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하나 둘 운동장을 떠났다. 학원 간다고 손 흔들며 교문으로 걸어가고, 마지막까지 같이 놀던 친구도 밥 먹으러 간다고 등을 보이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그네에 앉아 다리를 뻗었다 오므렸다, 삐걱삐걱 쇠의자는 앞뒤로 흔들흔들. 철봉대의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 곧 어둠에 잡아 먹힐 것 같았다.
나도 잡아 먹힐까. 혹시 엄마가 나를 잊었을까.
버려진 것 같다. 나는 왜 자꾸 혼자가 될까. 내가 나쁜 어린이일까. 뭘 잘못했길래.
술을 마시다가 들었다. (독서 모임) 대책회의 밴드의 누군가가 나갔다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들어오고, 나가고, 인사도 없이. 전화기 화면에 손가락 끝을 툭툭 몇 번 치면 끝이다. 일방적인. 무언의 통보. 하나 줄어든 숫자로 보내는 통고.
흡연실에 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사전앱을 켰다.
이별, 서로 갈리어 떨어짐.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터치의 시대엔 작별도 사치다. 빠이빠이 흔드는 손도, 털레털레 걸어가는 등도 보이지 않는 이별만 있다. 연기를 깊게 빨아 들이고 후우 길게 뱉었다.
만나 적 없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면 누가 그랬는지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인원을 표시하는 디지털 숫자만 늘었다 줄었다 할 뿐이니까.
긴장한 표정으로 발표를 하고 실없는 농담에 과장되게 웃으며 책 얘기를 나눴던, 뒤풀이에서 책 문장으로 농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부딪혔던 사람이 말없이 나가면, 아프다. 나는, 여전히, 영원히.
학원에 갔을 수도, 밥 먹으러 갔을 수도 있지만. 손을 흔들지도, 등을 보이지도 않고 떠나면 더 그렇다. 혼자 버려진 느낌. 점점 짙어지는 어둠에 잡아먹힐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여전히 내 탓 같고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마음.
왜 이제 왔냐고 울먹한 목소리로 묻는다. 미안하다고, 무서웠냐고 했다. 친구들하고 놀고 있지 그랬냐고 말했다. 애들은 다 지 볼일 보러 벌써 떠났는데. 혼자 한참을 있었는데. 나를 잊어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엄마가 왔으니까 됐다. 친구들은 내일 또 만나겠지.
만날 사람은 만나고 볼 사람은 보게 된다고 믿는다.
긴 세월 검증한 믿음이다.
맛있게 밥 먹고 하룻밤 잘 자고 내일 학교에 가면 다시 친구들이 환하게 웃고 있듯이.
인연이 있다면.
인연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