미토리객실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침대 개수 = 수익'이라는 단순한 산수다.

좁은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밀어 넣으면 하루 2-3만 원의 매출은 더 생기겠지만,

그 대가로 숙소의 '품격'과 '재방문율'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진짜 수익은 '여기서 자~'라고 던져주는 닭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게스트가 도미토리에 머물면서도 '존중받고 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설계에서 나온다.


도미토리 게스트일수록 샤워 공간과 화장실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다수가 이용하게 되는 도미토리의 욕실은

단순히 깨끗한 것을 넘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넉넉한 선반과

습기가 빠르게 빠지는 강력한 환기 시설이 있다면

게스트는 그 숙소를 좋게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 소음 대신 견고한 목조 프레임을,

얼굴에 바로 내리쬐는 직사광선 대신 손에 닿는 곳에 위치한

은은한 무드등이나 독서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비용의 문제라기보다 '배려의 깊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398527343.jpg 공용 욕실이라도 말 한 마디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쾌적함




도미토리의 수준이 곧 그 숙소의 실력이다

내가 12년간 숙박업을 하며 깨달은 진리가 있다.

가장 저렴한 객실인 도미토리가 훌륭한 숙소는

개인실 게스트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공간에 공을 들이는 호스트의 철학은

숙소 전체에 흐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도미토리는 게스트하우스의 꽃이고,

여행자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장소다.

그 소중한 공간을 더 이상 '닭장'으로 방치하지 말자.

해외의 사례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제는 게스트의 '기본권' 정도는 지켜주는

진짜 호스텔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낭만은 공간의 여유에서 나오고,

신뢰는 호스트의 세심한 마음씨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도미토리는 게스트에게 '기억하고 싶은 아지트'인가,

아니면 '탈출하고 싶은 닭장'인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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