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구미코의 세상은 좁다.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라서 좁고, 정규학교에서 배우지 못해서 좁고, 유일(唯一)한 혈육인 할머니가 늙어서 좁고, 할머니가 자기를 부끄러워해서 좁다.
세상으로 통하는 유이(唯二)한 통로는 책과 산보다. 할머니가 쓰레기장에서 주워오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세상과 사람의 감정을 배운다.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할머니가 미는 유모차에 실려 동네를 돌며 작은 세상을 엿본다. 햇살 아래 졸고 있는 털이 복실한 고양이를, 하늘 높이 동동 떠가는 구름을, 새벽의 고요가 내려앉은 동네 도로를.
내리막길에서 유모차를 놓친 할머니.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작가게 사장의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대학생 츠네오가 유모차를 막아서 큰 사고는 면한다.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구미코의 온 우주인 작은 집으로 츠네오를 초대하고 아침밥을 대접한다. 이름을 묻는 츠네오에게 구미코는 조제라고 답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주인공 이름을 말한다.
사랑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감정이다. 갓 세상을 접한 어린 청춘이 감당하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둘 다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이게 뭘까, 무슨 의미일까, 자기 마음인데도 도통 모르겠어서. 호감인 듯 사랑인 듯 모호한 감정에 훌쩍 도망갔던 츠네오가 할머니가 죽었단 소식을 우연히 듣고 구미코의 집으로 다시 찾아온다. 구미코는 돌아온 츠네오의 등을 원망하듯 툭툭 친다.
"가란다고 진짜로 가버릴 놈이라면, 가버려".
마음을 자각하는 순간. 사랑의 시작이다.
구미코는 사랑하는 츠네오에 의지하며 글로만 읽었던 사랑의 감정 속으로, 상상으로만 그렸던 세상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고, 세상에서 집과 가장 먼 곳까지 가보고, 바닷속에 산다는 물고기를 보러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지켜줘서 가능한 일이다. 츠네오의 등에 업혀 난생처음 바다를 본 날, 물고기 여관에서 둘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한다.
-눈 감아 봐
-응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해
-그곳이 옛날에 내가 살던 데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중략)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中에서
구미코는 늙은 할머니가 밀어주던 유모차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달고 빠른 속도로 태워주던 츠네오의 유모차로, 그리고 그의 등으로 옮겨가며 성장한다.
위 대사는 조개껍데기 침대에서 이별을 예감한 구미코의 말이다. 구미코가 다시 돌아갈 곳은, 또다시 심연의 해저라 할지라도 예전과 같이 빛도 소리도 바람도 비도 없는 곳은 아닐 것을 안 것이다. 상처 입은 조갯살이 진주가 되듯 훌쩍 자랐다.
가란다고 가냐고 등을 치는 원망으로 시작한 사랑의 끝은 담담했다. 다다미 방 끝에 앉아 신을 신는 츠네오에게 구미코는 야한 잡지책을 건넨다. 이별 선물이라면서. 마치 출근하는 남편에게 말하듯이. 끝내 오열하는 것은 다시는 구미코를 만나지 못할 걸 깨달은 츠네오다. 구미코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한 시절의 끝을 미리 알았던 듯 조용히 받아들인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구미코의 방은 책이 여기저기 탑처럼 쌓여 너저분하다. 탁자는 밥상, 찻상으로만 쓰인다.
영화의 마지막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구미코를 보여준다. 유모차도, 츠네오의 등도, 이제 더는 필요 없다. 카메라가 천천히 훑으며 보여주는 구미코의 방에는 한 권의 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불은 개켜져 있고 바닥은 깨끗하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탁자도 말끔히 치워져 있다.
머리를 질끈 묶고 가스레인지 앞 나무 의자에 앉아 생선을 굽는 구미코의 뒷모습. 츠네오가 다이빙이라고 표현한,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지듯 내려오는 구미코. 카메라는 쓱 올라온 그녀의 손과 생선 접시를 클로즈업한다. 밥은 생명이고 생활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져야 한다.
영화를 두 번 보고도 마지막 장면을 한 번 더 보았다.
보육원에서, 할머니와 살던 집에서 불리던 이름 구미코는 이제 없다.
구미코의 방을 떠나 바다를 보고 제일 야한 섹스를 하고 사랑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곳은 조제의 방이다.
유모차도, 누구의 등도, 어쩌면 츠네오조차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조제가 됐다.
조제는 조제의 방에서 이제 무엇을 할까.
영화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조제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저 빈 탁자에서.
책으로 세상을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경험한 조제는 이제 글로 세상 속으로 다이빙하듯 '쿵'하고 들어가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