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약속

2부 1화

by 수피

(본 내용은 소설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로 기억한다.

나이로 친다면 8살 정도쯤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는지 부모님은 나를 꽤나 자상하고 정성 가득하게 보듬어주셨다.


다 크고 나서 들었던 얘기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길에서 굳이 손을 붙잡고 다니지 않아도 잃어버릴 일이 없다고 하셨다. 항상 내 손은 엄마 바지 뒷주머니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또한 항상 나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들고 다니셨다. 제아무리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8살이면 상당히 무거웠을 것인데 말이다. 물론 그 기억은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사진첩을 열어보면 증거자료가 수두룩하다. 지금과는 다르게 빼빼 마른 얼굴에 길쭉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는 것은 이러한 정황상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불행이라는 곳에서 잘못 흘러온 추억 하나가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로부터 받아온 따듯한 사랑들은 감각이 무뎌졌는지 그렇다 할 만한 떠오르는 추억이 그려지지 않는다. 왜 그에게 받은 사랑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한 어떤 한 추억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걸까..


나는 그 추억의 공간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예상대로 흐릿했던 추억들이 더 선명해지며 그와 나의 그때 일이 떠올랐다.


가족여행을 갔을 때였다. 한 달에 한번 해외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으로 가족여행은 꼭 챙겨갔던 예전 우리 가족은 그날 제주도에 갔었던 걸로 기억한다.


성산일출봉에 오르며 우리 가족들을 사진 속에 남기겠다며 열심히 뛰어다니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난 어렸기 때문에 이곳이 제주도인지도 심지어 제주도가 어떤 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단지 뜨거운 햇볕 아래 열심히 살을 태우며 걷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첩 속의 내 표정은 전부 찡그린 표정뿐이었다.


내 표정이 걷기만 해서 힘들다는 심정을 표현했던 거라면 다행이지만 그 표정에는 질투와 속상함이 동반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누나만 업고 다니셨던 그날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의 하루를 뾰로통한 표정으로 보냈던 그 감정이 아직도 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못 받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다. 그 어린 8살인 나이에도 나는 그런 사소한 감정은 컨트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날의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제주도 마지막날 찍은 내 단독 사진을 보고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사진의 나는 제주도 여행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띤 사진이었다.

사진의 나는 한 손에 핫도그를 들고 세상을 다 갖은 양 해맑게 웃으며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


"석아, 많이 속상했지? 아빠가 미안해."


".. 응"


"그래 대답해 줘서 고맙다. 너는 남자니까 엄마랑 누나를 지켜줘야지. 아빠가 석이한테 많이 잘해주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고 조금만 참고 견뎌줘."


"조금만.. 견뎌줘?"


"응 조금만 참고 견뎌줘. 석이는 할 수 있다고 아빠는 믿어, 그렇지?"


"알겠어.."


그날부터였다. 언제까지 견디면 언제까지 참고 기다리면 되는지.. 단지 웃으며 기다릴 뿐이었다.

이전 03화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