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
오래 전에 본 미국 TV 드라마 중에 <로스트LOST>가 있다. 망망대해 미지의 섬에 불시착한 사람들이 겪는 기이한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인데, 등장 인물이 많고 다양한 데다 서사가 어찌나 길고 복잡한지 수수께끼의 결말을 기다리기에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지경이라 결국 보다가 말았다. 그래도 오래 생각나는 인상적인 대목이 한 군데 있다.
헤로인 중독자이며 해체된 록 밴드의 보컬인 찰리가 죽다 살아나서는 바닷가 모래톱에 앉아 자기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 다섯 개를 메모지에 적는 장면이다. 그가 유성펜으로 눌러쓴 인생의 장면이란 대략 이런 것들이다.
#5 처음으로 내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4 아버지가 수영을 가르쳐준 날.
#3 형이 반지를 준 크리스마스.
#2 어떤 여자가 내게 영웅이라고 말한 코벤트 가든의 외곽.
#1 당신을 만난 밤.
찰리에게 있어 당신이란 기구한 운명 중에 만나 사랑하게 된 여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또는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누가 그 순간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장면으로 꼽지 않을까. 그러면 그밖에 기록해둘 만한 다른 장면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나도 좀 생각해 봤다.
오래 생각해 봤는데 넘버5 정도가 아니라 수백 개의 리스트가 있어 두고두고 기억날 때마다 적어둬야 할 것 같았다. 넘버1 이외에는 내림차순으로 순서를 꼽기조차 어려울 만큼이다. 떠오르는 기억 중 어느 순간이 기억해둘 만한 소중한 인생의 장면들이란 말인가. 가끔 누워서 잠들기 전 생각해본다.
순간들은 주로 스냅 사진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두서없이 눈앞에 떠올라선 멈춰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장면의 모든 정황을 낚아채 세밀화처럼 묘사할 수 있다. 그림처럼 그려낼 뿐만 아니라 냄새와 촉각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다. 이를 테면 내가 죽었다 살아난 그때.
나는 그때 뽕나무 아래서 죽었다.
하필이면 그 높은 뽕나무 가지에 까맣고 탐스런 오디가 뽕잎 사이 오글오글 매달려 있었는지. 무슨 영웅심에서 거길 타고 올라갔는지. 키 작은 삭개오도 아니면서. 친구들과 아우들은 제쳐두고 뭐 하러 나 혼자 거기 매달렸는지. 한 순간 하늘이 빙글 돌더니 뽕나무 가지는 찢어졌으며 기억이 사라지고 나는 떨어져 죽었다. “조심해라. 감나무는 부러지고 뽕나무는 찢어진다.” 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했다.
희미하게 눈을 떴을 때, 근심 어린 까만 눈동자들이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 그 낯빛. 오디를 먹어서 입술이 까만 어린 얼굴들이 울듯한 표정으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가끔 생각난다. 그때, 동생들의 걱정 가득한 눈빛이.
형이 살아나서 기뻐했나. 안도했나. 그런 기억은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내가 걱정을 끼쳤구나, 그런 생각. 미안하고 짠한 생각. 나는 분명 죽었다 살아났는데 누구에게도 이 일을 떠벌리지 않았다. ‘허튼 소리.’ ‘그건 잠시 기절했다 깨어난 것뿐이야.’ ‘누가 뽕나무에서 떨어져 죽냐.’ 그렇게 말할까 봐. 은밀한 내 슬픔과 비애의 스토리가 값없이 조롱 당할까 봐.
기억에 대한 미화이고 왜곡이며 과장일지언정 이 장면은 사는 데 아주 약간의 동력원이 된다. 기절했든 죽었든 내 생의 맥박이 그때 한 번은 멈췄던 것 같기 때문이다. 떨어졌을 때가 아닌 눈을 떴을 때 보았던 그 조그만 걱정들. 흥건히 젖은 눈빛들. 그때 나는 깨어나 감사하며 나무 아래에 앉아 인생의 장면들을 적어둘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기억해 두려 메모한다. 그때 눈을 뜰 수 있어서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두 가지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관찰력이고 하나는 기억력이다. 좋은 글은 현란한 수사에 있지 않고 정확한 묘사에서 얻어지는 것이라 믿기에 그렇다. 글 쓰는 사람은 사물과 사람과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는 사람이고 응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각에 잘 저장해둔다. 어느 때가 오면 이 기억들은 빛을 반짝인다. 그때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누가 묻기에 즉흥적으로 대답한 것인데, 정말 내가 때맞춰 기특한 말을 했다고 여긴다.
좋은 글은 좋은 눈이 쓴다.
그래서 어느 소설가처럼 나도 지금 여기 앉아 눈 앞 10미터 반경을 가만히 관찰한다. 작은 벌레가 탁자 다리를 천천히 기어오르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붕붕거리는 자동차와 종류를 알 수 없는 개들을, 이슬비가 나뭇가지에 흩날리는 모습과 오래된 골목 카페 처마를, 비 그친 도로에 반사되는 말간 햇빛을 조용히 응시한다. 이 순간의 임무란 오직 이것뿐인 것처럼.
소설가는 ‘여기가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라고 말했지. 그러하다. 순간의 장면이 모여 기나긴 생을 이룬다. 지금 내가 보는, 앉아 있는 탁자의 세계. 우연히 아그네스 발차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탁탁탁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내 앞에 지나가는 이 평범한 시간의 장면이야말로 이 순간 내가 아는 세계의 모든 완벽함이다. 또 하나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지나침.
이제 막 포착된 인생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