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년 이외수

오래 전, 춘천에 가서 이외수 선생을 만나고 이 글을 썼다.

by 수페세

이 글은, 내가 남성지 <에스콰이어>에 근무할 때 이외수 선생을 인터뷰하고 쓴 기사다.

(<에스콰이어 한국판> 2002년 10월호에 실렸다)

2002년 9월, 월드컵의 열기가 사그라들고 늦더위가 한창일 때 그를 만나러 춘천에 갔다.

그 즈음, 신간장편 <괴물>을 출간한 그는 젊었고 한림대성심병원 근처 교동에 살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이라고 한다.

오래된 폴더를 열다가 글을 발견하고... 사진도 찾아 여기 옮겨둔다.

사진은 책 속지에 그가 붓으로 그려준 서명이다. 제자 은진씨가 먹을 갈았다.




명랑소년 이외수


세상 사람들로부터 괴짜, 기인이라 불리는 소설가 이외수.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써낸 그를 춘천 ‘격외산당’에서 만났다. 명랑하고 천진한 소년, 그는 여전히 꿈꾸는 식물 같았다.


#1 AM 11:30 춘천 가는 길

춘천에 간다. 그 도시에 사는 소설가 이외수(李外秀)를 인터뷰하러 간다. 조금 전 서울을 출발하면서 그는 소설가의 아내와 통화를 했다. "춘천에 와서 성심병원을 찾아요." 그녀는 쾌활하게 말했다. 며칠 전, 인터뷰 약속을 잡으며 소설가의 아내는 조건을 내걸었다. '춘천으로 오실 것. 책을 반드시 읽고 오실 것.' 인기작가인 남편의 대외적인 스케줄 관리를 도맡아하는 매니저의 조건은 쉽다. 어차피 춘천으로 갈 요량이었고, 소설가가 5년 만에 펴낸 두 권짜리 소설 <괴물>은 이미 다 읽었다. 소설가를 사진에 담고 싶어하는 사진가와 동행이다. 경춘가도는 늦여름의 가로수를 이열로 도열시킨 채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두 시간 쯤 달려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에 닿는다. 초행길이라 손바닥만한 시내를 미로 찾듯 헤맨다. 성심병원은 한림대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약속 시간 정확히 10분 전. "벌써 오셨어요?" 소설가의 아내는 전화기 속에서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상하다.


#2 PM 1:50 소설가의 아내

잡지사에서 남편 인터뷰를 하러 온다고 한다. 마침 서로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요새는 연일 인터뷰다 사인회다 하여 시간을 내기 어렵다. 그런데 이것 참 야단이다. 벌써 시간이 저렇게 된 줄 모르고 있었네. 장독을 들다 허리를 삐끗해 요즘 기공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때문인지 그만 정신이 없어 일정을 챙기지 못했다. 남편은 어젯밤 꼬박 새고선 인터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며 내내 견디더니,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이제 잠이 들었으니 깨우지 못한다. 보나마나 신경질을 부리겠지. 전화가 왔다. 기자다. 병원 앞이란다. 어쩐다. 어쨌거나 오라 해야겠지. 초행인 사람에게 길을 전화로 알려주는 건 짜증스런 일이다. 전화기를 들고 "독일보청기 가게, 우회전, 사거리 또 우회전, 직진…"을 생중계하듯 일러주며 집까지 안내했다. 기자와 사진가 둘, 모두 셋이 응접실로 들어온다. 어떻게 말하지? 그래도 깨울 순 없다. 조심스레 얘길 꺼내보자. "어떡하지요?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요?" 기자가 묻는다. "아주 심각한 문제지요. 남편이 지금 명상에 들어갔어요, 아주 깊은 명상." 잠이 들었단 얘길 그렇게 했다. 기자가 약간 당황하는 것 같다.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3 PM 3:15 격외산당

