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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Mar 23. 2019

<마르셀 뒤샹展> 용기: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마음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서울) 마르셀 뒤샹展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불과 10년 만에, 그러니까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을 발표한 그해 마르셀 뒤샹은 회화 기법을 그만두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발달된 과학 기술에 예술적 영감을 접목시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에게 사각형의 캔버스는 너무 비좁았던 것이다. 그 뒤 뒤샹은 레디메이드라는 장르를 탄생시키고, 체스 선수로 전향한고,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내고, 20년 동안 자신의 마지막 예술적 선언인 <에탕 도네>를 완성한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2) / 1912, 캔버스에 유채, 147x89.2cm / 필라델피아 미술관


  전시회를 통해 본 그의 삶은 창조적 도전의 연속이었다. 한시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의 용기가 감탄스러웠다. 나도 그처럼 하고 싶은 것에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들 중 대부분은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고, 이하게 보일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마르셀 뒤샹 스스로도 자신의 도전에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러니까, 자신의 도전이 스스로에게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여겨졌을까? 왠지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고, 체스를 잘 두고 싶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고,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도네>처럼 자신의 작품을 몽땅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보관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것들을 하고 싶었을 뿐, 그러기 위해 스스로가 용기라고 여길만한 것을 발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도전에 차마 범접할 수 없는 내가 보기에 용기 있어 보일 뿐, 스스로에게는 그저 좋아서 하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마치 새를 손등에 얹고 있는 사람이 용감해 보이고, 메뉴를 척척 고르는 사람이 용기 있어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척척 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마르셀 뒤샹의 <샘>과 <자전거 바퀴>에 자극을 받아 한 가지 용기 있게 고백을 하자면, 난 하이힐과 그랜드 피아노를 굉장히 좋아한다. 자연의 것과 비슷한 유려하고 절묘한 곡선과 비대한 몸을 떠받치고 있는 가는 다리, 대칭과 비대칭이 공존하는 형태는 그것들을 훌륭한 예작품으로 보이게 만든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그 두 가지 물건을 집안 어딘가에 장식해놓고 싶다. 이 전시회의 도슨트가 말한 개념미술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취향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무어라 명명한다 해도 특별한 예술적 가치가 생기진 않겠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언젠가는 꼭 갖고 싶다. 아니면 미래의 와이프에게 선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르셀 뒤샹展

기간 2018년 12월 22일 (토) ~ 2019년 4월 7일 (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 전시실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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