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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Jul 24. 2019

비수구미를 아시나요?

세상 끝에 있는 산중의 섬, 화천 비수구미(秘水九美)


강원도 화천. 해산령 고개를 올라오면,
지나온 길을 모조리 집어삼키겠다는 듯 아가리를 딱 벌리고 선 아득한 터널을 만납니다. 우리나라 최북단이자 최고지에 있으면서 1986미터로 한때는 국내 최장 터널이었던 해산터널을 지나면 평화의 댐과 비수구미 마을입니다. 생명과 평화, 파괴와 소음이 함께 있는 곳. 서울에서부터 세 시간,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린 엔진을 식히는 잠시, 이 고갯마루에서 형에게 편지를 씁니다.


요 며칠간은 이곳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화천 비수구미. 형은 아주 낯선 이름이겠지요? 하긴 최근 한두 해 사이 신문에도 ‘오지 여행’이란 제목을 달고 몇 번 실렸던 곳이니 형한테도 귀에 익은 지명일 수도 있겠군요. 우리는 늘 오지를 꿈꾸죠. 오지(奧地). 현실과 완벽히 차단된 어떤 곳. 전화도 없고, 메일도 없고, 만나야 할 누군가도 없는 곳으로 가서 한 사나흘 머리를 뉘고 싶은 소망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요.


형도 알다시피 저는 이곳이 두 번째입니다. 3년 전쯤, 내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듯 지쳐 있을 그때, 혼자 이곳에 왔었어요. 따지고 보면 그땐 운이 좋았죠. 우연히 선물처럼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거든요. 일상은 소모전일 뿐이라고 생각되던 그때, 난 뭐가 그리웠던가요. 뭘 찾고 싶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충동적 자학 같은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내 앞에 놓인 길의 끝까지 가보자 하는.

그때, 저 끝도 없을 듯한 캄캄한 해산터널을 지나면서 마치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착각도 느꼈었죠. 내 무의식은 마치, 돌문을 통과해 버들도령을 만나 복숭아를 얻어오던 처녀아이 이야기처럼 이 터널을 지나면 봄날의 별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길의 끝에서 뭘 만난 줄 아세요? 바로 평화의 댐입니다. 형, 좀 웃기지 않아요? 난데없이 평.화.라니! 나는 이정표에 붙은 ‘평화’라는 글자를 한참 쳐다보았어요.



평화의 댐. 80년대, 북한이 금강산댐을 지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든다고 하여 온 나라가 들썩이며 성금을 걷어 지은 바로 그 댐이죠. 조국의 평화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에 갇혀 있었고, 물길이 정지된 그곳엔 시간도 정지된 것 같았습니다.

평화의 댐 아래쪽엔 배터가 있었어요. 여기서 민박집으로 전화를 걸면 모터보트가 오는데, 이 배를 타면 파로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그렇게 저는 길이 끊어진 그곳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고 물길을 건너 어느 외딴집으로 갔었습니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TV도 안 보고, 말도 하지 않고 산 그림자 담은 물을 바라보며 비수구미, 그 깊은 내륙의 섬에서 그렇게 내 삶에서 가장 긴 하룻밤을 자고 왔던 거예요.



우연히 신문에서 읽었는데, 파로호의 물을 뺐다는군요. 금강산댐이 붕괴 조짐이 있어 그 대비책으로 파로호 상류에 있는 평화의 댐을 더 높이는 공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래요. 그러고 보면 평화의 댐 해프닝이 세간의 소문대로 완전히 사기극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댐의 물을 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화천과 양구에는 파로호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호수의 물을 빼버리면 이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거죠. 생태계가 또다시 뒤흔들리는 건 물론이고요. 그래서 갑자기 이곳 생각이 다시 간절해졌던 건가 봅니다. 물이 말라버린 파로호.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해산터널을 빠져나와 해산전망대에 잠시 섰습니다. 탁 트인 전망대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아세요? 아스라이 보이는 산맥의 능선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먹먹한 생각이 들죠. 어쩌면 어떤 경계, 낯선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두려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두절되고 단절된 어떤 곳으로 내딛는 두려움. 그래요, 여기는 진짜 오지니까요.


해산령에서 내려다보는 오른쪽 아래엔 심연과도 같은 계곡이 숨어 있어요. 비수구미 계곡이죠. 계곡을 따라 오래 전 군인들이 닦은 길이 있는데 지금은 폐로가 되었어요. 평화의 댐이 생기고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열리니 열목어가 사는 이 아름다운 골짜기가 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그러고 나니 이 깊은 두메까지 도회 사람들이 밀려들어 단 일 년 만에 쓰레기가 골짜기를 메웠다는군요. 맑은 계류에 노닐던 열목어는 배터리로 지져서 다 잡아가고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군청에 청원을 넣어 길을 폐쇄했답니다. 듣기만 해도 그 저간의 사정이 어땠을지 선합니다. 지금은 당분간 차도 사람도 들어갈 수 없는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죠.