소설가가 잔다고 한다.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두 시간이나 걸려 춘천까지 왔는데 시간 맞춰 잠을 자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금 전까지 안 잤는데, 그만 잠들었나 봐요. 깨울 수는 없고, 어떡하지요?" 내가 황당해하자 소설가의 아내가 제안을 한다. "여기서 책을 보셔도 되고, 나가서 당구를 한 게임 치고 와도 좋고. 아참, 요 앞에 DVD 방이 생겼던데. 아니면 고스톱을 한판 쳐드릴까요?" 그녀의 마지막 제안에는 그만 픽하고 웃게 된다. 화를 낼 수가 없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땐 진짜로 고스톱을 쳤는데 글쎄 그걸 기자가 그대로 기사에 썼지 뭐예요, 세상에!" 그래도 대낮부터 고스톱은 무리다. 그냥 책을 읽겠다고 했더니,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는 마음대로 하세요. 자유에요, 자유!" 그녀가 선언한다. 이로써 나는 몇 시간이 될지 모르는 자유시간을 갑자기 허락받는다. 잠시 후 그녀는 강아지 사료를 사야 한다며 시내로 외출하고 사진가들도 차에 가 있겠다며 나가버린다. 소설가의 열혈독자들이 꾸민 응접실 겸 카페 격외산당(格外山堂)에 혼자 동그마니 남겨진다. 격외산당. 격식을 벗어난 곳이란 뜻인가. 이곳엔 소설가가 그동안 펴낸 책들이 죽 진열되어 있고 벽면엔 독자들이 찍어 보낸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다. 한쪽엔 고 천상병 시인의 아내가 기증한 낡은 의자가 하나 있다. 뒤쪽에 쪽지가 눈에 띈다. '이 의자는 고 천상병 시인이 애용하시던 의자입니다. 한번 앉는 데 백 원을 받습니다, 더 내셔도 됩니다, 돈은 시인의 장모님이 만드시는 유자차, 모과차 등의 재료비로 쓰입니다….' 소설가를 만나러 와서 세상 떠난 한 시인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와 그 시인은 참 닮았다. 소파에 앉아 소설 <괴물>을 또 들춰본다. 소설가의 아내가 타주고 나간 커피를 마시며. 머그잔에 소설가의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온다. 외수.' 누구에게나 아침은 온다고? 잠든 소설가의 아침은 언제일까. 언제가 되었든 기다려 보기로 한다. 늦여름 오후의 햇빛은 저렇게 골목길에 박살나 있는데 나도 깜빡 졸음이 쏟아진다. 소설가처럼.


#4. PM 5:30 은진 씨

선생님은 잠드셨고 사모님은 볼일 때문에 남일이 오빠와 시내에 나가셨다. 인터뷰를 하러 기자들이 왔는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페로 나가니 기자 혼자 책을 보고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데 내가 조금 미안해진다. 더구나 기자가 졸다 깬 목소리로 "선생님 아직 주무시죠?" 하기에 미안한 마음에 그만, "제가 한번 올라가 볼게요." 하고 말았다. 집필실로 조심스레 올라가 본다. 선생님은 여전히 불편하게 엎드려 주무시고 계시다.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다리를 슬쩍 밟아본다. 마치 실수라도 한 것처럼. "어머, 선생님 죄송해요." 그렇지만 깨워야 할 것 같다. "선생님, 인터뷰 하셔야지요." 선생님이 겨우 깨신다. 이제 됐다.


#5. PM 5:45 소설가의 아침

조각잠. 오래된 습관이다. 오늘도 인터뷰가 있다고, 잊지 말라고 아내가 신신당부를 하기에 내내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홈페이지(www.oisoo.co.kr)에도 들어가 둘러보고, 음악도 듣고, 메일 확인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샌다고 어제 곡을 하나 쓰느라 피곤했나 보다. 어느새 까무룩 잠이 몰려오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고 있다. 혼곤한 무의식 중 문득 다리에 갑작스런 무게가 느껴진다. 몸을 뒤챈다. 눈이 떠진다. 은진이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차! 인터뷰.



