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piriting Away, 2001)
만약 나의 이름이 정말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가장 먼저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난감해할 것이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물어본다면 나 역시도 난감해할 것이다. 어떤 신청서에도 나의 이름을 쓸 수 없을 것이고 병원도 갈 수 없을 것이다. 통장 전화기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터넷 본인인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특히 수학 시간)에 무언가를 시키기 위해서 이름 대신 내키는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럴 때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반 번호가 불리질 않기를 바라며 그 어느 때 보다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첫 번째 번호가 불리면 그 규칙을 빨리 생각해내야 했다. 날짜나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야 아주 잠시라도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해야 할 것에 대해 귀동냥을 하던가 하다못해 무얼 해야 할 것인지 미리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의 번호가 불리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나가 칠판에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예상이 빗나가 막상 자신의 번호가 불리지 않으면 긴장이 쭉 풀리면서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마음에 번졌다.
군대에 입대해서 처음 훈련병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정해지는 것이 각자 자신의 번호였다. 일단 그 번호가 정해지면 자신의 원래 이름은 싹 사라지고 꼼짝없이 훈련소에 있는 내내 그 번호로 불렸다. 훈련소에서 누군가 나의 번호를 부른다는 것은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의미했다. 특히 점호 때는 절대 조교의 입에서 자신의 번호가 불리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랬다. 조교가 자신의 번호를 부른다는 것은 십중팔구 점호 상태에 지적사항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러면 어김없이 조교의 고함과 얼차려가 날아왔다. 입대 1주 차 때는 아직 군대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아무리 꼼꼼히 준비를 해도 점호 때 항상 지적사항이 나왔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정비 시간과 청소 시간이 되면 조금 뒤 있을 점호에 자신의 번호가 불릴 걱정에 바짝 긴장했다.
어린 소녀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다. 다행히 그녀는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지만 그 이름이 절대 자연스러울 리 없다. 처음 치히로에게 그 세계와 여관의 모든 것이 많이 낯설다. 무엇보다 부모님 걱정이 가장 많이 된다. 하지만 금세 센이 된 그녀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온천여관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나간다. 그리고 결국 센은 그 온천여관에서 누구보다도 씩씩한 인간이 된다.
일단 이름을 잃어버리면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낯설고 잔뜩 긴장해서 곤두서게 된다. 무엇으로 자신을 불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만한 소리까지 들려서 오히려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움도 꼭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나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할 상황이 닥쳐서 평소에 없던 능력까지 끌어내야 할 때가 바로 그렇다. 센의 온천여관 생활이나 하루 17시간의 학교 생활이나 너무나도 낯선 군대 생활처럼 말이다.
예기치 않은 실수가 자꾸 반복되거나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있다. 정말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활인데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닌데 손대는 것마다 어그러지고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나쁜 일이 생긴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잘 생기지 않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럴 때 치히로에게서 이름이 살라진 것처럼 스스로에게 작은 부자연스러움을 만든다면으로 자신을 환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千と千尋の神隠し, 2001)
연출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이라기 루미, 이리노 미유
전세계를 사로잡은 환상적인 모험!
금지된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오게 된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린다.
“걱정마, 내가 꼭 구해줄게…”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은 치히로는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사상 초유의 미션을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