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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Dec 24. 2020

정량적 데이터로 봤을 때의 육아

그냥 내 경험과 생각

어쨌거나 나는 아이를 낳았고, 열심히 키우고 있다. 아기는 정말 무럭무럭 자란다. 여름날의 숲처럼, 콩나물에 물을 부은 것처럼 매일 보는 내가 봐도 자고 일어나면 한 뼘씩 자라 있고, 어제 하지 못한 개인기를 오늘 내 앞에서 시전 한다. (내 아들은 지난주부터 블록을 쌓기 시작했다!) 아무튼 육아는 정말 힘들지만 놀라움의 연속이다. 아기가 커나가는 과정, 그것을 보는 희열과 기쁨.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조금 어른스러워진 나의 모습이 밝게 빛나다가도.. 다시 또 놀란다. 예상치 못한 피로와 고단함 때문에. 


너무 빨리 자라는 아기


정말 피곤했다. 하루만 말끔히 자고 일어나면, 이 피로가 풀릴 것도 같은데. 아니. 반나절만이라도, 아니 두 시간이라도. 아기는 커가면서 한 번에 잠을 자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지만, 그만큼 나의 수면시간이 길어진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아침과 점심에는 육아에 올인하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나가고, 다시 저녁부터 아기가 자기 전까지 또 육아를 한다. 아이를 남편이 재우면 그때부터 내 시간이 생기는데, 오후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자정은 훌쩍 지나있다. 아이는 또 얼마나 일찍 일어나서, 멀쩡한지. 일어나서 말똥거리는 아이에게 나는, "좀 더 자..."로 아침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몸이 힘드니, 내 옆을 든든히 지켜주던 남편마저 미워지기 일쑤였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가 적군이 된 것 마냥, 누가 더 일을 많이 했으며, 누가 더 피로한 지를 줄줄이 읊어대며 서로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모두 자영업을 하고 있기에 일반 직장인보다는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육아라는 라운드에 투하된 우리는 적정한 육아 시간과 일의 시간을 배분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일도 육아도 이도 저도 되지 않고, 

남편과 나는 적군이 되어 서로를 쏘아붙이고, 

아직도 출산 때문에 퉁퉁 불어 있는 몸을 보며 생각했던 부정적인 생각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 제일 크게 자리 잡았던 생각은 바로 "손해"였다.  


회복되는데 더딘 몸. 늘 부족한 시간, 엄마라는 마음의 부담감. 이런 게 모두 나에게 손해처럼 느껴졌다. (엄마라는 마음의 부담감은 어디서는 아이의 1차적 보육자는 엄마라고 은연중 생각하기 때문인데, 맞는 사실이면서도 인정하기 또한 싫다. 아빠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튼, 이 와중에 어떤 유튜버가 올린, 절대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하는 영상을 보고야 말았다. 뭐 아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기엔 여자들이 너무 똑똑해져 버렸고,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썰. 문제는 그 유튜버는 아직 육아 경험이 없는 것 같던데. 상상의 육아를 그렇게 입 밖으로 내뱉다니. 그의 말은 맞고도 틀렸다. 존나 빡쎈건 사실이다. 


줄고, 줄어든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알지 않나. 육아 휴직을 마친 여성이 다시 회사를 들어갔을 때의 시선. 1년을 다 쉬면 대단하다, 조롱하면서 일은 일대로 다 하고 진급에 누락된 선배들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아줌마를 하대하는 온갖 표현들과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없어지기 일쑤인 나의 자아. 도처에 도사리는 경력 단절. (난 그 말이 정말 칼처럼 무섭다.) 그러기엔 요즘 여성들은 너무 세련되고 멋지다는 거다. 


그런 말들의 진실성은 데이터가 증명한다. 갈수록 팍팍한 삶이라는 증거, 그런데 이 데이터들에 빠진 게 있다고 본다. 일거하자면 그들이 알턱이 없는 이런 것 들이다. 아이가 누릴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간절함. 그 세상을 구성하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는 나의 마음과 그 노력. 아이를 통해 단단히 되는 가족애. 아이를 통해 나를 반성하는 시간. 날로 성장하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 


실제로 나는 계속해서 걸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의 집념과 끈기를 배운다. 엉엉 울었다가도 금세 웃음을 보여주는 아이에게서는, 감정을 훌훌 터는 방법을 배운다. (이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좋아하는 걸 먹으면 된다.) 


데이터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기를 통한 행복감을.

물론 그 행복은 기꺼이 나의 고단함을 지불해야 얻어지는 행복이긴 하지만. 


일단은 빨리 재우고, 넷플릭스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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