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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적, 이해하기 힘든 의사 파업?]

{제네바 선언문과 밥그릇 챙기기 철학}



요즘 의대 2,000명 증원 이슈로 인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까지 동참하며 휴학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으로 국민의 우려가 심화 갈등으로 가고 있다. 복지부는 사직 등 근무지를 이탈한 의사들에게 업무 개시 명령 및 미 복귀 시는 면허정지로 엄정 대응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그리고 사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그들의 대표가 페이스북에 여러 건 글을 올렸다. 

응급의학을 택한 젊은 의사의 고뇌를 엿보며 읽다가 고개를 갸웃한 대목이 있었다. “정말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에 의사 인력을 추계해야 합니다.” 이는 의사 집회의 피켓 문구이기도 했다.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
 
 합의? 의대 정원 결정을 의사들과 합의를 해야 하나? 

대학 정원 조정하면서 그 졸업생 허락을 받는 학과가 있나? 

300명 사시 정원을 1,000명까지 늘리고 로스쿨 도입해 2,000명으로 확대할 때 정부가 변호사 단체와 합의를 했던가?
 
 현장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전부일 순 없다. 

법률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고 변호사들이 책임질 리 없듯이, 의료 서비스가 기능 못할 때 결코 의사들이 책임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 책임지지 않을 이들이 정부 정책에 ‘협의’도 아닌 ‘합의’를 요구하는 상황. 이번 의사 파업을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요구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적어도 그 내용이 이해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들의 주장을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다. 먼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논리. 의사 단체는 1. 우리나라 활동 의사 수의 증가 속도가 빨라서 의대 정원을 안 늘려도 머잖아 OECD 평균을 따라잡고 2. 급격한 인구 감소로 미래에 의사가 남아돌 거라고 주장한다. 1은 대한의사협회가 2013년 꺼낸 추계인데, 당시 “2023~2026년이면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었다.” 

2024년인 지금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고, 의협은 추월 시기를 40년이나 늦춰 2063년으로 수정했다.
 
 2. 는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 변화에서 한쪽만 얘기하고 있다. 통계청 추계를 보면 향후 30년간 우리나라 인구는 8%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는 234% 늘어난다. 아픈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니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어떤 의사 단체도 이 부분을 말하지 않는다. 의대 학장들은 성명에서 “의사 교육 기간과 급격한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인력 수급 정책은 30년 뒤를 내다보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30년 뒤를 보라면서 30년간 폭증할 노인 인구는 쏙 빼놨다.
 
 다음,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비가 증가한다는 논리. 늘어난 의사들의 과잉 진료에 의료비가 상승한다는 1970년대 유인 수요에 근거하고 있다. 유리한 가설이니 차용, 했을 테지만, 너무 오래전 것이다. 이후 숱한 후속 연구가 이뤄졌다. 의사들의 경쟁에 의료비가 낮아진다는 정반대 학설부터, 국내에선 의원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주로 유인 수요가 나타나 오히려 긍정적이라거나, 의료비는 국민소득과 노인 인구에 크게 좌우돼 의사 수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논문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이렇게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나머지 두 가지 명분은 자연히 힘을 잃는다. “의사 늘린다고 필수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필수 의료 살릴 방법을 요구해야지, 부족한 의사를 늘리지 말라고 파업할 일인가.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그럼, 교육 요점 핵심에 더 투자하라고 이참에 주문해야지, 증원 자체를 막을 일인가. 의사들은 정부가 필수 의료에 쏟겠다는 10, 조원을 “이렇게 쓰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에 나서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거꾸로 병원을 비웠다.
 
