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닐 컬렉션 001: New Order, 1981
70년대 말 포스트 펑크를 이끌었던, 지금까지도 특정 취향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여겨지는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은 1980년 보컬과 기타, 작곡을 맡던 밴드의 프런트맨 이언 커티스(Ian Curtis)의 자살로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는 상태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커티스의 거대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조이 디비전은 그의 원맨팀이 아니었고, 그들은 이듬해부터 버나드 섬너(Bernard Sumner)를 리더로 하는 새로운 밴드 뉴 오더로 활동을 재개했다. 뉴 오더의 음악은 깊은 우울의 에너지를 발산한 커티스가 리드하던 조이 디비전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는 뉴 웨이브 신스팝이 그것이다.
1981년 발표된 뉴 오더의 데뷔작인 이 앨범 <Movement>는 이후 80년대를 관통하며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되는 이들의 위대한 행보의 시발점이지만, 아직은 밴드의 전형적 사운드가 구축되기 이전의 상태에 있다. 기타-베이스-드럼의 전형적 록 밴드 라인업으로 연주되는 곡이 드물고, 신시사이저가 나서기 시작하지만, 조이 디비전을 뒤로 한지 1년 반 남짓한 시간 뒤에 만들어진 이 앨범의 사운드는 확연하게 과도기적이다.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고, 대부분의 곡들은 커티스가 불러도 위화감이 없을 것처럼 들린다. (커티스와 관련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암호 같은 5번 트랙의 제목 “ICB”는 “Ian Curtis Buried”의 이니셜이라고.) 그런 어정쩡한 변화가 어필하지 못했는지 발표 당시에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평가는 좀 더 상향 조정되어 있다.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이 앨범의 아트워크가 익숙할 텐데, <Movement>의 디자인은 80년대와 90년대에 음반 디자인을 중심으로 크게 활약한 스타 디자이너인 피터 새빌(Peter Saville)의 작품으로,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차용(appropriation) 전략을 절충 없이 구사한 급진적인 예시로 꼽힌다. 볼드한 선과 활자들로만 이루어진 매우 단순하고 투박한 이 디자인은 한눈에 보아도 80년대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사실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포르투나토 데파로(Fortunato Deparo)가 디자인한 포스터를 그대로 가져와서 글의 내용만 바꾼 것에 가깝다. 디자이너가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고 기존의 것을 훔쳐서 다른 맥락으로 활용하는 이러한 방식을 당대에는 표절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에서 뮤지션과 타이틀 이상으로 레이블이 강조된 것도 흥미로운데, 앞 면에는 “FACT.50 1981”이 뮤지션과 제목 사이에 같은 위계로 적혀 있을 뿐 아니라, 글자를 감싸는 선들이 위와 아래에서 각각 기울어진 F(팩토리 레코즈의 이니셜)와 (로마 숫자로 50인) L을 이룸으로써 팩토리 레코즈의 50번째 음반임을 암시하고 있다.
딱히 뉴 오더의 앨범 전부를 수집할 계획도 아니었고 <Movement>가 이들의 최고작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개인적인 바이닐 수집에서 첫 번째 대상이 된 데에는, 일종의 디자인 클래식 굿즈로서의 매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물론 음악적으로도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라는 꽤 다른 색의 두 밴드가 교차하는 순간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팬들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커티스 없는 조이 디비전으로 들리든 커티스의 유령이 함께 하는 뉴 오더 음악으로 들리든 말이다.
바이닐 컬렉션 #001
뮤지션: 뉴 오더 New Order
타이틀: Movement
발매일: 1981.11.13
장르: 포스트 펑크 / 뉴 웨이브
레이블: 팩토리 Factory / 런던 레코즈 London Records
제조국가: 유럽
버전 발매 연도: 2016
카탈로그 넘버: 2564-68879-7
바코드: 825646887972
기타: -
트랙 리스트
A1. Dreams Never End *
A2. Truth
A3. Senses *
A4. Chosen Time *
B1. ICB *
B2. The Him
B3. Doubts Even Here
B4. Denial
*는 추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