왼쪽을 봅니다. 백두대간의 푸른색이 한 움큼 잘려나간 게 멀리서 봐도 참혹합니다. 건너편 산허리를 잘라서 돌을 캐내어 그 돌들을 반대편 ‘평화’의 댐에 가져다 쌓는 거예요. 평화란 상처가 없이는 도무지 획득되지 않는 걸까요. 한 세기가 넘도록 원시의 자연에 가깝게 지켜져온 생명의 땅, 살아 있는 자연공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원시의 평화를 파괴하는 거대한 굉음에 그만 마음이 절로 측은해집니다.


꼬불꼬불 도로를 내려가다 트럭을 타고 가는 한 무리의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훈련이라도 다녀오는지 땀과 얼룩에 젖은 얼굴은 피곤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군인들을 보니 형 생각이 납니다. 형도 양구 어디선가 군복무를 했었죠. 어느 겨울, 눈발 속에서 형을 찾아갔던 기억이 나는군요. 복학한 형은 양구 쪽으로는 오줌발도 세우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지금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마친 많은 남자들은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저 역시 그런걸요. 군 시절이 전혀 무의미한 건 아니었지만, 다시 가라고 하면 절대 가지 않을 곳. 그곳에서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애처로운 자위의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저 군인들과 저 군인들의 선배들이 이 길을 닦았겠지요. 누구나 차로 씽씽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만들기 위해 삽을 들고, 돌을 캐내고, 시멘트를 날랐겠지요. 희생된 인원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감상에 젖을 필요야 없겠지요.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누리는 게 세상의 법칙이니까요.


천천히 길을 내려갔습니다. 문득 포장이 끝나고 비포장 우회도로가 나타나는군요. 공사 현장입니다. 포클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산을 깎아내고 있고 수십 대의 덤프트럭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어지럽게 현장을 오갑니다. 웬 딴 세상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배터. 몇 해 전 배를 기다리던 그곳, 푸른 파로호 물결이 넘실대던 그곳은 이미 실개천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리고 길이라곤 없던 산허리로 위태위태 비포장길이 놓여 있는 게 보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마을 사람들이 800만원인가를 들여 닦은 길이라더군요. 배가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길을 끊어놨으니, 이렇게라도 길을 내어야 했겠지요. 바지를 걷으면 얼마든지 건너갈 듯 초라한 개울로 말라버린 북한강을 따라 비수구미 마을을 찾아 들어갑니다.



비수구미. 한자로는 비수구미(秘水九美)랍니다. ‘아홉 굽이를 도는 물길마다 비경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는 뜻이라는데 아무래도 억지 같아요. 6․25전쟁 후 화전민들이 이곳에 들어와 밭을 일굴 때, ‘非○古 東標禁山’이라 새겨진 바위가 나왔다는데 여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여요.

몇십 년을 물에 잠겼던 길을 먼지 풀풀 날리며 차를 몰았습니다. 천천히 20분을 채 가지 않아 비탈진 콩밭에서 김을 매는 초로의 부부를 만났습니다. 물이 없으니 사람도 오지 않고, 벌이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강바닥에 콩이라도 심은 거랍니다. 비수구미 마을엔 달랑 세 가구가 삽니다. 그래도 이 동네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동네라지요. 산길 따라 오리를 들어가면 한 집이 나오고, 거기서 또 오리를 더 가면 한 집이 나온답니다.


아직도 범 발자국이 발견되는 곳. 나는 지금 그곳에 와 있습니다. 가끔 커다란 고양이과 발자국이 발견되어서 TV 뉴스에도 나고 그랬던 거, 형도 기억 나지요? 여기가 바로 거기랍니다. 범을 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적막강산인 어둠 속에 앉아 있으려니 범 아니라 도깨비인들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민박집 마루 기둥에 기대 앉아 저 아래로 흐릿하게 내려다보이는 강줄기를 보면서, 자꾸 머릿속에 차오르는 생각들을 지워보려고 애씁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고, 해야 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무 생각조차 없이 몸을 부려놓고 싶습니다.


