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화
(본 내용은 소설입니다.)
추억 하나를 넘겨보니 또 다른 추억이 내 눈앞에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아버지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니
가족으로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듯하다.
딱, 기본만 지켜주면 됐다. 자식을 소유물이 아닌 타인으로서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기본의 첫 발걸음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들에 익숙해져 타인으로 대하며 생기는 긴장감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다시 그런 존중의 관계를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랬던 아버지의 시절이 기억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누나와 내 키가 아직 아버지의 골반에 조차 다다르지 못했을 무렵 우리는 아버지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우리는 달려가 아버지의 거친 손을 찾기 바빴다. 거친 손은 거북한 촉감보다는 거칠기에 더 굳세다는 것을 알았던 걸까. 나를 더 안전하게 잡아 줄 수 있는 안정장치로써 내 몸을 맡기며 아버지의 허벅지를 시작으로 가슴까지 발로 밟으며 올라갔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때 나는 과감하게 몸을 뒤로 던지며 몸을 한 바퀴 돌린 뒤 제자리에 착지한다.
참 겁도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누군가를 굳게 믿고 몸을 던져본 적이 얼마나 있겠는가. 가끔은 아니, 예전에는 누나와 이 시절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젖곤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만큼 서로를 존중해 주던 때가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침 8시 일찍 집 문을 나서 늦은 저녁 8시에 돌아오시는 피로에 찌든 아버지는 결코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에 담쌓는 듯 올라선 삶의 무게들을 자신의 것으로써 남에게 떠넘기지 않으셨고 자신의 거친 손만을 찾는 우리의 행복을 존중했다.
우리도 아버지 옷에 배겨있는 옅은 담배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늦은 퇴근시간에 대해 아무런 불평 없이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순간 해맑은 웃음으로 맞이해 드릴 뿐이었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했다. 어릴 적 누나와 나의 존중은 아주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존중이었다면 아버지의 존중은 꽤 희생적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때의 아버지 나이와 비슷해져 가는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때 아버지는 어른의 존중을 몸소 보여주었고 단지 그 존중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을 뿐이다.
엄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에도 집안일을 도와주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심심찮게 이야기했다. 그것 외에도 생활비 관리 자격을 엄마에게 부여해 줌으로써 상당히 쉽지 않은 결정을 보여주었고 이것 또한 존중이라면 존중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맞이 한 추억은 눈물겹게 화목했다.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배려로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자 하니 지금의 우리에게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빛났던 우리들에게 왜 그런 손가락질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도 가파랐는 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증오와 행복이 교차하며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그 추억의 페이지를 곧장 나왔다. 다음 추억도 간직되어 있을까. 난 오히려 증오로 가득한 공간에 가고 싶었다. 정돈된 마음을 다시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발걸음이 떨어진 곳에도 우리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 있었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네 명 모두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