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를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눈을 떴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습관처럼 회사로 갔다. 출근은 아니다.
뒤뜰에 잠시 앉아 믹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출발하려 했는데 당근 거래 하나 해 줄 수 있냐는 아내 문자가 왔다. 당근이지, 답했다. 아내가 알려준 거래 시간이 어중간하다. 해주고 길을 나서기로 한다.
코로나 전까지 나는 요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달 단위로 주문과 납품이 맞물리는 시스템이라 달의 삼분의 일을 넘기면 주말 개념이 없어졌다. 각종 원부자재 입고와 납기 때문에 날짜는 챙겨도 요일은 잘 잊었다. 일요일에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애들에게 너 왜 이 시간에 집에 있냐고 물었다가 일요일이에요 소릴 듣는 일도 잦았다.
바쁘지 않더라도 주말에 집에 있으면 불안했다. 할 일 유무와 상관없이 주말에도 회사에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재기를 결심한 후, 쭉 그랬다. 망하기 전의 내 자리를 되찾고 싶었다. 빨리.
서른의 나는, 내가 낄 자리를 열심히 찾았었다. 작은 틈이 보이면 관찰하고 연구했다. 시장에 내 포지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 자리를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빨리 크게 성장하려다가 와장창 해버렸다. 고심 끝에 다시 업을 시작했지만 간신히 다시 만든 내 자리는 혼자 앉기에도 비좁았다. 종종 잃은 것들이 떠올라 괴로웠고 무용하게 흘려버린 시간에 대한 강박을 납덩어리처럼 몸에 차고 살았다. 혼자 건 가족과 함께 건, 여행 간 기억도 거의 없다.
전전 주 일요일에 충동적으로 나선 길은 결국 드라이브가 됐지만, 조금 먼 곳에 밥을 먹으러 간다는 외피를 씌워 '논다'는 느낌을 은근슬쩍 가리고 아웅 했다. 드라이브를 가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고 앉았다고 달라질 것도, 빨라질 것도 없는데. 쉬면 내 자리가 사라질 것 같아서.
토요일엔 무려 결심씩이나 해놓고도 마음이 흔들거렸다. 아내의 심부름을 하고 그림자가 짧아질수록 드라이브를 가는 게 맞나, 지금 내가 그럴 만큼 여유로운가 하는 생각이 커졌다. 갈등으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양 '에잇'을 큰 소리로 내뱉었다.
나 들으라고. 물리적인 목소리를 내 귀로 들으라고.
그제야 나설 수 있었다.
네비는 켜지 않았다. 식당 같은 목적지는 없다, 나 논다를 천명하는 기분으로.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네비 소리는 일은 안 하고 한갓지게 드라이브나 가냐는 비아냥처럼 들려서.
대구 남쪽, 가창댐으로 방향만 잡았다. 댐을 지나 헐티재 고갯길을 오르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오고는 처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긴 시간 동안 난 뭘 하고 살았을까. 재를 넘어 내려가는 길에 삶은 옥수수와 냉커피를 파는 트럭 곁에 차를 세웠다. 뒷좌석의 백팩을 뒤져 요즘 잘 쓰지 않아 넣어둔 가죽 지갑 속 아이들 사진을 찾았다. 사진 속 아이들은 십여 년째 애기들이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 눈에 가장 예뻤던 때의 어린 세 아이 모습에 가슴이 저렸고 미안함이 소금처럼 뿌려져 마음이 아렸다.
사업으로 내 자리를 만들고 키워서 가족들이 그 안에서 행복하길 바랐다. 내 아이들 미래에 선택지를 넓혀주고 싶었다.
오래된 가로수가 국도에 나무 터널을 만들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큰 나무가 되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회사에선 점점 멀어지는데 조그만 뒤뜰에서 미간을 좁히고 앉아 애꿎은 연기만 뿜고 있는 내 모습은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왜 그러고 앉았니. 뭘 그리 잘못했길래. 어딜 그리 빨리 가려고.
속도를 낮췄다.
내가 무엇을 더 했어야 했을까. 생각했다. 해야 하는데 안 한 것은 없다. 상황이 그럴 뿐. 변명일까.
오히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방향은 옳다는 생각. 내 포지션에서 다음 포지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하고 있다.
될 일은 된다. 노심초사가 지름길을 열어줄 리 없다. 자신만 소모하고 지금을 놓치게 할 뿐이다.
갈림길이 나오면 일부러 작은 길을 택했다. 동네 슈퍼가 보이면 섰다. 멍하니 앉아서 하늘도 보고 산도 보고 구름도 봤다. 이러면 될 것을, 이게 뭐라고 결심까지 필요했단 말인가. 쫓기는 내 마음을 쫓는 자는 나였구나.
마음이 조금 헐거워졌다. 나오길 잘했다.
정세랑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전업작가다. 글이 일인 사람.
포지셔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자주 느낍니다. 어떤 작품을 잘 써서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작 전에 다른 사람과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나 확인하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몰라요.
(중략)
'내 글을 어느 위치에 둘까.’ 바둑과 비슷하려나요? 어디에 돌을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미 있는 걸 피하는 게 쉽진 않지만, 어쨌든 자신만의 무언가로 뾰족하게 뚫고 나가야 합니다.
(중략)
주제나 소재는 사실 겹쳐도 괜찮은데, 스타일까지 같으면 안 되겠죠. 어떤 글을 읽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작가 고유의 톤은 큰 강점이 됩니다.
- < JOBS - NOVELIST (잡스 - 소설가), 편집부 지음 > 중에서
사업과 달리 글쓰기는 '나는 쓰고 싶은가?'만 생각하고 시작했다.
포지셔닝, 즉 거기에 내 자리가 있을까, 어떤 영역이 경쟁이 덜할까 같은 고민은 하지 않고 쓰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만 따랐다. 홀연히 떠나는 드라이브처럼.
목적지? 없다.
경유지? 정하지 않았다.
성과 측정 도구? 없다.
오랫동안 일에서 쫓겨 지친 마음이 글로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아침의 드라이브처럼.
일요일 오후의, 토요일 오전의 드라이브가 일을 지체시켰나? 아니다. 내가 갑자기 나태해졌나? 그렇지 않다.
조급함을 떼고 본 나는 잘하고 있다. 올해의 계획대로.
안달복달하는 생각이 현실 왜곡을 하고 있을 뿐이란 걸 대구를 벗어난 이차선 국도에서 알았다.
판 안에 있는 사람은 모르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다 알아요. 판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무엇을 노리고, 무엇에 당황하고, 무엇에 즐거워하는지는 판 안의 사람만 모르죠. 밖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데.
-< 미생, 윤태호 지음 > 중에서
내일은 큰 아이 생일이다. 아침에, 내일이 제 생일이라고 친절히 상기시켜 주더라.
카톡으로 물어보니 내일 선약이 없다고 한다. 졸업반이라 그런가.
아내와 큰 애, 둘째까지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 잔 해야겠다. 고맙단 말도 모두에게 해야겠다.
밖에서 안에 갇힌 나를 본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다.
자꾸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