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목과 고쳐 쓰기
어떤 하루를 글로 쓰려면 낡은 흑백 사진 몇 장으로 마을을 설명하는 기분이 든다. 날의 지배적인 느낌도 어린아이 일기 제목처럼 재밌는, 즐거운, 슬픈 처럼 뭉뚱한 감정으로밖에 남아있지 않다. 글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관찰하듯 사진의 화소 하나까지 들여다보고, 뭉툭한 감정은 뿌리까지 잘게 쪼개 음미해야 한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노트북 붙잡고 몇 시간을 낑낑대야 겨우 거친 초고가 나온다.
그날 눈을 떴을 때는 분명 불안이 마음 가득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글로 해체하면 계속 인형이 나오는 마트료시카처럼 불안 속에는 선택이 있고 또 그 안에는 희망이 있고 맨 마지막 인형은 꿈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불안에 눌리던 어두운 하루를 쓰려던 글은,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내 삶을 사랑하는 생의 역동이 불안의 진짜 얼굴이었음을 깨닫는다.
감정을 새로이 해석하고 나면, 스쳐가던 어떤 이의 미소가 비웃음이 아니라 응원이었을 수도 있음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던 이의 태도가 배척이 아니라 배려였을 수도 있음을 문득 알게 된다.
글쓰기는 삶의 어떤 하루를 재배열하여 기억에 담는 일이다.
고쳐 쓰기는 내 생의 어느 하루를 반짝이게 잘 닦아 챙겨두는 일이다.
글을 시작할 때 '불안의 서'였던 제목이, 다 쓰고 나니 '삶의 역동'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