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그간 내가 통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통영이 경남 지방에 있는 해안도시이며, 굴이 유명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 내가 통영에서 살게 되었다. 무려 세 달간.
어떻게 해서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지 잠깐 나의 백그라운드를 소개해보겠다.
2018년 2월. 서울에서 근무 중이었던 나는 남편을 따라 해외(브라질 : 더 궁금하신 분들은 "놀라지 말아요, 브라질이니까"라는 책 참고)로 나가며 휴직을 하게 되었고, 휴직기간 동안 나의 근무지는 연고 하나 없는 부산으로 옮겨졌다. 사실, 우리 회사의 본부는 울산에 있다. 원래는 서울이었으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2014년 울산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회사를 따라 울산으로 내려갔다. 수많은 서울러들이 갑자기 울산으로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울 근무를 간절히 원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때문에 서울 사무실은 정말이지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 곳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1년 후 서울로 가게 된 것도, 휴직 전까지 서울에서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기에 장기 휴직자의 자리는 서울에 있고 싶은 또 다른 이에게 넘어갔고, 나의 소속은 부산 사무실로 옮겨졌다. 그렇게 나는 복직 후 난생처음 부산에서 생활과 근무를, 남편과는 주말부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산으로 출근한 첫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없는 사이 통영에 사무실이 새로 생겼으며, 하필 그 사무실을 우리 팀에서 관할하고 있고, 때문에 팀에서 두 명씩 3개월 로테이션으로 통영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7월부터 9월까지 나의 통영 파견 근무가 확정되었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의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항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작가 박경리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 통영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지만 7월 1일, 통영 내 사택으로 이사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여 집과 사무실만 오갔던 나는 당연하지만 '조선의 나폴리'라는 통영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실은 오기 전부터 마음이 우울한 상태였다. 가뜩이나 부산-서울 주말부부도 체력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힘든 상황인데 이에 더해 통영이라니. 심지어 통영은 기차역도 없어 서울까지는 네 시간 이상 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다. 부산 집은 3개월 파견 후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지 못했다. 주인을 잃은 집에서는 월세가 그대로 나갔다. 가족은 두 명인데, 집은 세 채가 되었다. 물론 무엇하나 내 것은 없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영, 좋잖아"라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마음은 또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주말에는 남편이 통영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집과 사무실을 벗어나 통영을 "관광"하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있는 섬들 그리고 안개를 뚫고 나오는 선박들 등을 조망해보았고,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모시는 충렬사와 삼도수군통제사영의 관청이었던 세병관도 다녀가 보았다.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봉수골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의 아름다운 작은 서점, “봄날의 책방”에 가서는 통영 출신의 문인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소설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시인 유치환 등이 모두 통영이 고향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곡가 윤이상도 통영 출신이었다. 이곳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로이 숨 쉬는 도시였다.
난 얼마나 통영에 무지했던가. 도시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내가 실망스러웠다. 이틀간 통영 여행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 정도까지 모르고 오진 않을 텐데.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을, 이토록 멋진 곳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음에 기뻐해야 할 일을. 비로소 통영에서의 삶이 기껍고 즐거워진다. 가보고 싶은 맛집과 카페 리스트가 길어지고, 읽고 싶어지는 통영의 책들이 많아진다. 역시 어떤 것을 알고 나면 무언가를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가 보다. 갑자기 고삐가 풀린 것처럼 통영이 궁금해진다. 이제와 세 달이 짧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