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포 선셋> 추억은 기억의 왜곡

[영화]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by 바리오

한강에서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마시면서 <비포 선 셋>을 봤던 때가 생각이 난다. 1시간 20분 정도 되는 짧은 러닝 타임 덕분인지 영화가 정말 재미있어서 인지 주변이 산만했던 것에 비해 꽤 영화에 빠져서 보았다. 우리는 내내 별말 없이 영화만 보다가 어느샌가 영화 속 두 남녀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참 행복해했다. 초저녁 지는 해는 한강을 붉게 물들여 마음을 감성적으로 만들었고, 13인치 노트북 화면은 어느 영화관 대형 스크린 못지않게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영화과 끝나고 우리는 제시와 셀린이 화면에서 나온 것처럼 한강을 걸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출처 : 다음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도전이다. 그것은 헤어질 때의 이유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 그리워서 이별의 이유를 막연한 기대 속에 덮어두고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자신을 설득한다. 다시 연인과 만나기만 하면 좋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 <비포 선 셋>에서의 셀린 말처럼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곧잘 과장하여 미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연인과의 행복했던 때를 더욱더 간절히 그리워한다. 지루했던 시간들은 어색하게 외면한 채 말이다.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출처 : 다음


사실 맨 처음에 쓰고 싶었던 것은 셀린이 동유럽에 갔던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소비 강박이 사라졌을 때 평온해짐을 느꼈다고 했다. 온통 잿빛 도시였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맑아졌다고 했다. 나는 순간 동유럽 감독들의 영화가 떠올랐다. 그들의 영화는 화려하거나 세밀한 묘사 없이 단조로운 표현만으로 더욱 선명한 감동을 전달할 때가 있다. 아마 셀린이 그곳에서 느꼈던 느낌이 내가 동유럽 영화를 봤을 때와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출처 : 다음


나는 다시 한강에서 영화를 봤던 그때를 차근차근 떠올려봤다. 정말 그때 그리도 좋았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맥주다. 그때 편의점에서 산 맥주가 턱없이 부족해 아쉬웠다. 그렇다고 영화를 멈추고 다시 맥주를 사 오자니 흐름이 끊겨 싫었고 무엇보다 너무 귀찮았다. 그때 한강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좁은 화면 너머에 사람들이 다니는 것이 계속 시야에 들어왔고, 그것이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영화를 보는 자세다. 앉아서 영화를 보기에는 노트북 화면이 너무 낮아서 불편하고 그렇다고 누워서 보자니 자꾸 잠이 와서 우리는 계속 자세를 바꾸느라 부스럭거려야 했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1995) 출처 : 다음


나는 셀린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과거의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처음에는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도 다시 그 기억을 천천히 생각해보면 좋지 않았던 부분이 분명히 있다. 기억의 깊은 되새김질이 없다면 미련하게 '예전처럼...'이라는 기대를 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이런 기억의 왜곡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것 덕분에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과거를 왜곡해서 기억하지 않고 그야말로 사실대로 기억한다면 그것대로 큰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발라드 노래나 로맨스 영화의 대부분은 참 궁상맞은 한 소리일 것이다. 그러니 추억한 다음 뭔가 행동하기 전에 기억은 하자. 추억은 왜곡된 기억이라는 것을.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연출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출처 : 다음


6개월 후의 약속
9년의 기다림 그리고 바로 오늘

오랜만이야, 사랑!

비엔나에서의 꿈같은 하루, 6개월 후의 어긋난 약속…
그리고 9년이 지난 오늘, 파리에서 다시 마주한 제시와 셀린느. 서로 같지만 다른 기억을 간직해 온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감돈다.

“그날 당신이 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린 것 같아”
그렇게 그 간의 진심을 서로에게 털어놓는 사이, 해는 저물고, 또다시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처음보다 짙은 그들의 두 번째 사랑,우리는 반드시 지금을 기억하게 될 거야.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출처 : 유튜브 PLAYYMOVIE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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