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뜨거움은 무슨 맛일까
카페에서 일을 했을 때였다.
아침 일찍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출근한 지 30분 안에 맛있는 커피를 추출해 내야 하는 미션이 항상 내 마음속 한 자리에 불편하게 앉아있었다. 처음 내려지는 커피는 엉망진창이다.
일찍 출근하느라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빈 속에 이런 커피를 냅다 부어버린다는 게 마루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일찍부터 카페에 찾아주시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견딜만했다.
(마인드는 사장이었지만 공교롭게 아르바이트생 시절이다..)
그땐 겨울이었기에 뜨거운 물에 커피를 내리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뜨거운 커피는 차가운 커피보다 더 예민하게 맛을 느껴야 했다. 즉각 그 맛이 느껴지기보다는 입에서 와인 먹듯 혀로 몇 번 굴려주고 나서야 그 맛이 서서히 속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번은 도무지 이 커피가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아 얼음을 곧장 부었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속내를 꽁꽁 숨기던 커피가 두 손 다 들고 힘껏 맛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라질 일인가?
뜨거웠을 때 이 녀석은 꽤나 바디감 넘치는 괜찮은 커피였는데 차가워지고는 강한 신맛이 느껴지고 워터리 한 그러니까 한마디로 바디감이 한참 부족한 커피로 드러났다. 큰일 날 뻔했다.. 뜨거웠을 때의 이 녀석을 믿고 모든 커피를 제조했다면(물론 중간중간 맛체크를 하겠지만) 손님과 내가 서로 다른 커피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뜨거움은 항상 나를 속였다.
엄마가 해준 골뱅이국의 뜨거움, 연인과 사랑했을 때의 뜨거움, 지각을 앞두고 나를 멈춰 세운 뜨거운 빨간불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식힐 생각 없이 뜨겁게 달려가는 나의 마음.
그 마음은 꽤나 깊게 나를 속이고 있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일까. 아님 방황하는 나날이 내 숨통을 막아와 더더욱 뜨겁게 달려갔던 걸까. 조금 걸어도 됐었는데 잠깐 식히고 가도 됐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뜨거워서 너무 뜨거워서 그 뜨거운 맛이 진짜 맛이라고 믿은 것이다.
잠깐 식히고 갔더라면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괴로운지 혹은 얼마나 신났는지 들떠있는지 허황됐는지 분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열된 뜨거움은 그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손님의 컴플레인으로 직격탄을 놓았다.
커피가 맛이 없단다. 아니 커피가 맛이 변했단다. 그리고 그 손님의 뜨거웠던 커피는 거센 겨울바람에 견디지 못해 '아이스커피'가 된 상태였다. 정작 커피와 가장 가깝고 항상 확인해 왔어야 할 내가 아닌 제 3자의 말을 통해 커피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마치 내 불안했던 정서를 멀리서 바라보던 노숙자가 고언 해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나 난 뜨거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사랑을 할 때에도 나를 너무 던져두고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도 했고 엄마가 해준 뜨거운 골뱅이국도 한 국자 미리 떠서 차갑게 식혀 맛보기도 했다. 엄마에겐 아직도 비밀이지만 그때 그 골뱅이국은 조금 짰다. 하지만 그 짠맛은 새벽같이 일어나 쉴 틈 없이 자식들 일어나기 전 열심히 국을 끓이던 엄마의 뜨거운 사랑을 대변하는 맛이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To. 엄마)
지각을 앞두고 뛰어가는 출근길에 나를 가로막는 빨간불은 어쩌면 나에게 가장 뜨거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건 나의 내면을 속이는 뜨거움이라면 이건 내 육체적 사망을 암시할 수 있는 정말 매운 뜨거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신호등의 빨간불은 단순히 나를 차로부터 보호하는 보호자가 아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빨간불이 뜨겁게 느껴진다면 그 뜨거움을 식힐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다. 뭐가 그리 급한지 정말 이 뜨거움을 뿌리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인지 바라보게 하고 사색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앞으로 당신이 빨간불에 혹은 뜨거운 어떤 것에 직면했다면, 잠깐 멈추고 숨을 들이내 쉬며 식혀보자 그러면 뜨거웠던 것의 진실된 맛이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나의 엉망진창이었던 커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