 한동안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왕 벌어진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병원 이용 관행’이 바뀐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비중은 50% 정도였다. 나머지 절반은 더 작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데, 큰 병원을 찾는 오랜 인식이 심각한 쏠림 현상과 의료 지연을 초래했다. 정부가 지금, 이 절반을 원래 갔어야 할 병원으로 보내는 회송 작업을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질환의 경중에 맞는 병원을 찾아 달라 호소하는 중이다. 전공의 공백 피해를 줄이려는 이 조치는 왜곡됐던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가 많은 『new normal』 낳았듯, 파업 사태로 병원 이용의 새로운 기준이 정착한다면 한국 의료의 숙원이 풀릴 수 있다. 국민적 호응이 필요하다.     

아무튼 필자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보면서 이것이 정의로운 의사들의 행동인지는 글쎄올시다?이다.

과연 의사들이 집단적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면서 파업하는 것이 정당성이 있는가는 차치하고 이번 DR. (의사) 증원(2,000명) 관계로 전공의들이 파업을 종용하고 대부분 정부와 강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면을 보면서 의사들의 인성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 의사의 윤리 등에 대한 선서문을 보게 되었다.

그 속에는 희생 · 봉사 · 장인 정신이 담겨 있으며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전문을 필자는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의술을 배운 의사들은 사실, 아무나 대처할 수 없는 고급 인력은 틀림없으나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여러 차례의 집단행동은 그들의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사의 진료 특수성 때문에 파업, 집단휴진 등으로 인한 그들의 요구를 매번 정부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없는 대처 불가한 자리의 의료 붕괴로 인한 혼란 때문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 90%가 의사 증원을 찬성하고 있고 히포크라테스 선서 : 의사의 윤리적 지침, 제네바 선언문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난맥상이 아닐 수 없다.      

의사 부족으로 인하여 업무 과중과 전공의들의 열악한 조건을 충족시켜주고 또한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의사 증원을 하겠다고 정부에서는 더 이상 이대로 간다면 국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데서 불가피한 상황이라 증원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그들은 왜, 반대하며 파업하는 것일까? 그들의 수입은 일반인들의 수십 배가 되어 이미 사회에서는 특권층에 속하는데 결국 그들의 밥그릇 싸움이 맞나? 의사 증원이 되면 수입이 줄어들까? 걱정 때문에 -           

상식적으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은 안다. 오늘날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정한 '제네바 선언문'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할 때 쓰이는 선서문도 사실은 제네바 선언문이다.     

히포크라테스(약 BC 460년~약 BC 370년)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로 보통 그를 의학의 아버지, 혹은 '의성(醫聖)'이라고 부르며, 의학사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를 만들어 고대 그리스의 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었으며, 마술과 철학에서 의학을 분리해 내어 의사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특히 그는 이전 학파의 생각을 정리하여 시행해 보고, 환자를 치료한 것을 기록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든 것을 통해 치료 의학의 발달을 세웠다. 한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자          

◆ (제네바 선언문의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의 스승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다.

나의 의술을 양심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베풀겠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는 환자에 관한 모든 비밀을 절대로 지키겠다.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다.

나는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나는 생명이 수태된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나의 명예를 걸고 위와 같이 서약한다.     

위와 같이 되어 있다.

물론 요즘은 시대가 변하여 MZ세대라 하여 자기 자신들의 가치관을 중요하다는 점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학교수들도 생각이 같은 것인가?     

세상에 주체의 의미는 여러 갈래이기에 공동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체는 국민이다. 특수의 의사라는 지성은 바로 히포크라테스 정신이다. 특권층 해당도 되지만 국민의 생명도 담보하는 막중한 지성인이기에 의사의 정신 가치가 육신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판단에서 서로 보완하는 작동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옛말에 주체 권력이 한 단체의 힘만 가지고 밀고 간다면 그 단체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며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절대권력의 화신 진시황제도 망하고 죽었다.

이런 평범한 명제 앞에 지식인이며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사들이 단체적으로 이익의 단면만을 보고 현재 동조 파업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자신들만 주장하는 독선과 아집의 결핍된 사람들이라 볼 수밖에 없다.     

