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싶었다. 차에서 내리며 생각해 보니 불과 사오 개월 전이다. 벌써 이만큼 아득하다니. 아스팔트에 내려 딛던 발이 멈칫했다.
2월 설 무렵 명진 슈퍼가 폐업했다. 근 십 년을 지나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사고, 라면을 먹고, 캔맥주와 스팸 안주를 사 먹던 장소에 타일 대리점이 들어온단다. 꼭지 잘린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3층짜리 건물 외벽에 며칠째 타일을 새로 바르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폐업을 앞둔 아줌마에게 서운치 않으시냐 했을 때, 점빵에 살다시피 하던 이웃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슈퍼 단골 멤버는 아침, 저녁이 달랐다. 아침조는 나만 보면 당신 큰 사우 닮았다던 바짝 마른 슈퍼 앞 연립주택 할매와 항상 싱글거리며 인사하던 윗집 웃상 아지매, 고관절이 아파 절뚝 걸으며 가게에 와서는 늘 뚱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앉았던 길 건너 할매가 있었다.
저녁 점빵은 아재들 차지였다.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고, 가끔 싸우고, 또 가끔은 기타 치며 노래하던 음주조. 정치, 경제 모르는 게 없는 듯한 박학다식 까만 뿔테 안경 아재, 폐지를 모으던 사람 좋은 뒷집 아재, 생긴 건 상남잔데 말은 새색시처럼 하던 목수 아재, 외상 소주값으로 맨날 아줌마 타박을 듣고 삐져서 구시렁대던 체구 작은 아재...
슈퍼 아줌마가 육 개월 넘게 입원했을 때, 이 사람들이 돌아가며 가게를 지켰다. 가게 문을 열고, 물건을 시키고, 장사를 하고, 셔터를 내렸다. 아줌마는 건강 탓에, 십 년은 더 할 줄 알았다던 슈퍼를 정리하면서도 그들 걱정을 했다.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한 번씩 자식들이 다녀가면 슈퍼 와서 자랑하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명진은 흔한 구멍가게가 아니었다. 가로수를 빙 두른 지지목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지탱하던 사람들의 자리였다. 명진은 든든한 나무였다. 이제 안다.
명진 슈퍼 앞 소방도로 건너에 한평 반쯤 크기의 쇄석 깔린 공터가 있다. 수령이 꽤 된 나무 그늘 아래, 아줌마가 남기고 간 파라솔 달린 테이블과 모양이 제각각인 의자 몇 개가 놓여있다. 차로 지나다 보면 어떤 날은 목수 아재가, 또 어떤 날은 연립 할매가 길 잃은 고양이처럼 혼자 앉아있었다.
이른 아침, 신천 다리 건너기 전 아파트 단지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담배를 샀다. 바로 회사로 가려다 공터 의자가 비었길래 차를 세우고 커피를 들고 내렸다.
다정하지 못한 내가 그나마 인사하던 동네 사람들을 이제 볼 일이 없다.
담배 한 대 얼른 피우고 일어났다.
하릴없이 명진 자리를 한번 쳐다 보고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