실은 아까 저녁나절에 이 길의 맨 끝까지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공사 중인 포클레인이 길 가운데 버티고 있어서 그만 차를 멈추고 이 집에 묵기로 했답니다. 민박집 주인장 말로는 제가 실로 오랜만에 찾아든 외지인이랍니다. 주인장이 명함을 내밀더군요. 잠깐 당황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긴 엄연한 영업집이잖아요. 받아들고 보니, ‘파로호 낚시터 안내 ․ 민박 대표 아무개’ 이렇게 인쇄되어 있더군요. 작은 글씨로, ‘토종닭, 쏘가리, 뱀장어, 약붕어, 잡어, 송이버섯, 잔대, 산더덕, 산삼, 고로쇠나무물, 산채 일절’이란 문구도 보이고, 맨 아래로는 ‘피서지, 비수구미계곡, 밤골계곡, 부채골계곡 주야 모터보트 대기’ 이렇게 씌어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명함에 새겨진 이 모든 일이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라는 거지요. 강물은 그저 천렵이나 하기 좋을 만큼 말라버렸고, 주야 대기하던 모터보트는 저렇게 잡풀이 무성한 강변에 엎어진 채 녹슬어가고 있으니 말예요.



저녁을 시키고 평상에 앉아 좀더 얘기를 나눴어요. 말수가 적어 뵈는 주인장도 오랜만에 대화 상대가 나타나 즐거운 듯 이런저런 얘길 들려주시더군요. 이 근동은 원래가 화전민촌이었답니다. 예전에는 60가구가 넘는 인구가 살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산림보호 차원에서 가구당 40만원씩 줘서 다 내보내고, 이렇게 띄엄띄엄 한두 집씩만 남은 거랍니다. 이곳은 20~3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든 낚시꾼들 때문에 대단한 호황을 누렸다더군요. 전국에 인공호수가 별로 없던 때라 이곳이 전국 붕어낚시의 메카였던 시절, 4월부터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관광버스로 몰려들었대요. 밤새 매운탕 끓이고, 손님에게 밥해대면서 밤을 새기를 수없이 하며 보낸 한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어둑해졌고 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걸쭉하게 끓인 된장찌개, 상추겉절이, 김치에 꽁치구이까지 있는, 조촐하지만 정갈한 밥상이었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 주인장은 요새 손님이 없어 장 보러 나가질 못해서 반찬이 없다며 연신 미안해하더군요. 물길이 끊기니 이곳 사람들은 바깥에 나갈 길이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한참을 걸어 나가 택시를 부르는데, 화천까지 한 번 나가려면 왕복 10만원을 줘야 한다니 그 고충이야 말이 아니겠지요. 올 7월부터는 물을 채우긴 한다는데, 물을 채워도 물을 한번 빼면 어자원이 살아나기까지 적어도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은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며 쓰게 웃으시더라고요. 마음이 참 안됐어요.


방에 불을 끄고 마루에 나와 앉았습니다. 언덕 위에는 가로등이 붉게 켜져 있습니다. 오가는 이도 없는데 웬 가로등일까요. 파로호에 물이 가득하던 시절, 그러니까 이곳 앞마당까지 물결이 와서 찰랑이던 시절, 밤에 오가던 배들을 위한 등대랍니다. 이 심심산골에 등대라니. 아, 그러고 보니 여긴 섬이었지요. 첩첩산중이면서 절해고도인…. 이곳에 앉아 소쩍새 우는 소리를 세어보고 있습니다. 이 소리가 아니면 정말 절대적막, 그것이겠는걸요. 바람도 눅눅하고 하늘에 별도 없는 것이 내일은 비라도 쏟아질 건가 봅니다.



빗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습관처럼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죠. 오늘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정말 오랜만에 깊디깊은 잠을 잔 것 같아요. 주어진 계획도 없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이 아직 내 앞에 남아 있습니다. 숲으로 우수수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한참 누워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 빗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지 형은 아시는지요. 그래요, 저는 다시 ‘평화’라는 단어를 씁니다. 빈둥거리다 일어나 이 방문을 열고 나가면 구름이 강 건너 산허리까지 몰려와 바람도 없이 온 천지를 적시고 있을 거예요. 늦은 아침을 먹고 민박집을 나설 겁니다. 우산 하나, 카메라 하나만 챙겨 들고요. 짐은 나오면서 찾으리라 얘기해 둘 테고요. 오늘은 어제 들어가다 만 그 길을 내처 가 보려 합니다.


산길에는 비에 젖은 숲이 뿜어내는 신선한 냄새로 가득할 겁니다. 그리고 꽃들의 향연이 있을 거고요. 연분홍 꽃술을 줄지어 매단 금낭화와 어둔 숲길에 환한 등불을 건 초롱꽃, 늦핀 찔레꽃 무더기를 지나면 수줍은 산목련을 만나겠죠. 애기똥풀이며 붓꽃,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둥굴레와 괭이밥. 짝짓기를 하느라 밟히는 줄도 모르고 길에 뛰어드는 무당개구리를 피하면서, 흙길에 발을 미끄덩거리면서 그렇게 길을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길의 끝이 거기 있을까요. 길의 끝을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그만이겠지요. 산딸기를 만나면 좋고, 비 오는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글 수 있다면 뭘 더 바랄까요. 비 오는 숲, 세상의 끝으로 난 저 길을 상상하면서 나는 오래오래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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