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1부 1화

by 수피

(본 내용은 소설입니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가 느끼는 세상과 그들이 느끼는 세상은 다른 듯했다.

괴로움이 가슴 깊숙이에서 끓어오르고는 막혀있는 머리통 위로 솟아오르는 듯했으나 그것에 미치진 못했다. 내 괴로움이 아픔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내 옆에 서 있는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오열하는 것조차 그의 신경에 거슬릴 것이 뻔하다.


그것을 아는지 내 옆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는 두 살 터울 누나도 크게 울음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뭐 사실 그렇게 예민한 아버지가 이런 상황에서도 화를 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미 그의 화에 몸이 익숙하고 반응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굳이' 싶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이 지키는 기본 원칙이다. 논리도 감정도 필요 없다. 그냥 그에게 거슬리면 그날 하루 집안 분위기는 말 그대로 '개판'이 된다. 장례식장에 오시는 외가 친척분들이 우리를 보며 얼마나 슬프면 이리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꼬 하며 가엾게 보신다. 당연한 것이다. 그분들은 우리 아버지가 화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까지 하는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당일 장례식장에서 우리 가족은 딱 한마디 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씨, 저 새끼는 왜 온 거야"

10년 정도 됐을까. 친척들이 다 모이는 추석에 옹기종기 모여 얘기를 하다가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려 초상집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고모가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친척분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와 누나는 확실히 들을 수 있는 크기의 소리였다. 물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간 슬픔보다 불청객이 옮으로써 생긴 화가 더 먼저인 듯했다.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래야 말이 됐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내가 그들을 물리치기로 결심했을 때 나에게 해가 되지 않게 되는 것만큼 허무하고 박탈감이 드는 건 없을 거니까. 당연한 이치였고 앞뒤가 맞는 상황이었다. 누나도 그걸 아는 듯 괜히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릴까 고모에게 하는 듯 마는 듯 고개 인사만 건네고 눈을 피했다.


누나의 눈은 활짝 미소 띤 엄마의 사진을 향하고 있었다.

참 곱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눈물이 그려진다. 마음속에 그려질 뿐이다. 난 이미 아버지에게 세뇌당해 감정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차가운 사람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 나 스스로를 보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눈을 치켜세우고 똑바로 응시했다.

아직 고모를 예의 주시하며 따라다니는 눈은 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용기 있게 증오하며 응시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자신과 30년을 같이 한 배우자를 잃은 슬픔.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당연히 슬플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나보다도 더 잘 알아야 한다. 부부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어김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를 증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