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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Oct 26. 2023

어떤 서사

음쓰를 버리다가도 이야기 하나를 줍게 된다

낮에 비 그쳤는데 공중에 안개 자욱해 무협지 선계 같은 음산한 분위기. 음쓰 버리러 나갔을 때 화단 회양목 틈 사이 하얀 대가리가 쏙 나온다. 목걸이도 있는 게 길고양이는 아닌데 혼자 돌아다닌다. 길을 잃었나 주인을 못 찾나. 낯도 안 가리고 다가와 등짝에서 꼬리까지 가랑이 사이를 쓱 문대고 지나간다. 쪼꼬만 요크셔테리어를 데리고 나온 할무이가 나를 보더니 똥봉지를 쥔 채 한바탕 서사를 읊어 주신다. 고양이 베트남 여자 꺼예요. 봤어요? 봤을 텐데. 남자는 한국 남자구 여자는 베트남이야. 그 여자가 키우는데 쟤를 툭하면 혼자 저렇게 내보내요. 저러다 알아서 집으로 간다네 글쎄. 개두 아니고. 원 세상에 고양이가. 비싼 고양이래요. 하여튼 베트남 여자 고양인데. 밖에 혼자 나와. 하긴 살쪄서 운동은 좀 해야지. 쯔쯔. 걱정 안 해도 돼요. 저러다 집에 간다니까. 원 세상에 고양이가... 이리하여 원치 않게 어떤 사연을 알게 됐다. 우리 동에 한국 남자랑 사는 베트남 여자의 비싸고 뚱뚱한 고양이가 비오는 날 혼자 돌아다니는 이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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