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랜덤입니다

by 수필버거

공장 뒤뜰은 시멘트 바닥이다.

오래돼서 군데군데 깨졌다.

그 틈에 잡초가 자랐다.

그리 많지도 않고 또 내가 게으른 탓에 뽑지 않았다.

대부분 평온하게 살고 있다.


에어컨 실외기 앞에도 있다.

봄까진 대수롭지 않게 봤다.

무더위가 찾아오고 에어컨 켜는 날이 많아지며

잡초의 호시절은 날아가버렸다.

거센 열풍에 온종일 시달린다.


담배를 피우며 퍼르르르 떨고 있는 이파리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잡초도 이럴 줄은 몰랐겠지.

Right time, right place.

Wrong time, wrong place.


노력만으론 안 되는 일이 많은 게 사람살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랜덤입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암에 걸렸냐는 환자의 말에

의사가 한 대답이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 이연 / 봄풀출판)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에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의사의 건조한 대답이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위로가 됐다.


인생, 랜덤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