#6. PM 6:00 소설가와의 대화

-피곤하신 것 같다.

-미안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이제 정신이 맑아진다. 습관이 되어서 짧게 자도 피곤기를 느끼진 않는다.

-꽤 오랜만에 소설을 내셨다.

-5년 만이다. 소설로는. 그간 우화집을 하나 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노동력이 소설과는 비교가 안 된다. 소설은 중노동이다. 꼬박 3년 7개월 걸렸다.

-기법이 그간의 작품과는 다른 것 같다.

-내 생각엔 소설에도 이제 혁명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소설말고도 재미나는 매체가 얼마나 많은가. 자꾸 독자들이 멀어지고 있다. 그런 위기의식 때문에 소설의 다른 형태를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조각보 기법’이라는 것을 창안했던 거다. 말하자면 각기 다른 화자,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요즘은 너무 자기중심적 시대다. 조금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삶은 범죄적인 삶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입장 바꾸기를 저절로 할 수 있게 해보았다.

-이번 작품도 판타지 요소가 강하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현실 속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소설이라는 공간을 통해 체험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거라면 난 옆집 아저씨를 보고 감동받고 말겠다. 사는 것, 현실이 소설보다 더 기구하고 감동적일 수 있는데 그걸 또 소설 속에서 재체험한다는 것은 복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괴물>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뭔가? 단지 안구가 함몰된 주인공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 주인공 전진철보다는 인간 전체에 부합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내면이나 정신이 다 일그러져 가고 있다. 또 인간이라는 괴물 뒤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있다. 바로 대중과 사회다. 일그러진 사회구조가 일그러진 인간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하하. 나도 괴물이다. 독자들은 역시 이외수가 괴물은 괴물이다, 그러는데 내 생각에도 발상이나 살아가는 모습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세상 사람들이 더 기인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춰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사는지. 나는 그런 거 못한다. 질식해버릴 것 같다. 규범 안에서 갇혀서 생활하는 것. 하긴, 그것이 나한테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잘 안 되지만. 나도 직장 생활은 꽤 많이 했다. 나는 직장을 잘 견디겠는데 직장이 나를 못 견뎌하는 것이다. 6개월 이상을 못 견디더라. 그런 점에서 괴물은 괴물이겠다.

-당신의 그런 점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나?

-물론이다. 난 글 쓰는 것 자체도 수련으로 본다. 근데 수련이라고 하는 건, 산에 비유하자면 산꼭대기에 올라가 거기 가만히 안주하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꼭대기에 올라가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으면 출발했던 그 자리로 내려와 예전과 똑같이 세상과 어우러져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은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까, 아직 올라가고 있는 중이니까 역시 더 공부해서 세상의 평범 속으로 돌아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의 이름에는 종종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빛나는 문장과 표현들이 오히려 작품이 말하려는 바를 가볍게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소설의 문체가 크게 서술적 문제와 묘사적 문체가 있다고 할 때 나 같은 경우는 묘사적 문체로 쓴다. 독자들이 표현에만 지나치게 매료되다 보면 주제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런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 소설의 단점은 두 번 읽어야 한다는 거다. 한 번만 읽어서는 주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치명적이다. 누가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두 번씩이나 읽겠나. 그러나 두 번 이상 읽는 독자들에겐 내 소설의 그런 점이 아주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읽을수록 못 봤던 것이 계속 보인다는 거다.

-예전과 달리 근작들을 보면 어떤 메시지를 주려 하는 의도가 보인다.

-초기 소설 <꿈꾸는 식물> <들개> <칼>까지의 주인공들을 보면 사회 부적응자, 일그러진 인물들이었다. 그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소외되고 좌절하거나 절망해버리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데,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괴물>을 쓰면서는 좌절이나 절망을 넘어 궁극에 이르는 어떤 것을 끊임없이 모색해보고 싶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는가?

