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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May 13. 2019

『어린 왕자』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도서]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만약 어린 왕자가 나에게 "양 한 마리만 그려줘"라고 하면 아마 난 그대로 얼어버릴 것이다. 왜냐면 나는 그에게 양을 그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린 왕자에게 양을 그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조종사처럼 몇 번이고 어린 왕자에게 양을 쓱싹쓱싹 그려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양을 그려줄 수 없는 데는 나름 중대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양을 똑같이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떻게든 양을 그린다 해도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그림을 본 다른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실망할 것다.

  그래도 만약 내가 양을 그린다 치면 일단 그림의 크기와 거기서 양의 머리와 몸뚱이의 크기가 얼마나 되면 좋을지 가늠해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갸름한 얼굴에 길고 둥근 주둥이와 그 위에 콧구멍을 그리고 오묘하게 생긴 눈과 귀를 그 것이다. 그다음, 두툼한 몸뚱이에는 네 개의 가는 다리와 발굽 꼬리를 그리고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전체를 복슬복슬한 털로 덮을 것이다. 섬세하게 그릴지 대충 그릴지 연필로 그릴지 물감으로 그릴지는 다시 어린 왕자에게 물어봐야겠지만 부디 연필로 대충 그려 달라고 했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 나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하는 것을 생각만 해도 벌써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에게는 어린 왕자가 철새 무리를 이용해 이 별 저 별 떠돌아다니며 만난 어른들의 모습이 모두 있다. 왕처럼 외롭기도 하고 허영심 많은 남자처럼 달콤한 말에 혹하기도 하고 술꾼처럼 자기모순적이기도 하고 사업가처럼 욕심이 많기도 하고 가로등을 켜는 사람처럼 잠이 부족하기도 하고 지리학자처럼 경솔하기도 하다. 나는 영락없이 어린 왕자가 생각하는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종사와도 비슷한 점이 있고 사람이 아닌 장미꽃이나 사막여우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것은 어린 왕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앞으로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여러 번 읽을 것이다. 그때마다 지금까지와 같이 매번 다른 감상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거기 나오는 사람들과 조금씩 닮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문학 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번역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

다른 별에서 온 어린 왕자의 순수한 시선으로 모순된 어른들의 세계를 비추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어린 왕자』. 그동안 프랑스어 원문에 대한 섬세한 이해,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력, 예리한 문학적 통찰을 고루 갖춘 번역으로 문학 번역에서 큰 입지를 굳혀 온 황현산. 그는 이 작품을 새롭게 번역하면서 생텍쥐페리의 진솔한 문체를 고스란히 살려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원전의 가치를 충실히 살린 한국어 결정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어떤 소설보다도 독자들에게 오래 기억되며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문장들로 가득하다. 역자 황현산은 그 힘의 근원을 저자 생텍쥐페리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문체라고 풀이했다. 꾸밈없는 진솔한 문체와 동화처럼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삶을 돌아보는 깊은 성찰을 아름다운 은유로 녹여 내 깊은 여운을 주는 이 작품을 보다 새롭고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다시 한번 음미하며 읽어 볼 수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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