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스텔스차' 때문에 불편했다면 짜증 대신 사업 구상을 해보자
밤 운전이 무섭다. 비라도 내리면 더 긴장하게 된다. 시야가 좁아져서 그렇다.
달리다가 또는 차선을 바꾸다가 기함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검은 차, 기척도 없이 옆 차선에 따라붙은 차. 불 꺼진 차, 전조등을 켜지 않은 차들 때문이다. 이런 ‘스텔스 차’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밤에 달리면서 왜 전조등을 켜지 않는가. 짐작컨대 주변이 환하기 때문이다. 요즘 도심 도로는 대낮같이 환하다. 아니면 밝을 때 운전했는데 저녁이 되었거나. 출발할 때 주변이 밝으니 전조등 켤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요즘 차들은 오토 라이트 기능이 있어서 편리한데, 왜 그걸 켜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남의 운전 버릇이나 심리를 상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니 그만두고, 이제 뭔가 대책을 강구할 때다. 통계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단지 전조등을 켜지 않아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결코 적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얼마나 큰 사회적 낭비인가.
뭔가 캠페인을 벌이거나 법규를 제정하고 단속을 강화하면 좀 나아지겠지만 이런 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조용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전조등을 켜지 않은 차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차 옆에 붙어 창문을 내리고 경적을 울린 다음, “전조등 켜세요.”라고 일러준다.
반응은 가지가지다. 많은 운전자들이 “아차.” 하면서 불을 켜거나 고맙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운전자도 많다. “니가 웬 상관이냐”는 것이다. 말없이 창문을 도로 올리거나 “왜요?”라고 되묻는 운전자도 있었다.
수모를 무릅쓰면서 굳이 알려주려고 따라가면 대개 도망간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양 전력을 다해 달아난다. 범죄자 추적도 아닌데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다행히(?) 신호에 걸려 알려주려고 창을 내리면 절대 이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시비를 거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이런 건 굳이 간섭해야 한다는 의협심 같은 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방금 놀라기도 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 믿기에 그렇다. 앞차 졸음운전도 발견 즉시 경적을 울려 알려주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말해도, 가끔은 인상을 쓰거나 신경 끄라는 식의 멸시가 돌아온다. 그러면 내가 이러려고 이 짓을 하는가 싶어 깊은 빡침과 자괴감이 든다.
내부 방해꾼도 있다. 차창을 내리면 “아빠아~!”라고 손사래치는 딸이나 “냅둬요. 우리가 피해가면 되지.”라고 만류하는 아내다. 내 갈길이나 가지 웬 오지랖이냐는 거다. 선진 교통문화 함양이 이토록 어렵다. 개인의 의협심과 노력으로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좌절한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고, 스텔스 차에 수없이 놀라다보니 어느날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다. 굳이 얼굴을 들이대고 말로 알려주지 않아도 점잖게, 그리고 확실하게 깨우쳐줄 방법. 문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요즘은 비대면 시대 아닌가. 짧은 문장으로 무심한 운전자에게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 문자 말고, 차 뒷유리에 문장을 표시하는 방식. “전조등 켜세요.” 이렇게 말이다.
오랜 시간, 전조등 켜라고 (또는 사이드미러 펴라고) 알려주기 위해 뒤에서 상향등을 깜박거리고 앞질러 가서 비상등을 켜고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한 번 끈 전조등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해법을 찾은 것이다.
문자로 알려준다면 답답할 일이 없다. 스윽 앞지른 다음 내 차 뒷창에 한 마디 쓰는 거다. 바지 지퍼 열렸다고. 아니, 전조등 꺼졌다고. 무미건조하지만 배려와 친절이 잔뜩 느껴지는 문장으로. 그러면 상대방은 감읍하여 즉시 전조등을 켠 다음 감사의 표시로 비상등을 깜박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 목숨을 살리셨어요. 깜박깜박.” 이 얼마나 명랑한 교통문화란 말인가.
솔루션은 간단하다. 뒷차장 위쪽, 혹은 아래쪽에 좌우로 길게 LED 전광판을 설치하는 거다. 물론 평소에는 표시나지 않는다. 얇은 LED 패널은 얼마든지 예쁘게 장착 가능하다. 패널과 운전석쪽 마이크를 연결하면 되고, 운전 중에 문자를 쓰면 위험하므로 음성 인식 기능을 활용한다. 음성으로 문장을 쓰고 디지털 전광판에 구현하는 일은 요즘 기술 수준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하기도 하지.
이렇게 만든 전광판에 상대방(주로 뒤쪽) 운전자에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으면 된다. 초보운전 스티커도 대신할 수 있고 끼어들어 죄송하다거나 양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깎듯한 인사도 즉시 전달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효과적인 광고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관련 법규를 봐야겠지만 매우 효과적인 광고 홍보 수단이 될 것이다. 문장의 힘이란 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생각을 넓히다보니 이건 대단한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조만간 이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로채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돈 만질 사업 비밀을 이렇게 떡하니 공개했으니 내가 게으름을 피는 사이 누군가 재빨리 선점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들지만, 도무지 입이 간질간질해 숨길 수가 없다. 지금 만일 당신에게 큰돈 만질 촉이 왔다면 조용히 연락 바란다. 저작권 협상은 약소하게 매출의 1%부터 시작하겠다.
이미지 Dima Pechur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