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와 제목
(짧은 시나 시조를 쓸 때 아래와 같은 순서로 썼던 적이 있다)
그리다
그립다
그리운
그리움
그림
그림 그리움
그리움 그림
능동 자율
수동 타율
너를 그리고 있다.
너를 그리면 동시에 그리움이 되어버린다.
그리는 행위의 주체는 나.
그리움이 떠올라 마음속에 심상으로 남는다.
심상으로 남은 그리움은 그린 의도보다 더욱 그립다.
그리움에는 능동보다 큰 수동의 힘이 담겨있다.
나도 모르게 먼저 그리워져 있었던가.
그래서 그리게 된 건가.
그리는 순서
May 6. 2025
그림과 그리움 중
그리움이 먼저다
그리는 줄 알았는데
그리워져 있었지
그리움 수동태라서
그리운 그림이다
처음, 그림과 그리움이라는 소재에 사로잡히고
수첩에 단어들을 나열한 후 이런저런 문장을 적어보았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짜릿했던 감동의 지점을 복원하기 위한 발굴작업과 비슷하다.
괭이로 푹푹 파내면 울림을 주었던 원형이 훼손될 거 같아 꽃삽과 호미로, 그리고 붓으로 덜어낸다.
이 시조의 제목은 '그림', '그리움', '그리운 그림'이 될 뻔했다.
그런데 써놓고 계속 보니 그림이라는 것에 앞서 그리움이 있는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속에는 현재를 그려가는 펜끝보다 먼저인 그리운 세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동시 발생의 양면에도 극도로 미세한 무의식의 선후가 있지 않은가 하였다.
그 선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마음에는 한 방울의 물에 싹트길 기다리는 씨앗이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제목을 '그리는 순서'로 정했다.
이는 읽는이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쓴이의 욕심 담긴 실마리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