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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독(自慰讀)

by 수필버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다시 읽고 있다. 몇 년 만이지 싶다. 글을 쓴 지도 몇 해가 흘렀지만 그의 글쓰기 책은 여전히 유용하다. 하지만 재독의 이유는 그 유용함에만 있지 않다. 단검 같은 그의 문장이 읽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단문(短文)으로 일가를 이룬 작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김훈의 책을 봐도 되는데, 굳이 유시민 책을 잡았다. 에세이 '허송세월' (김훈 저)은 몇 달째 읽고 있다. 침대 머릿장에 누워있는 네 권 중 하나다.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김작가의 날카로운 짧은 문장은 여전하지만, 내용이 와닿지 않아서다. 노년에 들어선 김훈의 마음을 내 어찌 모두 공감할 수 있으랴만, 이 정도로 닿지 않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오랜만에 다시 잡은 유시민의 글은 좋았다. 한 문장에 한 생각이라는 깔끔한 단문 정의(定義)가 명쾌하다. 어디선가 읽은,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조사, 부사, 형용사 등이 들어가는 한국말의 구조 때문에 단문이 좋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유 작가의 단언(斷言)에는 미치지 못했다.


문장에 생각 하나를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에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요즘 내 글이 읽기 쉽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술술 읽힌다는 말은 칭찬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긴 한다. 글을 쓰고 고치며 조사와 부사를 빼는 일이 많다. 그리고 '에서는'을 '에선'과 같이 바꾸는 일도 잦다. 퇴고하며 읽을 때 입말에 가까울수록 내가 편해서다. 유직가도 쉽게 읽히는 글이 좋다고 주장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무리 심오한 철학이라도 지극히 평범한 어휘와 읽기 쉬운 문장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에서-


올해 쓴 내 글을 다시 읽으며, 너무 쉬운 것 아닐까 반성할 때가 있다. 어휘와 문장력의 한계, 논리의 부족이 어쩔 수 없이 쉬운 글만 쓰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글은 지식과 철학을 자랑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내면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감하려고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화려한 문장을 쓴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서야 훌륭한 글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중에서-


브런치에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글을 가끔 본다. 드러내지도 않고 감추지도 못하는 작가의 모호한 태도의 글이 그렇고, 진혼곡 같은 멋있어 보이는 단어를 쓰고 싶어 안달 나 보이는 글도 그렇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나 싶어 응원의 라이킷이라도 남기려고 참고 끝까지 읽어도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다. 이러면 독자로서 내 문해력을 의심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너무 쉬워 욕먹는 게 낫지 싶었는데, 유 작가의 글에 위안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번 재독은 자위독(自慰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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