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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성정과 인생의 時]

{고백의 형태}

작가라는 타이틀을 패용하고 실질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대부분 소설가(小說家)는 집 가(家)를 붙이고 시인(時人)은 사람인(人) 자를 붙여 구분하곤 한다. 또는 희곡작가, 시나리오작가, 또는 평론가 혹은 비평가 등은 모두 집(家가 자를 붙여 구분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필시 사람인(人) 자는 집(家)을 구성하는 인원의 개념일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붙여야 할 이유가 모호하고 상위 개념인지는 모르겠다. 또 어떤 의미로도 정리된 개념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시인이라고 굳이 인(人)이라는 뜻을 붙여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이유이기에 -



사전적 의미로는 시인은 시를 잘 짓는 사람 혹은 그런 사람이라고 정리하지만, 시가라는 말을 찾아보면 시인이라는 동등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말을 들으면 도덕적인 상상이 따라오겠지만 가를 붙이면 집안의 구성원 즉 문학의 구성원이라는 뜻도 예외일 수는 없을 듯하다

물론 문학의 장르인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희곡작가 등으로 모조리 문학 집안의 구성원을 두리뭉실 암시에서는 시인이라는 의미는 가장쯤의 개념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장르의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전제가 앞서야 한다. 문학은 모두가 소중한 인간사를 소재로 선택하고 또 그런 특징을 담는 점에서 다만 문학이라는 그릇의 용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시를 응축(凝縮)이라 칭한다. 이는 그들의 실용주의적 특성이 담겨있지만, 서양의 poem은 ‘만들다.’‘행하다’의 뜻이 담겼고 poetry에서는 주로 시 정신을 암시하는 개념이 된다는 뜻이다.

굳이 소설가에 소설가의 정신을 운위 하지 않고 수필가에 도덕적인 의미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시에서 ‘만들다.’‘행하다.’의 뜻 전자에는 제작과 후자에는 도덕적인 개념의 ‘행하다.’의 암시를 천천히 살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자도 [시를 알면 정치를 안다]는 말은 시와 바름(정치)의 순서에서는 확실히 도덕적인 의미가 담긴다. 예치는 덕 덕치란 목적에 당도하는 공구(工具) 같다는 의미이다.

이규보의 <백운소설>에 “부시 이의위주(夫詩 以意爲主)나 최자의 <보한집>에는 {시는 기를 위주로 하나,} 기는 성에서 발하고, 의는 기에, 의거하고, 말은 정에서 나오고 정은 곧 이이다. 에서 모두 뜻을 거론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시경>에서도 ‘시는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적은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지(志)와 의(意)가 동일한 개념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지(志)나 의(意)가 공통의 의미라는 한정을 만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심지(心志)를 파악하는 길을 만나는 상징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한 편의 시에는 시인의 모든 인생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품과 성정의 모든 세밀함이 연출되는 고백의 형태를 접하는 일은 시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허구를 접하는 감성과 진실의 속살을 만나는 차이는 엄존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시는 도덕적인 무게의 사람이 되기에 비로소 궁극의 지점과 파악되는 길을 만들게 된다는 뜻에서 본다면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도덕성이나 예의를 갖춘 조건을 말하는 강조에서 가까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된다.


작금에 각종 문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고 누구나 돈만 건네주면 등단이라는 딱지를 남발하는 문단들이 가슴은 없고, 말장난이나 지엽적 말단 일상의 에피소드에 매도당하는 면면을 볼 때 심히, 걱정이 되며 우려스럽다는 말이다. 무게가 있으며 윤리적 관점을 가지고 작은 문단 즉 계간지나 연간지, 그리고 월간지라도 엄정한 잣대로 기준을 잡고 품위가 있는 시단이 없다는 것에 아쉽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이들이 천지에서 시인이라는 딱지를 패용하고

다니는 꾼들이 있으며 이 문단 저 문단 기웃거리며 문단의 물을 흐려놓고 다니는 한 아직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문단 누구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작금에 그런 장면을 보는 것에 이마가 찌푸려진다.

고백의 형태를 진심으로 그리는 시인들도 많다. 하지만 꾼들에 의해 좌우지당하지 않는 시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론이 없음을 어쩌랴?


2025. 09.



문화칼럼니스트/이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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