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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미 May 01. 2020

출산 일기 (1)

남들 다 하는데 나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출산을 했다. 무려 25시간의 진통을 하고 제왕절개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 웃지요) 1박 2일 동안 분만장에 있어 본 사람은 안다. 내가 진통을 시작한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산모들의 출산 신음을 들어야 하는지. 


전날 나는 남편과 넷플릭스로 <내 이름은 돌로마이트>를 보고 깔깔대며 새벽 2시에 잠들었다. 남편이랑 수다를 떨며 침대에서 아기 이야기를 한창 신이나서 했는데, 잠에 든지 얼마 되지 않아 양수가 터졌다. 양수인가? 하면 양수라더니, 정말로 나는 양수를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양수가 새고 있는 이 와중에도 나는 입을 옷을 골랐다. 가만있어보자, 아기를 낳고 바로 조리원에 가야 할 테지. 추운 겨울이니 산후풍에 걸리지 않으려면 두꺼운 패딩과 기모 레깅스를 신어야겠어, 하면서 여유롭게 미리 챙겼던 수트 케이스의 지퍼를 여미고 밖으로 나왔다. 양수는 계속 졸졸 흐르고 있었다. 아산병원까지 가는 그날 밤의 고요함을 기억한다. 한강의 물은 차분했고, 그 위를 비추인 노란 불빛들은 영롱했다. 곧 아기를 만나게 된다니.


그렇게 1월 7일 새벽 5시에 아산병원 분만장에 들어갔고, 유도 분만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정말로 하루 종일 짐볼도 타고, 힘도 주고 했는데 아무튼 골반은 열리지 않고, 허리만 무진장 아파왔다. 의료진은 하루 밤을 기다리자고 했다. 네? 기다리자고요? 기다릴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어이없었지만, 무통 천국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그게 기다려졌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오늘은 글렀으니,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무통 주사를 착착 쏙쏙 맞으면서 다운타우너 햄버거를 시켰다. 그렇게 찾아온 밤. 나 말고 모든 산모들이 줄줄이 아기를 낳았다. 응애응애 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누군가의 신음과 절박함도 들리는데도, 나는 그저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진통만이 계속되었다. 낳긴 하는거지? 그러자마자 이른 새벽부터 몸이 뒤틀리며 아팠다. 이게 진짜 진통이구나. 와씨. 

그래도 대존맛버거 다운타우너

아무튼 아침이 되도록 힘을 주고 계속 내진을 했다. 유도를 하지 않아도 이제 골반이 열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남편과 나는 정말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서, 조리원의 라마즈 호흡법 수업까지 다녀왔는데, 라마즈는 개뿔, 그냥 숨이 안 쉬어졌다. 


연습도 했다, 라마즈 호흡법


숨을 못 쉬니 산소통을 매달았다. 그래도 힘을 주고 악을 썼는데, 이젠 아기가 하늘을 보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기다리면 다시 돌지 않을까요? 하고, 안경을 올리며 말하는데, 어떻게 참으라고요!!!!! 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내 옆에서 다이제 초코를 오독오독 씹고 있었고, 코카콜라 캔을 탁! 따고 있었다. 탄산의 청량감을 즐기면서 미간을 찌푸리며 나보고 힘내라고 했다. 맨 정신이었다면 저걸 가만 두지 않았을 텐데, 그러기엔 내 몸의 산소가 바닥나고 있었다. 의료진은 산모가 숨을 못 쉬니 결국 배를 가르자고 했다. 그로부터 수술실로 들어가는데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소리를 꽥꽥 질러댔고,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취약이 들어간다고 했다. 소리도 없이 마취약이 온몸에 퍼졌다.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기쁨, 그것도 잠시 응애응애 소리가 들렸다. 


낳긴 낳았구나, 내가 아기를. 아기의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처음에 낳자마자 엄마 냄새를 맡게 하는 거예요." 내 옆의 간호사는 내 이마에 대고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몽시로거니 첫날


반가워, 네가 나의 아기구나. 

그렇게 출산을 했다. 나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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