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포스의 나날들

정체

by 정미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교활하고 못된 지혜가 많기로 유명한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저승으로 갔으나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이고 장수를 누리다가 결국, 그 벌로 나중에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까뮈 <시지프 신화>에서 이런 시시포스의 노역을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상황으로 묘사하는 수필을 썼다.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침묵할 뿐.'이라고

출처 : 민음사 <시지프 신화> 알라딘 미리 보기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 하더라도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과연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시시포스의 나날들은 아무런 희망도 의미도 결실도 재미도 없이 반복되는, 힘들고 지치고 땀만 종일 흘리는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 자못 뿌듯하고 즐거웠던 시기도 있었다. 글을 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도파민이 분비되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 어떤 소재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행복해하던 시기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글쓰기로 인한 행복의 의미는 쇠락하고, 일상이라는 굴레에 갇혀 각종 핑계를 대며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던 순간들이 누적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핑계다.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쓸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도 해야 할 일들이 내 몸을 잠시도 책상에 붙여놓지 않았다.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고, 몸은 지치고,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시간이 지나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러한 때일수록 내 솔직한 상황과 심경을 글로 남겨 두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많이 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또 이런 시기가 찾아오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글을 쓰기 힘들었을 때의 상황을 남겨뒀더라면, 미래에 충분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좋은 교본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출처 : 핀터레스트[LSylvia]

퇴사 후 다소 여유로운 일상을 되찾으면서,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며 정신적 평안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책을 읽으며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가 가는 길이 나를 찾는 길인가?

나의 글은 앞으로 어떻게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될 것인가?

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글을 쓰고 있는가?


다시 정체를 이기고 쓴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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