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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May 12. 2019

『연필로 쓰기』소년 이승복

[도서] 김훈의 『연필로 쓰기』

  이 책은 김훈이 쓴 몽당연필이요 지우개 가루다. 나는 그것들을 본 적이 있다.


  <이승복과 리현수>


  초등학교 시절 나도 ‘소년 이승복’에 대해 많이 접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강원도에 침투한 무장공비에게 무참히 살해된 '소년 이승복'. 등교할 때 교문 앞에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던 시절, 나는 학교 안보교육 시간 선생님에게 '소년 이승복'에 대해 들었고 그 소년에 대한 영상 자료 보았고 노래를 배웠다. 선생님은 “너희들도 이승복 어린이처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겠지?”라고 물으면 나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이승복기념관도 학교에서 여러 번 견학을 갔었다. 그곳에는 소년 이승복의 짧은 일대기를 그린 그림과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나에게 나만큼 어린 '소년 이승복'에 대한 이야기나 전시물들은 무척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을 볼 때면 나에게는 어른들이 바라는 '이승복처럼...'이라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이 '끔찍하다'는 느낌만 우선 가득했다. 그곳의 작은 상영실에서 소년 이승복에 대한 짧은 영상물 봤던 기억도 난다. 마지막에 무장공비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소년 이승복'을 무언가로 내려찍는 장면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날 만큼 꾀 충격적이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소년 이승복의 동상이 있었는지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사임당 동상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승복’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웅변대회에서였다. 어느 날 선생님은 칠판에 ‘웅변대회’라는 글씨를 크게 썼다. “웅변학원 다닌 적 있는 사람 손 들어”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유치원을 입학하기 전에 웅변학원을 2년 동안 다녔던 나는 배운 대로 손을 번쩍 들었고, 그다음 난 그 웅변대회에 나가게 됐다.

  그 대회는 당시 유행이었던 반공 통일 안보 같은 주제의 교내 웅변대회였다. 웅변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원고지 다섯 장 분량의 대본을 써서 선생님에게 확인받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반공이나 통일이나 안보 그런 것이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것은 엄마의 숙제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엄마가 쓴 원고를 선생님에게 전달하고 선생님이 확인한 원고를 다시 엄마에게 전달하는 비둘기 역할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때 엄마가 쓴 대본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감해야 하고 씩씩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 ‘이승복’의 이름이 있었다. 끝에는 당연히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로 끝났다. 선생님이 여러 번 확인하고 엄마가 여러 번 수정한 끝에 대본은 통과됐고 나는 용케 그 대본으로 외워 웅변대회에 참가했다.


  생에 첫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연단에 섰을 때 내 앞에는 심사를 위해 앉아있는 선생님 여럿이 보였고 그 뒤에는 다른 참가 학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그 뒤에는 엄마와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너무 떨려서 거기까지 시선이 또렷이 닿진 않았다. 그것은 친척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며 노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나는 간신히 외운 대본의 맨 앞을 기억해내 웅변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절반쯤 했을까? 갑자기 대본의 다음 내용이 머릿속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전까지 했던 웅변 내용도 께름칙했다. 나는 웅변을 멈추고 선생님과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엄마는 다급하게 뭐라고 손짓을 했고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앞에 놓인 대본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냥 울어버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급히 자신이 보나의 대본을 갖고 나와 내 연단 앞에 놓아주며 다음 읽을 곳을 가리켰다. 나는 울먹이며 끝까지 그 대본을 보고 읽었다. 그래도 맨 마지막에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라고 할 때는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박수가 나왔다.

  놀랍게도 나는 6명이 참가한 그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6 등상에 해당하는 장려상이었다.

  그것이 나의 생에 첫 상이 었다.




연필로 쓰기 /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


김훈의 『연필로 쓰기』 출처 : 다음


70대의 김훈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산문의 진경!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는 우리 시대의 몇 남지 않은 작가 김훈이 스스로의 무기이자 악기, 밥벌이의 도구인 연필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신작 산문 『연필로 쓰기』. 집필실 칠판에 ‘必日新(필일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세 글자를 써두고 새로운 언어를 길어 올리기 위해 연필을 쥐고 있는 저자가 《라면을 끓이며》 이후 3년 반여의 시간 동안 써내려간 200자 원고지 1156매의 원고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가이기 전에 이미 탁월한 에세이스트였던 저자는 어느덧 칠순에 이른 스스로의 내면과 대한민국 현대사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장르를 완성했다. 가장 더러운 똥에서부터 《칼의 노래》에 미처 담을 수 없었던 인간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지난해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팽목항, 동거차도, 서거차도에서 머물며 취재한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몽당연필로 붙들어둔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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