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다, 저 눈동자. 누가 생각한 걸까? 볼 때마다 칭찬한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운전하다 트럭 뒤에 커다랗게 붙여진, 놀란 듯 귀여운 눈동자를 처음 봤을 땐 너무나 신기했다. “무서워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라는 듯. 위협적이진 않지만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동그란 눈.
이름은 왕눈이 스티커. 일명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다. 한국도로공사에서 뒤차의 졸음운전과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한 추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효과가 있었을까? 실제 도로공사에서 캠페인을 진행한 이후 한 보험회사의 사용자 인식 조사 결과 왕눈이 스티커가 추돌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94%에 달할 만큼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야간 운전이 많은 화물트럭 뒤에 붙였을 때 빛 반사효과가 뛰어난 스티커 특성으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눈동자가 불쑥 나타난다.
조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화물차 후면 추돌로 인한 사망사고가 전체 사망자의 40%에 달하고 이 중 60%는 야간에 일어난다는데, 약 200미터 후방까지 빛을 반사해 차량 위치를 확실하게 확인시키는 밝은 스티커는 전방 시야가 흐려지는 심야 시간대 외진 고속도로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을 듯하다.
저 깜찍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혼자 웃다가 언젠가 읽은 인터넷 뉴스를 떠올렸다. 엉뚱하게도 사자와 소 이야기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목축업자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가축, 특히 소떼를 공격하는 사자 때문이었다. 야생동물보다 비교적 공격이 쉬운 소를 사냥 대상으로 삼는 사자들은 농민과 목축업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었고 야생동물과 공존을 위해 치르는 비용은 날로 막대해졌다.
가축을 지키고 동시에 사자도 보호해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연구되었는데, 바로 소 엉덩이에 눈동자를 그려넣는 방법이었다. 호주 시드니 사우스웨일즈대학(UNSW) 연구진이 2020년 여름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아프리카 소 엉덩이에 눈 모양을 그리는 방법이 육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매우 효과적인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아프리카 소 엉덩이 사자’를 치면 관련 사진을 볼 수 있다. 양쪽 볼기짝에 부릅뜬 눈동자가 그려진 소 사진을 보면 마치 코끼리가 위협적으로 노려보는 것처럼 보인다. 사자는 주로 스토킹(stalking), 즉 먹잇감 뒤로 몰래 접근해 기습하는 방법으로 사냥을 하는데 소 엉덩이에 그려진 눈동자를 보는 순간 멈칫하게 되고 이내 공격을 포기하게 된다. 일종의 심리적 속임수로 ‘들켰으니 그만 포기해’라는 시그널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보츠와나 북서부 오카방고 삼각주 지역에서 4년 넘게 연구를 진행했다.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사자 같은 맹수의 공격으로 가축을 잃은 농민과 목축업자들이 보복으로 사자에게 총을 쏘거나 독살하는 일이 잦았다.
엉덩이에 눈을 그려넣는 아이디어는 UNSW의 연구원 닐 조던 박사의 관찰로부터 나왔다. 사자가 임팔라를 사냥하기 위해 매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중 임팔라가 자기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아챈 사자가 순순히 공격을 포기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닐 조던 박사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에서 ‘보이는 것’은 포식자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방이나 나비 날개에 있는 눈동자 패턴은 새의 공격을 막는 효과가 있지요. 인도에서는 정글의 나무꾼들이 식인 호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 뒤에 가면을 쓰고 다니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심리적 속임수이며 소 엉덩이에 그려넣는 눈동자도 바로 이 속임수 매커니즘을 차용했다는 얘기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은 4년 여에 걸쳐 2061마리 소를 세 무리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방목하기 전, 한 무리에는 눈을 그려넣고 또 한 무리에는 십자표시를 그렸으며 나머지 한 무리 소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기대한 그대로였다. 십자표시가 그려진 소는 4마리가 공격을 당했고,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소는 15마리가 희생된 반면 엉덩이에 눈을 그려넣은 소는 한 마리도 희생되지 않았다. 먹잇감에게 자신을 들킨 포식자가 사냥을 포기한다는 가설을 멋지게 뒷받침한 결과였다.
다시 왕눈이 스티커 얘기로 돌아오자. 이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캠페인을 밀어붙인 사람도 아프리카 소떼의 엉덩이에 주목했을까? 아닐 수 있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 요점은 주목성이다. 이는 단순하지만 매우 과학적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뇌는 쉽게 속일 수 있다. 착시나 환청 등 뇌의 착각을 유도하는 실험은 수없이 나와 있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지만 왕눈이 스티커 역시 뇌의 착각을 통한 주목성을 활용한 것이다. 나는 포식자가 아니지만 나의 접근, 또는 부주의를 알아차리고 경고하는 앞차의 눈을 인식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고 방어운전을 하게 되리라는 기대.
이 멋진 아이디어를 엉뚱하게 장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어린이가 환호하는 ‘타요 버스’도 아니면서 차 전면에 붙이는 경우. 본인은 귀엽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실은 괴기스럽다. 자동차도 얼굴이 있어 전조등이 눈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 사이에 눈을 또 그려넣다니. 굳이 흉보지 않아도 알아서 계면쩍을 일이다. 그래도 오늘 내 앞에서 동그랗게 눈을 치뜨는 귀여운 눈동자에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반가워. 조심할게. 오늘도 명랑한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