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칠곡에 다른 볼일은 없었다. 있다고, 가는 김에 잠깐 들러 인사나 하겠다고 말했다. 일부러 간다 하면 굳이 이 먼 데를 왜 오시냐 할 것 같았다. 부탁하러 가는듯한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네비를 켰다. 소요시간 49분. 책방문 여는 1시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고 통행료가 포함된 최단 경로를 택했다.
손을 내밀며 부장, 아, 이사님 진짜 오랜만입니다, 말하고 왼손으로 이사의 오른손등을 덮었다. 양손을 내미니 몸이 살짝 앞으로 숙여졌다.
사장님은 안 늙어요, 누가 보마 사십 대라 카겠습니다.
이사님이 진짜 그대로구만요. 이라마 반칙 아입니까.
기억보다 훌쩍 큰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믹스 커피 종이컵을 받으며 벽을 살폈다. 할인점 납품을 바라며 업체들이 맡긴 샘플로 가득 찼던 진열대가 듬성듬성했다. 오랜 세월, 상품에 가려져있던 벽이 창백해 보였다. 많이 놀란 얼굴처럼. 이삿짐 빠져나간 빈집이 문득 떠올랐다.
공공의 적이 된 가격의 다이소, 구색의 쿠팡 얘기로 우리는 한 편임을 강조하고, 기획 중인 제품 이야기를 했다. 뭐라도 보내달라는 답을 받았다. 뭐, 라, 도. 잠깐 입안에서 글자를 굴렸다. 진짜 같은 편이구나.
구내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1층 창고로 내려갔다. 차장이던 물류 담당은 부장이 돼 있었다. 또, 서로 그대로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손을 맞잡았다. 잘 지내시라, 예전처럼 자주 통화할 일 있으면 좋겠다, 말하고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시동 버튼을 누르는데 마음이 부르릉 했다.
책방 출입구에 누가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걸음이 빨라졌다. 2층을 지나며 계단 오르던 속도가 뚝 떨어졌다. 삑삑 삑삑, 투둑, 책방냥 통이가 캣타워에서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체석 창을 열고 노트북 전원을 켜는데 찰칵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얼굴이 좋아 비네요, 하는 말에,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요, 받으며 빈 테이블 쪽으로 눈을 돌렸다. 창으로 들이친 바람에 뒷목이 선뜩했다. 풍성한 머리카락은 새까맣고, 한 살 차이가 크게만 보이던 시절 알게 된 친구다. 말을 틀 골든 타임을 놓쳐 반존대로 대화한다.
인자 겨우 두 달이잖아요. 내 보기에 댁이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 대책회의입니다. 너무 걱정 마이소.
반쯤 내려진 블라인드가 봄바람에 날려 떠덕 소리를 내며 창에 부딪힌다. 낮기온이 급히 올라가는지 바람이 조금은 따뜻해진 것 같았다.
밥은?
백팩을 내려놓고 아내에게 물으며 냉장고를 열었다. 몇 가지 찬과 밥을 꺼내고 가스레인지 불을 댕기고 전자레인지 버튼을 눌렀다. 밀폐용기를 이단으로 쌓은 쟁반과 먹다 남은 플라스틱 소주병까지 들고 나와 소파에 앉았다. 카톡 알림이 떠있다. 폰을 들었다. 9 30 숫자 밑에 4월 1일 수요일 글자가 보였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안주인지 반찬인지 모를 두툼한 동그랑땡 하나를 통째로 씹었다.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