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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Mar 19. 2019

『아픔이 길이 되려면』미세먼지가 '길'이 되려면

[도서]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지방 소도시에 사시는 엄마는 아무리 미세먼지가 심해도 어지간해선 마스크를 쓰지 않으신다. 아니, 몇 년 전 병원에서 메르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셔야 했을 때를 빼곤 제대로 마스크를 쓰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나가시는 엄마를 붙잡아 마스크를 쥐어드려도, 영 답답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으신다. 뉴스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굉장히 높다고 해도, 스마트폰에 방독면을 쓴 검은 알람이 떠도, 미세먼지 비상 저감조치가 발령되었다고 안전 안내 문자가 와도 항상 “난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시며 그냥 넘겨버리신다.

  엄마가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근거는 굉장히 직관적이다. 먼 산이나 파란 하늘이 보인다는 것이.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하늘이 파란 날은 종종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 차라리 냄새로 공기의 질을 판단하셨으면 좋겠지만, 뭔가 하고 싶은 상황에서 부정적인 신호는 곧잘 무시된다.

  마찬가지로, 애초에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문제와는 상관없이 당연히 '공기가 맑다'다고 생각한다. 이렇다 할 공장이 없고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청정지역이라 자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미세먼지는 지역에 상관이 없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공공장소 이곳저곳에 마스크를 비치해놓아도 가져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날의 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 수준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WHO(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에서 '매우 나쁨'에 해당하는 미세먼지 농도 146 ㎍/㎥ 일 때의 하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다루고 있는, 그동안 뉴스에서 봤던 대표적인 '직업병'과 소수자의 의료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사회역학 연구 사례를 보면서 한 가지 섬뜩한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미세먼지'라는 아픔이 책의 제목처럼 '길'이 되려면, 그러니까 책에서 언급한 사례처럼 연구되어 실질적인 해결책이 제시되려면, 그 사례들처럼 치명적인 문제나 증상이 만연해지고 난 다음에야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1995년 시카고의 폭염이나 삼성반도체 직업병,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처럼 많은 사람이 목숨을 읽고 나서야 이 끔찍한 미세먼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마스크라도 좀 잘 쓰고 다니셨으면 좋겠다. 먼 산이나 하늘을 보고 미세먼지를 가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사방에서 알리는 미세먼지에 대한 경고를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식인 나로서는 역시 역부족이다. 마찬가지로 시골 노인분들에게 모르는 젊은이의 말은 아침에 우는 수탉 소리보다 더 소용이 없다. 그러니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노력이 어떤 식으로든 있었으면 좋겠다. 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애써 길을 내야한다. 최고 시청률의 아침드라마 비련의 여주인공이 심한 인후염을 앓게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사회적 경험은 어떻게 우리 몸에 스미고, 병이 되는가?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겪는 차별, 혐오, 고용불안, 재난과 같은 사회적 폭력, 사회적 상처 역시 몸에 스며들어 병을 유발한다.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인 사회역학의 눈으로 질병을 바라보며 사회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사회역학의 여러 연구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보통 그 대답으로 먼저 의료기술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의료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이 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의료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분명 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이를 근거로 저자는 최첨단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수준에서 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게 가능해지더라도, 사회의 변화 없이 개인은 건강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방공무원, 쌍용 해고노동자, 세월호 생존 학생, 동성애자 등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들을 합리적 근거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로 돕는 공동체 문화가 심장병 사망률을 낮췄던 로세토 마을의 사례, 사회적 연결망이 기대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사회역학의 연구 사례 등을 소개하며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 함께 고민하게 하고, 모두 함께 건강하기 위해 공동체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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