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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flction)의 구조】

『1. 픽션의 축도』

만약 가장을 위장하면 인간의 모습을 하늘 높이에서 객관적으로 조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 번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상현실일 수 있겠다.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사실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삶의 행로가 애환의 여정을 만들면서 장면 장면마다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픽션은 이런 흥미 유발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기에 논픽션과 다르며 감칠맛과 상상의 나래를 펴야만 독자가 흥미를 유발하게 하며 그곳에 빠져들게 되며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픽션이 필요로 하는 극장의 요소가 가미되어야 하며 하찮은 소재일지라도 귀중하게 의미로 연결되어 리얼스토리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극장의 요소는 분위기와 장면마다 극적인 내용을 담아야 하며 작은 소재일지라도 리어함이 들어 있을 때 독자는 시선을 고정하면서 제한된 시간을 망아(忘我)의 경지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재의 독특성은 흥미를 고조할 수 있는 요소 즉 입체적인 구성이 어우러질 때 이야기의 진로는 더욱 신명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전범(典範)이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어떻게 사는 인생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어떤 인생 등의 가치로 분류하는 것은 하등에 무가치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는 것 자체가 저마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열성적이고 노력하면서 소임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흥미와 기억을 축척하는 스토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다만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소재 혹은 연결해 주는 전달자의 임무에 충실한 픽션의 제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허한 것이 아니고 실재한 현실성이 소설의 주요 내용으로 포장이 될 때, 비로소 독자는 다음 장면을 조바심 담긴 기다림으로 축척하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 즉 현대는 위기의 시대라고 모두 말들을 하고 있다. 이는 컴퓨터의 출현 AI 시대에 더불어 시간의 변화 간격과 간 극이 짧아지는 특징과 인간의 삶-


Ai(챗gpt) 논문, 소설, 등 가설을 그럴듯하게 그다고 하여 나온 말이지만 으로 우리가 가져야 필연이라고 보는 것이다. 점점 AI가 우리 사회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이다. 사실 그런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한국에 방문하여 Al를 만든 샘 오트먼도 '핵융합 기술에 대해 이제는 인간이 만든 지적 영역을 저작권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대변되는 지적 저작권을 분리하되 함께 이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든다면 AI(챗 gpt가 기술을 활용해 bts를 노래를 만들어 활용한다면 bts도 함께 이득도 같이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그러한 시대가 와 있다고 보지만 경계는 분명히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와  같은 장소에서 '파이어 사이드 챗 위드 오픈 ai 행사를 하였다. 이렇듯 올트먼은 앞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핵융합기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라고 말을 했다.

에너지 가격이 낮아질수록 AI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초 단위로 넘어가는 지구의 현실이 된 것이다.

전원 시대엔 1년의 단위로 쪼개면서 살아왔고 산업 시대엔 하루를 살았고 현대에는 초 단위의 변화로 살아가는 특징이다.

여기서 인간의 생활에 지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삶의 변화가 현란하게 장면 전환하기 때문에 공간의 축소 또한 마음대로 왕래하는 쌍방향의 시대가 되었다.



말하는 것과 답신이라는 절차가 아니라 둘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대로 진입이 되었기 때문에 따라서 인간의 의식도 변화한다.

나노의 기술변화 우주를 넘나드는 시대 이러한 일들이 픽션에서는 과연 어떻게 수용될까?

자못 궁금하다. 물론 현상적인 현실이 있고 여기서 체험을 객관적인 기법으로 소설화한다는 것은 소설가의 상상력에서 가장 현대적인 고뇌를 갖지 않는다면 안될 것이다.


첨단의 시대에 첨단의 사고는 그런 상상력과 보조를 맞출 때, 비로소 현대인의 정서에 부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상의 추리 미학


              

상상의 깊이 있는 여정(旅程)은 재미와 결합하여 픽션 미학을 도출하고 있다.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픔, 슬픔, 미움, 등 더불어 긍정으로 마무리되는 생에 대한 해석이 될 것 같다. 이는 꿈을 설정하고, 희망의 길이 항상 고난과 아픔 그리고 체온을 교감하는 생의 현장을 엮어 리얼리터로 포장한다. 현대인의 특성을 고독한 모습으로 말이다



개개인간에게 다가오는 고독의 함정을 예리한 예지력으로 픽션의 현장 속에 구성하는 것은 픽션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의 기둥이 될 것 같다.

다만 문체의 유연함으로 시(詩)적인 간결함과 맥락을 이어가는 문장 단련이 필요한 것은 앞으로의 진전이 이룩해야 기쁨이 배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고독은 생각, 과거, 미래, 현실을 갈구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자아와 내고의 산물이다. 인간만이 가진 특수한 인간 마음(Ego)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대의 고독과 과거의 고독은 생활 패턴의해 지적 현상에서 정말 다르다고 한다.  

로빈슨 크로스는 한 사람의 체험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로빈슨 크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섬이 되는 상황-

이런 처지에서 인간의 모습은 어떤가?

그러나 자족의 섬이라는 데서 과거의 로빈슨 크로스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작가의 시대 의식과 더불어 중요한 덕목은 그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가의 앞서 요구되는 도덕성이다. 위대한 소설가는 위대한 사상가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 인생을 아픔과 고해(苦海)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여기서 희망의 메시지를 내보일 때 안도감을 갖는다.


문학의 궁극적인 의도는 희망이 있기에 이를 간과하는 것은 작품으로서의 무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조건들이 리얼리티라는 포장을 거쳐야 할 때 작가에게 능력을 요망하는 조건을 거론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경지를 넘어 더 높은 곳을 향한 걸음을 시작하는 인상이 너무 짙다.        

 

3. 픽션 <flction>의 서사구조


픽션의 서사구조는 소통과 축(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픽션의 이야기의 얼개 구조와 문체를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즉 픽션의 의식 구조가 소통을 통해 짜임을 이루면서 전달의 형태가 문체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구조는 작가의 중심이 되고 문제는 독자에게 어떻게 미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드러날 때, 이 둘이 합하여 픽션의 미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픽션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섬세함이 특징을 이루는가 하면 문체는 이야기의 구조를 구조화하는 데서 서사구조의 특징이 내장되는 것이다.



픽션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자신을 가장(假裝)하는 형태로 구조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작가는 뒤에 숨고 전면에 주인공의 말이 곧 작가로 돌아가는 의식이기 때문에 주인공 곧 작가라는 등식 앞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픽션을 서사구조를 완결하려 하는 것이다.

완결은 독자에게 어떠한 인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이기 때문이다.

픽션의 마무리는 굉장히 중요한 작가의 의도를 집약한다.

사실 첫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하여 픽션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마무리 구절은 진행된 마무리(compltion) 구성을 집약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작가라 한다면 삶의 문제들을 어떠한 의도로 바라보는가의 결론에 도달되게 되기에 부정에서 혹은 긍정 혹은 희망을 독자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작가의 생각이 곧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최종 결론으로 토로하기 때문이다. 1편의 작품들도 유사한 결론을 내려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유나 여백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서술형, 종결이다.라고 작가의 확신을 표시한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작가의 성품을 나타내는 생에 대한 신념을 감지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것 같아 홀가분하게 무한 기쁨을 맛보면서 무한대의 서사 구조에 EGO(마음)의 넓이로 보면서 정서적 신념의 가치로 가야 되지 않을까 하면서 마무리할까 한다.


2023. 06.


대중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이승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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