-사람들은 지나치게 현실을 중시하지만 나는 그것은 현실적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현실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그러진 현재의 내면을 똑바로 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도 외면보다는 내면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내 글을 읽는 독자의 내면의 기초를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쓴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사물(무생물)과도 감정이 교류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나는 체험을 통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과학적으로도 이미 연구 보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꿈꾸는 식물>을 썼을 때부터 줄곧 주장한 이론이다. 오늘날 브래지어 만드는 형상 기억 합금이나 우주복에 쓰이는 소재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금속도 감각장치, 기억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그걸 모르는 것은 우리의 표면의식, 후천적으로 교육받은 표면의식이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잠재의식으로는 소통이 가능하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셨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뭔가?

-사실 정직하게 말하면 거의 다 애착이 안 간다. 대개 쓰고 나면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내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책이 나와도 잘 안 들여다본다. 지겨워서. 정말 토할 것 같고 그렇다. 그래도 대답을 한다면 아직 창작의 고통이 안 가신 것, 제일 나중 것이 아무래도 애착이 간다. 그 이전 작품을 뛰어넘으려고 끊임없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대작(大作)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물론이다. 나는 지금 만물이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다. 주어가 없는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소설이라는 것이 문자 언어를 통해 쓰여지는 것이지만 그 안에 어떤 기운이 스며 있어서 만물이 다 그 소설과 내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쓸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긴 하지만. 하하.

-글 쓸 때의 특이한 습관이 있는가?

-내겐 괴벽이 많이 있었다. 작품 쓰는 데 악영향을 미치는 악습은 이를 악물고 고쳤다. 내 어렸을 땐 책상이 없던 시대여서 방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곤 해서인지 글을 늘 엎드려 썼다. 그러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가서 할 수 없이 컴퓨터를 쓰게 됐다. 처음, 석 달 동안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도저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컴퓨터 앞에서 울었다. 써야겠는데 조금만 엎드리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이제 못 쓰는구나 싶어서. 고치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1분에 300백 타. 독수리 타법으로 때린다. 다른 사람이 독수리 타법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빠르다.

-인터넷도?

-두루 다 한다. 이메일, 홈페이지 작업…. 곡도 만들고. 곡 하나 들려드릴까? 엊저녁에 만든 건데. 이거 황신혜밴드한테 30분 배워서 만든 거다. 제목은 ‘하염없이’.

(딩디딩딩, 딩디딩…. 경쾌하면서도 단순한 민요풍의 가락이 하염없이 반복되는 곡이 흘러나온다)

-잘 들었다. 제목이 왜 ‘하염없이’인가?

-한 사람이 처연하게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 같지 않나. 자기 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사람을 연상하면서 쓴 거다.

-다음 소설은 뭘 쓰려는가?

-두 가지를 구상하고 있다. 어느 게 먼저일지는 모르겠다. 투명한 연애소설, 또는 동화. 다른 하나는 ‘기(氣)’에 관한 소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 아닌가?

-건강에 나쁘다는 건 알지만 타르나 니코틴 같은 유해성분 때문에 일찍 죽는 거나 스트레스 쌓여 일찍 죽는 거나 매한가지일 것 같다. 글 쓰면서 습관적으로 계속 피우게 된다. 이렇게 해로운 것을 몇십 년 팔아먹었으면 이젠 좀 좋은 담배 만들 생각을 하거나 해독 작용을 하는 담배를 만들 생각은 안 하고 이제 와서 끊으라고 난리니 얼마나 웃긴 얘기냐. 악질적이다.

-여담이지만 기인이란 선입견이 있어서 좀 꺼려졌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하. 대개 그렇게 생각한다. 잡지나 신문에서도 기자를 나한테 보내면 다들 안 오려고 한다고 한다. 까다롭고 괴팍하고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일단 우리집에 왔다 간 사람은 자진해서 자주 오는 편이다.

