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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Dec 23. 2023

배움은 어디에나 있다

행복하게 일하는 나만의 방법

(23.9)

서울에 집을 계약하면서 그날바로 카페 면접을 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급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월세라는 부담감이 밀려오면 저

하루도 공백을 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인생에 가장 부질없는 일 중 하나가 과거의 후회라고.. 난 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에 올라오고 공백이 생겼다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방황하지 않았을까 싶 다.

면접은 3곳을 볼 예정이었는데 두 번째 봤던 카페에서 당일 바로 결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셨고 나름 만족스러운 근무조건이었기에 마지막 면접지는 정중히 취소한 채 입사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일하여 고 싶은 카페는 꽤 구체적이었다.   

브랜딩 잘 되어있거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카페


매니저 직급으로 일 할 수 있는 곳


커피에 집중된 카페 (로스터리)


위 조건들을 봤을 때 로스터리가 아니라는 점 빼고는 외관적으로 나머지 조건들을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서울에 올라오고 이틀 뒤 바로 출근을 시작했다. 일단 바로 돈 벌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신났다.


그렇게 나의 서울살이는 시작되었다.




(서울 어딘가의 카페)

새로 오픈한 카페였다. 이 카페가 어떤 카페인지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나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오직 내가 매니저라는 직급을 받고 일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 보고 일을 해 나아가야 했다.


사실 절망이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한 카페가 아니었고 내가 많은 것들을 많이 돕고 희생해야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난 서울에 올라오면서 최대한 우연한 사고를 하자고 다짐했었다.

어찌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겠는가. 나는 그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


'여기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내가 파헤쳐 나가야 할 부분이 뭐지?'


며칠을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출근길이 그리 즐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첫 번째 나에게 미션이 생겼다. 이곳은 새로 오픈한 카페다. 내가 창업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 도로 나에게 큰 비중의 업무가 주어져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나의 미래 모습을 미리 체험해 보는 좋은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상황을 즐겁게 만들어보자 다짐했다.


이 출근길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라..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

결국은 관계였다. 옆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출근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나는 곧장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려서 건물 경비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른 아침 출근이기에 아침에는 한가했다)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난 최대한 해사한 웃음을 띠며 경비원분에게 다가가 커피를 건넸다.

경비원분도 나를 따라 웃으시고는 감사함을 표했다. 좋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물론 나의 선행이 우선시되었 기에 생긴 결과이면서도 이런 선행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줄 아는 분이 곁에 계시다는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카페로 돌아오고 얼마 뒤 오늘 하루 사용 할 우유를 가지고 우유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인사를 건네고 방금 있었던 교류를 떠올리며 우유 사장님께도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려드렸다.


"오늘부터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예상대로 웃음을 그대로 돌려주시며 커피에 감사함을 표하셨다.

시작이 너무 좋다. 이 카페의 좋은 점을 그때 깨달았다. 다들 좋으신 분들로 가득한 동네구나..


아침이 웃음으로 가득했고 그 경험이 참 신기했다. 내가 웃지 않았고 커피를 내어드리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면 그 우울한 출근길을 그대로 쭉 해왔을 것이다. 그걸 바꾸고 싶었고 나는 노력했다. 그러니 참 신기하게도 출근이 재밌어졌고 어쩔 땐 출근을 하고 싶었다.(심지어 쉬는 날에도)


이런 신기한 경험 때문인지 커피를 배우고 브랜딩을 배우고는 뒷전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한 달 차쯤 되었을 때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뇌를 감쌌다. 그런 도중에 카페에 과도기에 돌입했다.


직원관리, 카페 내부관리, 가치관 정립 등.. 직원이 5명 정도 되었던 카페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정립되지 않은 부분들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모두 나갔다.

허무했다. 무언가 나의 잘못 같았다. 모두 사이가 좋았지만 카페 내부에 불만이 많았었다.


나는 그러한 부분을 사장님께 건의했다. 하지만 나도 말하다 보니 거세게 말이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과의 사이도 막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 카페를 이끌기에는 부족하구나. 차라리 새로운 직원들로 새로 시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서울 첫 카페를 나가게 되었다. 참 극적이었다. 너무 좋았다가 너무 안 좋았다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휘몰아치면서 결국 다다른 생각은 '너무 급하게 움직인 거 같다'였다.


서울에 마음잡고 올라온 만큼 좀 더 신중하게 카페를 알아보고 나에게 맞는 카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을 느꼈다. 급한 마음에 카페를 알아보다 보니 이번처럼 나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그 사장님께도 피해가 갔었 다. 나를 위하면서도 상대를 위해서라도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좀 더 진중하고 신중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그래, 이것도 배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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