보자,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무원노조, 교원노조 등 많은 집단적 이기주의 자들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 정부와 정면에 서서 충돌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시대는 지났다.

그 영향력이라는 문제가 오호(好惡)로 판명이 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전달 했는가의 함량과 분리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2차 병원으로의 환자 몰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응급실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2차 병원까지 의료대란이 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늘날 의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의사의 역할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류사회의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의사의 봉사활동으로 지구촌의 건강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천사와도 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 어쩌면 하늘이 내려주는 책임이고 가치 있는 인생의 길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분야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가 발생하고 있다. 업종별, 분야별 전문성은 많은 경험에서 축적된 귀중한 자산이고 경쟁력을 창출시킨다. 따라서 기득권이란 중요하다.     

문제는 기득권이 그들을 정체시키고 자기들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기득권으로 인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변화에 대비하기를 거부하여 변화하지 못함으로 도태된다는 것이 역사적 사건들이었다.     

1차 산업혁명을 만든 증기기관이 발명되어 운송수단이고 교통수단이었던 마부들의 일자리가 위태롭다고 판단하여 영국에서 최초의 마부 파업이 유럽을 강타했다. 결국은 증기기관이 이끌어가는 변화에 굴복하고 오히려 그들이 증기기관의 기관사로 취업하는 시대적 변화가 되었다.     

시대는 변한다. 진보하는 사회는 변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에너지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기득권은 물과 같다.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분야별 기득권은 시대를 이끌어가는 힘이지만 변하지 않으면 기득권은 썩는 물이 된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든 빅데이터는 치료하는 [인공지능로봇] (watson, Kaspar 등)을 만들었다.

의사의 전문성은 인간의 생명과 연장을 시킨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유능한 의사는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knowhow) 의해 남보다 정확하게 병명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병원은 첨단기기에 의하여 불치병도 치료하고 있다. 

첨단기기를 발명한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의료기기가 개발되었고 병원을 평가하는 의료시설의 기준이 되었다.     

지구촌의 수많은 인종이 다양한 병으로 치료받고 치료 과정에서 습득된 수백만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 (watson)가 오늘날 명의들의 치료 정보로 활용되고 있다. 수십 년의 치료 경험과 능력이 지구촌의 수백, 수천, 수억 명의 진료데이터를 바탕으로 명의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명의로 명성을 얻기 어려운 시대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의료진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며 허균의 『성소부부고』 중 『호민론』에 ‘호민이 된다는 것은 곧, 백성은 판단의 영민함을 뜻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심판이고 원리라 할 것이다.

평소에는 잠잠하나 결정적일 때 판단을 내리는 호민 정신이 이 나라를 지켜온 기준이라 본다면 자신들에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계속 이어진다면 백성이 일어날 것이다.     

백성은 무서운 것이다. 

이제 거리에서 집단적 패거리를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국민과 함께 가는 정부와 대화를 모색하는 국민을 위하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선국후사로 조금씩 서로 양보하는 미덕이 부족한 시대라 하지만 지성인, 지식인, 의사라는 특급 위치에 있는 그대들이 국민을 위해 깃발을 세워 주기를 바란다.            

요즘 현실을 보는 정치와 무엇이 다름일 것인가?

때마다 집권한 정권은 언제나 엄히 법대로 처리한다는 말을 언급하지만 결국 사회 혼란을 지속하는 말 잔치가 되었으니, 정치는 없고 기회주의, 이기주의 집단만이 있기에 뉴스의 한복판은 어지럼증과 멀미가 끝이 없다.

그야말로 법 대로와 엄중하게 처리하는 해답은 명확하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지도자에 의해 이 나라의 애국은 자꾸만 회의에 깊이를 방문하고 있음을 애달파할 뿐이다.

이제 정권도 교체가 되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총체적 난맥상을 헤쳐 나가는 길만이 우리가 가야 할 문제라 보면서 나가려 한다.      


2024. 02.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필자 저서]
[필자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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