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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癸卯年)] 첫날]

{검은 토끼해를 맞으며}

[경북 영덕 바다에서]

이 글은 필자가 올해 12월 05일 3번째 고향인 경기도 이천시 고당리로 전원생활을 꿈꾸며 모든 것을 던지고 세 번째 날 밤에 써두었던 글이다. 왜 그런가 하면 늦은 나이에 무슨 전원생활이냐 하며 핀잔을 주고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안착한 마지막 고향이기에 숙연한 맘으로 쓴 글이다.

더 이상 늦추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마음의 강박관념이 더욱 필자를 짓누를 때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다.


세 번째 고향인 경기도 이천시 고당리 산골 속으로 들어와 맞는 아침이 온 세상을 하얀색으로 덮어 순백의 고향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에 추운 날이지만 눈을 고대한 것은 아니지만 눈이 내렸다는 것은 나에게 필시 좋은 소식이라 여기며 아직도 낭만이 살아있다는 증거라 믿으며  새벽 산책을 즐기고 있다.

분명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짝이는 하얀 눈이 시야에 들어오면 부신 망막을 좁히면서 더 먼 세상을 바라보며 열성으로 발밑에서 소리를 전달하는 음향에는 조화에서 얻은 미묘한 감성이 일렁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얼마나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했던가 라는 자괴감이다. 돈으로 가난을 도와준 적도 없고 어려운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한 적도 없고, 또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괴로움을 은연중에 끼친 적은 없는지를 돌아보면 모조리 말없음표에 들어있는 사념들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는 일이 어렵고 지난(至難)하다는 말을 첨가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약 1달 남짓 이곳 이천 고당리에서 거주하면서 돌아보는 일이 처연해지며 널어지는 듯하다. 이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깨어남의 요소도 될 것이고 지배의 사고가 넓어지는 특성도 될 것이다.

바로 삼매경의 의미는 차별의 이원성이 없어지고 일원성으로 통일되는 것을 생각하면 눈이 내린 상태는 바로 인간의 삼매경을 불러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사물의 전체와 통일성은 집중의 상태에서 가장 민첩하게 작동되는 의식의 일단이지만 주객의 이원적인 상태가 아니라 전체가 하나로 통합되고 또 전체는 부분을 용해할 때 비로소 정리되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 바로 이런 것을 학수고대하고 기대했던 거야, 라며 그래 앞으로 사는 동안 여기서 필자가 할 일은 얼마나 혼신을 다해 독자가 원하는 독자가 수용하는 책을 어떻게 구현하고 쓰느냐가 최대 목적인 거야 하며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이런 단맛, 신맛, 쓴맛은 처음이로다


필자가 신명을 발휘할 때는 바로 이런 처지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중이 안개로 가린 것이 아니라 안갯속에서 하나하나의 사물에서 눈을 뜨고 다가오는 의미를 포착하는 일이 바로 글 속 삼매경에 들었을 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경지를 방문하는 것은 경험의 원숙도 있겠지만 혹은 체험, 필자가 이런 산속을 소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비로소 살아가는 순간을 언제 또 기회를 잡아보겠는가?

글이 술술 풀리는 순간은 이런 삼매경의 중심에 설 때 반짝이는 세계가 다가오는 뜻 일게다.

젊은 날의 우왕좌왕 생각 때문에 갈피를 놓고 탄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헤매고 방랑하는 의식을 향해 모진 학대를 자학하고 감행했던 시절이라면 이제는 정제되고 신념의 줄기가 뚜렷해지는 양상을 감지한다고나 할까?

이 또한 철이 들어간다는 뜻으로 친다면 가관인 셈이다.


대체적으로 눈이 오면 바람이 오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는 찬 기운이 세상을 압도하고 조용했던 산천이 눈보라의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풍경화가 되지만 독목(禿木)으로 서있는 나무들의 정적은 금세 깨어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미동이 나뭇잎의 마지막 전별을 아쉬워하게 되는 일은 누구나 겪을 것이다.

필자가 운동삼아 걷는 먼 마을에도 하얀 눈이 의상을 걸치고 다시 태어난 의상을 걸치고 미소를 세상에 뿌린다.

눈 속을 걸어 내가 이르고자 하는 진리의 중심에 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영혼의 중심에는 항상 비어있음의 고요가 밀물로 진리를 토할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죽음 앞에서도 오연한 작별을 고할 수 있을 것이기에 더 없는 신중을 모으려 집중할 것이다.

이런 실험은 지금부터이다.

여기 이천시 고당리 산 중 말이다.

눈은 녹아 없어진다. 마치 인간의 처지처럼 언젠가 화려했지만 이내 사라지는 흔적에 아쉬운 이름의 공허가 비유로 눈과 키를 맞추려 한다.

아침에 세상을 덮은 흰빛의 전령사가 한낮이 되니 뜨문뜨문 빈터를 보여주는 흉함이 다시 꿈을 깨우는 현실로 귀환한다.

바람은 잦아들고 다시 먼 거리로 달려가는 자동차 한 대의 속력은 과연 나와 무슨 의미인지 숙고하지만 바람이 두드리는 순간 나의 백일몽은 소변을 봐야겠다는 배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이치를 무엇이라 표현할지는 글쎄올시다.이다.

아무튼 눈이 내린 날의 아침이 너무 화려해서 다시 꿈을 꾸어야 하는 내일이 올지라도 이번 심사숙고한 작품으로 인하여 페북, 카카오, 브런치 등 독자들, 친구들, 소중한 선배, 후배들에게 죄송함과 송구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으리오,


이번 질긴 운명으로 상재하는 시평 집, 칼럼 집을 페북, 카카오, 브런치 독자, 선, 후배 선생들에게 조심스럽게 2023. 01. 에 출간하는데 온 정성으로 바친다.

그동안 출몰하지 못한 서운함, 미안함, 모두 안아 주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독자와 친구, 선배, 후배가 되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계묘년 흑해의 토끼가 우리를 기다린다. 모든 가정에 행운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앙망하오며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 01. 01.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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