-이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다.

아니, 괜찮다. 더 해도 된다. 지금 자고 일어나서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난 아침이나 다름없다.


#7. PM 6:45 사진을 찍다

응접실인 것 같은 너른 방 벽면엔 소설가의 그림이 가득 걸려 있다. 주작(朱雀), 동자, 사람, 난초. 먹으로 간결하게 그린, 그러나 사진가인 내 눈으로 보자면 프레임 가득 꽉 찬 저 그림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쨌거나 네 시간 넘게 기다리며 나는 한 후배의 에피소드가 내 것이 될 줄은 몰랐다. 후배 역시 이 사람을 찍으러 왔는데 인터뷰 중간에 영감이 떠오른다며 집필실로 들어가 밤새 안 나오는 바람에 새벽에야 촬영을 간신히 마쳤다고 한다. 난 그래도 다행이다. 아직 초저녁이니. 어색하다면서도 곧잘 표정을 잘 짓는다, 이 소설가. 저렇게 개구쟁이처럼 손가락으로 V자도 그리는군. 무례한 괴짜, 신경질적인 괴물인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으며 보니 소년 같다. 아주 예의바르고 명랑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


#8. PM 7:15 물안개

어느덧 춘천 교동 골목마다 저녁 어스름이 주둔(駐屯)해 있다. 어느 틈에 소설가의 아내는 저녁상을 봐놓은 모양이다. 나서는 일행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며 자꾸 붙잡는다. "아유, 밥을 많이 해놨는데." "아닙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서 가봐야 합니다." 그는 극구 사양한다. 그럼 다음에 오면 꼭 밥 먹고 가요. 안주인은 네 시간씩이나 기다리게 해서 내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부부가 대문 밖까지 일행을 배웅한다. 그러고 보니 둘은 어색하면서 참 조화롭다. 댕기머리를 늘이고 허리 구부정한 채 합장 인사를 하고 선 저 괴짜 소설가의 인생에 아내의 존재란 팔 할쯤은 되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손끝 야무져 뵈는 안주인의 된장찌개를 맛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그러나 이쯤에서 악수를 나누는 게 나을 것이다. 여운엔 아쉬움이 필요한 법이니까. 저녁 물안개가 천지에 가득 정박(碇泊) 중인 공지천을 지난다. 그는 길을 헤매며 ‘서울’이라는 표지판을 간신히 찾아낸다. 아무래도 선계(仙界)에 빠져든 것만 같다. 이외수를 만나고 가는 길. 여기는 춘천. 안개, 자욱하다.


글/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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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으로써 악을 말하다, <괴물>

<괴물>은 독특한 구성을 택하고 있는 소설이다. 모두 81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은 각 장별로 화자도 다르고 시점도 다르다. 심지어 단락별로 시점이 다르기도 하다. 어느 일방적인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기보다 상황과 처지가 각각 다른 입장에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이 소설에는 억울한 전생을 가진 악의 화신 전진철, 원인 불명으로 고통받는 안교은, 전통무예를 익힌 자장면 배달 소년 송을태, 고품격 기생 윤나연, 백장으로 태어나 평생 죽인 가축을 모두 목불로 만드는 윤현부, 전직 영화감독으로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도근출, 도근출의 측근인 성기태, 내장탕집을 경영하는 전직 대학교수 손보살, 사람들에게 사랑과 꿈을 선사하는 자장면 배달부 박경태, 범죄심리학자 이필우 등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많은 인물들의 시각에서 각각의 장을 구성, 마치 ‘조각보’처럼 소설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나간다. 이렇게 서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들의 뒤틀린 욕망을 통렬히 공격해댄다. 괴물 같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악을 통해서 악을 말하는 이 다소 낯선 소설은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선명히 그림이 떠오르는 ‘매직 아이’처럼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의 실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해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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