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분출

by 수필버거

큰 애가 차를 사고 싶다고 한 건 작년 여름부터였다. 한 달 고정 경비가 꽤 든다고 말해 줘도 안 들리는 눈치였다. 종종 중고차 매물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며 이 차 어때요 물었다. 소나타부터 산타페까지 범위가 넓다가 겨울부터 SUV로 좁혀지고 차종도 두 개로 압축됐다. 구매가 임박한 징조였다. 중고차에 대한 질문도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한 달 전쯤, 다가오는 토요일에 같이 차 보러 갈 수 있겠냐는 톡이 왔다. 그 주말에 드디어 반짝반짝 광이 나는 쥐색 중고 산타페를 샀다. 입 닫고 아이 옆에 서서 딜러에게 하는 질문을 들으니 공부를 많이 한 게 보여서 슬며시 차 뒤로 돌아가 혼자 웃었다. 밤마다 검색하며 얼마나 설레고 재밌었을까, 싶어서.


큰 아들 직장은 구미에 있다. 주말마다 대구에 오던 애가 차를 산 다음부터 몇 주 동안 집에 오지 않았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요즘 일주일에 천 킬로씩 운전을 한다고 했다.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러 경기도 고양에 다녀왔고, 주말에 혼자 강원도 여행을 갔다 왔단다. 오늘도 오후에 부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간대서 기차 타는 게 편하지 않겠냐 했더니 동료 결혼식장 위치가 어떻다는 둥 기장 쪽에 숙소를 잡아놨다는 둥 설명이 길다. 생애 첫 자가용 운전이 재밌어 죽겠다는 소리다. 하루 종일 운전 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때다.


구독하는 작가가 백 명이 넘는데, 피드에 올라오는 새 글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구독'을 터치하고 스트롤을 내리며 작가들의 낯익은 이름을 살폈다. 한때 다정한 댓글과 안부를 주고받던 이름, 글이 너무 좋아 열심히 퍼 날랐던 이름, 글에 아픔이 너무 절절해 작가의 안위 걱정까지 했던 이름, 출간 책 성공 후 브런치를 떠난 이름.


구독 작가 정리를 했다. 딱히 정한 기준 없이 시작했지만 마지막 발행 글이 2019, 2020년, 이러면 구독을 취소했다. 쓰기를 멈췄거나 무대를 옮겼지 않았을까. 정리하며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면 대부분은 한동안 엄청나게 글을 쓴다. 그러다 뚝 끊긴다. 법칙이라긴 과하지만 경향성은 있는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폰 상단에 메일 도착 알림이 떳을 때,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가 입술을 오므리고 후우 소리 내며 가늘고 길게 마지막 숨까지 짜내듯 뱉고서야 메일을 열었다. 축하합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작가 선정 통지를 읽을 땐 의자에서 엉덩이가 일 센티쯤 떴었다. 인정욕구가 가득 채워지는 뿌듯함이란. 브런치에 글 몇 개 썼다고 누가 나를 작가라고 소개라도 할라치면 그냥 취미로 써요, 브런치 작가인데요 뭘, 손사래를 치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가고 등은 펴졌었다.


막 써재꼈다. 동생들과 막창을 먹으며 느낀 어떤 이의 반듯함에 대해 썼고, 지방의 작은 인디 밴드 공연을 보고는 어중간한 재능에 대해 썼으며, 아무 영화 리뷰도 몇 개나 쓰고, 아무튼 막 써댔다. 내 글에 달리는 라이킷 한 개, 댓글 한 줄이 헬륨 가스 같았다. 둥둥 붕붕.


작가 놀이에 들뜬 시기였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잡글 나부랭이를 쓰면서, 진짜 작가가 된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다 스르르 글쓰기에 제동이 걸렸다. 더 쓸 것도 없었고, 아주 더디게 느는 구독자 수를 보며 재미가 사그라들었다. 브런치가 가장무도회처럼 느껴졌다. 가면 속 나는 작가란 자의식이 전혀 생기지 않았고, 출간을 하겠다는 목표는 내 재주로는 가망 없는 일임을 깨닫고 버렸다. 작가 선정 후 불과 몇 달 만에 나의 글쓰기는 쓰는 것도 아니고 안 쓰는 것도 아닌 림보에 빠졌다.


한 일 년쯤 지나면 큰 애의 운전도 귀찮은 일 중 하나가 될 게다. 신나고 짧았던 내 글쓰기 허니문처럼 재밌어 미치던 운전이 일상의 루틴으로 내려앉을 날은 온다.


재미는 짧다. 행복도 짧다.

길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사냥의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이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런 ‘초기화(reset)’ 과정이 있어야만 그 쾌감을 유발한 그 무엇(고기)을 다시 찾는다.

(중략)

왜 행복은 지속되기 어려운지. 사건이 종료되면 감정은 곧 원점으로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다음 좋은 일에 다시 기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 <행복의 기원(10주년 기념 개정판)>, 서은국 -


재미와 행복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만한 재미와 행복을 주는 사건을 몇 달씩이나 겪었다는 뜻이다. 몇 달. 결코 짧지 않다. 긴 시간이다. 그동안 손이 떨릴 만큼 재밌었고, 인간이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욕망이라는 인정욕까지 그득하게 채웠다면 그만큼 감사할 일이 또 있을까.


행복이 금을 많이 갖는 것이라고 하자(물론 아니다). 손에 돌을 들고 “이것은 금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서 될 일이 아니다. 금이 풍부한 광산을 찾고, 적극적으로 금을 캐야 한다. 이 당연한 논리가 행복에도 적용된다

- <행복의 기원(10주년 기념 개정판)>, 서은국 -


아이가 부산을 동서남북으로 달리며 신나게 금을 캐고 있는 지금, 나는 대책회의라는 아주 큰 금맥이 있는 금광에 있다. 얼마나 오래 행복할지 가늠하기도 힘든 금광이다.

행복은 행복할 때 온전히 누려야 한다.

유예할 일이 아니다.

아낀답시고 미뤄둘 일도 아니다.

싱싱할 때 실컷 먹을 일이다.


*글 제목은 김신지 작가의 책(제철 행복/인플루엔셜)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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