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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갖는 성찰]

{걸쳐진 나의 의상}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의 속담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물속도 희뿌연 경우엔 도저히 알 길이 없음에서 한 길 사람 속과 다름이 없을 테지만 언젠가 흐린 물도 맑아진 상태엔 결국 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모를 리 없지 않겠는가?.

“v.m 기리신”의 [신호]에는 “이 세상에서 인간처럼 흉악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지 않았는가.

늑대나 사자는 서로 잡아먹는 법이 없지만, “인간은 인간을 산채로 삼켜 버린다.”라는 말이 있다.


분장하고 꾸미고 신사인 척하며 고결한 척하고 위엄 있는 척하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인간이 부지기수이고 또 믿음을 보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경우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변하고 변하는 일이 능숙할수록 어쩌면 처세에 달인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고 자기변명이나 합리로 위장을 잘하면 할수록 높은 지위 혹은 더 높이로 올라가 존경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의 깊이는 진정성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힘겨운 일들이 인간사회에서는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실화를 예를 들어 볼까 한다. 내 직장 생활 15여 년 정도 근무 때인 것 같다. 당시 팀장급에서 과장으로 올라가는 시기이다.

과장 승진을 해야만 이사가 될 수 있었던 때이니 승진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진 대상자는 2명 필자와 또 한 사람 그 친구는 나 보다도 나이가 어렸고 근속 기간도 짧았다.

차이점이 있었다면 근친이었고 낙하산으로 날아와서 고속 승진을 할 때이다.

또한 그 친구는 명문대를 나오고 영국에서 인사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던 친구이다.



또한 그 친구는 기획실 팀장이었고 나는 인사부 계장으로 있을 때이다. 그럼 경영주는 누구를 과장으로 승진을 시키겠는가.

그때만 해도 전체 직원이 약 600명 정도 그룹으로 따지면 약 1000명 정도의 대학병원이었다.

필자도 이때만 해도 왕성한 노력파였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친구가 과장이 되었고 결국에는 필자가 패하고 말았다.

나이도 어리고 근속 기간도 짧고 업무능력 파악도 필자보다는 한 수 아래라 생각했지만 근친이었으며 기획실에서 모든 전반적 운영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필자는 그 인사 분야에서는 능력이 있었다 자부했지만 전체적 그림은 그리고 있지는 못했다.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타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났다.

당시에도 경쟁에서 밀리면 중도 하차해야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짐을 싸고 있었는데 회장이 불러 갔더니 지방으로 내려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

하기에 고민을 하다 자신을 다스리는 시간을 갖고 싶어 무작정 지방 한직으로 내려갔다. 물론 정신적, 육체적, 가정적 모두가 심란 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절치부심 그 고난의 아픔 3년이란 긴 세월을 참고 인내하고 견뎌낸 것이다.


물론 본 병원으로 올라와 명예이사까지 하고 나왔으니 후회는 없다. 필자가 왜 이런 것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 순간 감내하지 못하고 박차고 나왔다면 아마 더욱 추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까.

물론 결과야 어떻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래도 인간이 순간순간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내 발등에 내가 찍힌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든 것이지만 말이다.

아마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면 배신의 칼날에 가슴을 아리게 아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에 전적으로 신봉하는 사람의 실망은 필자의 입장 같았으면 때로 낙담하고, 실망하고, 때론 분노로 변하고 인간의 대한 혐오 증은 가슴 바닥을 저장하는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찌꺼기를 빨리 제거하고 버릴수록 현명하지만 어디 현명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련가, 지금의 현실에서 말이다.

서로 어울리고 함께 희로애락을 나눌라치면 배반의 아픔은 필연적으로 경험의 책갈피를 채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기심과 상대의 약점을 찍는다면 그 말로는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늦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 순간도 순탄치는 않았다.

박사 입네, 유학을 다녀왔네, 선 후배 입네 하며 압력이 들어올 때면 그 자존감 상실에 상처를 남기곤 하였지만 그때마다 더욱더 정진하였고 절차탁마라 할까 남이 쉬는 시간 밤새도록 눈에서 진물이 나오도록 했던 시간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그렇게 감내하고 인내했어야 했는가에 대해 지금도 <?>이다.

이제는 언제 어느 때 그만 자리를 털어야 할지 모르나 후회는 없다.

다만 이제 필자가 할 일은 참회록을 쓰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에 그 시기가 내일 일지 모래 일지 누가 알겠는가.

점점 시간이 줄어드는 시기이고 갈수록 건망증 때문인지는 모르나 요즘에는 시인이라고 작가라고 하는 부류들의 사고-너무나도 시류에 따라가는 것을 볼 때면 무에 그렇게 인간을 신뢰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장탄식을 하고 있지만 필자도 별반 고약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볼 때 지금 이 순간도 인간의 신뢰가 얼마나 헛것인가를 알 때면 나 자신도 비약적이고 변죽이 죽끌 듯-



그러나 공정, 정의, 상식을 벗어나 본 적은 없다.

시류에 따르며 행동을 하였다면 지금보다야 낳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지만 모든 이런 물상들에 돌아보면 아픔의 회상이다.

감언과 위선으로 포장하여 네게 던져주고 알맹이를 가로채는 결말이 막상 이승을 떠날 때 내 가슴엔 어떤 합리로 위장할 것인가를 자문자답도 수없이 해보았지만 해답에는 아직도 숙제가 풀리지 않는다.

열과 정성으로 맡고 있는 하늘의 신에게 묻고 싶다.

아마 내 죄를 사하여 줍소사의 기도는 번질 하게 하는 것이라면 나도 공모자 혹은 동조자가 아닐까?

이는 인간관계의 파탄을 의미할 것이고 어떤 명분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없는 괴로움의 기억이 끝까지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의 그림자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현명했다면 그렇게 순간의 벽을 치지 않았더라면 내 마음의 여백은 하얗게 변했을 일도 없고 끝까지 돈절의 행동은 결국 비겁의 의상을 걸치는 불행 중에 불행의 명찰은 없었으리라, 용서란 용서할만한 이유와 요건이 있을 때 합리적인 결말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지독하게도 가난한 어린애가 먹을 것이 없어 만두 1~2개를 훔치고 자벨 경감을 속이는 일에 어떤 판단이 있어야 했을까 라는 의문이지만, 수많은 갈등과 아픔의 그림자가 괴롭혔을 것은 명확할 것 같다. 공정, 정의, 상식이란 의상은 나를 속이지 않을 때 써야 할 명칭이라면 자기의 순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삶의 현명 성일 것이고 사회생활의 가치를 높이는 길을 확보한 사람일 것 같다.


사람은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라고-설파한 20세기 독일의 철학자(실존주의) 하이데거처럼 세상에 던져진 자기를 책임 있게 이끌고 나가는 일은 자기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의무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가치를 운위(云僞)하게 될 것 같다.

오늘도 마음속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들려오고 있지만 굳이 덮어 버리는 일로 안도감을 삼는 날이 지나고 마는 것 같아 아쉽지만-

더불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이유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혹여 필자 행동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누구에게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며 시간을 놓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느끼면서 에필로그 한다.


2022. 05. 19.


귀 빠진 날에-


금요 저널 주필/칼럼니스트/

문화연구위원/이승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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