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초반, 스물일곳

당신은 지금 어떤 나이에 있나요

by 수피

다니던 회사 퇴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직장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스물 후반, 저는 스물 중반! 늦지 않았으니까 꼭 좋은 일 찾길 바라요"

(직장 동료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중반과 후반의 선을 그어 얘기한건 나를 놀리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센스 없는 나는 나이의 높고 낮음을 가르는 것에 대해 분통해하며 혼자 사색에 빠졌다. 그리고 직장동료에게 되물었다.


"내가 왜 스물 후반이야?"


" 'ㅂ' 받침이 들어서부터가 후반이래요~"




순간 나의 '먹물 근성'이 일깨워지며 핸드폰으로 검색을 시작했고 꽤나 가슴 아픈 결과를 접하게 됐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 정의가 내려져있었다.


'스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참 묘하게 규칙적이다. 말하지 않아도 나이의 초, 중, 후반을 단번에 이해시켰다.

'스물일곱' 너무 억울하다. 아니 아직 청춘을 다 즐기지도 못했는데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를 이십대 끝물로 박음질을 한다. 나의 이십대에도 초반과 중반 그리고 후반으로 나뉘겠지만 위의 규칙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이기에 내 규칙 위에서 삶을 살 것이다.

왜 너무 쓸데없는 소재에 집착하고 과민반응 하는 것 같은가? 아니, 나는 누군가가 가벼운 말이었을지 언정 나이를 들어 시간이 흘러감을 말한다면 인생에 압박을 받을 것이 뻔하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그 귀 간지러운 압박은 나를 지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는 내 인생에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한다.


"나 스물일곳이야.."


나의 진지한 개그에 직장동료가 웃는 걸 보니 난 그걸로 만족한다. 소심한 발악이었을지 언정 난 표현했다.

내가 아직 이십대 중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한 순간부터 난 진짜 중반에 속한다. 사실 나는 아직 후반이라는 무거운 나잇대에 있을 귀재가 못된다. 후반이라는 것은 단순히 '끝자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나이'라는 삶의 몸무게에서는 '후반'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진다.


초반엔 뿌리를 튼튼히 다지는데 집중한다. 중반에 그 뿌리를 디딤돌 삼아 잔가지들을 쭉 뻗어 나아간다. 수 없이 많은 가지들.. 그것들 중 살아남은 고독한 몇몇 가지들에서 꽃이 피어난다.

우리는 그런 꽃들을 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느끼고 이해하며 정리하고 표현한다. 그 과정이 '후반'이라는 위치에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난 아직도 다양한 삶의 경험을 위해 태풍 속에 뛰어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치고 회복하고 슬퍼하며 기뻐하는 중이다. 방황하는 지금을 초반도 후반도 아닌 '중반'의 위치라고 말하고 싶다.


세종대왕님께서 열심히 창제하신 한글에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자존심이 아니.. 내 신념이 이를 범하게 했다. '스물일곳'에 내 신념이 깃들어 있다. 난 정해져 있는 것이 싫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그 길을 내가 만들어가고 싶고 나 말고도 누구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아직 뿌리를 다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초반이고 다양한 가지를 뻗고 있다면 중반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스워진다면 아마도 '후반'에 도달했을 것이다.


날짜만 안 나왔다면 방금찍은 사진이라고 말했을텐데..


이전 02화난 뜨거움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