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도 히어로도 될 수 있었던 마법의 물건
지금이야 공주 놀이며 원하는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옷을 꽤나 저렴하게 팔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있었더라도 저렴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부터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이불과 상상력이었습니다.
조용히 방에 혼자 있거나, 어른들이 바쁘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커다란 이불을 어깨 위로 두르고 커다란 거울을 보며 혼자 우아하게 걸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불이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고는 한쪽 팔만 올리면, 기다란 이불이 팔을 살짝 감싸며 위엄이 도사리고, 비록 캐릭터가 그려진 저렴한 이불일지라도 여왕이 대관식 때 두르는 망토와 달라지지 않는 것이죠. 그렇게 멋진 척 연설도 해보고, 천천히 걸어도 보고, 우아하게 손도 흔들어 보다 보면 이 세상에 여왕이 되어볼 수 있었습니다.
악당을 무찌르는 히어로가 되기도 쉬웠습니다. 조금 더 가볍거나 작은 이불, 수건, 보자기 등 잡히는 것을 어깨에 가볍게 두르고 한쪽 손을 올려서 멋진 포즈를 취해주기만 하면 됐었거든요. 운동회를 하면 맨날 뒤에서 2등을 하던 운동신경은 영 꽝인 아이였지만 이 상상의 시간 속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하늘도 날 수 있는 히어로였습니다. 시골 할머니 댁에 있는 멋진 소파에서는 뛰어내리기도 하며, 절벽에서 정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멋쟁이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잔뜩 사람들을 구해내고 나서 먹는 요구르트며 간식은 최고였습니다.
가끔은 이불을 머리에 두르고 아라비아에서 온 상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다른 지역의 공주가 되어 보기도 했습니다. 숄처럼 두르고는 우루술라 같은 악당처럼 놀아보기도 했죠. 이불이 놀이기구로 바뀌던 순간도 너무 좋았습니다. 넓은 이불 위에 저와 동생 가끔은 사촌 동생까지 올라가면 어른들이 그걸 잡고 신나게 뛰어주었습니다. 우리끼리 신나게 탈 때도 있었죠. 방문에 엉덩이가 들리고 튕겨나가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웃느라 배가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저런 물건을 가지고 소유하려고 하고, 없으면 허전한 요즘에 가끔 어린 시절을 생각합니다. 모두 다 가질 순 없더라도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던 시절을요. 조금의 상상력을 더 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그때처럼 다시 세상을 다 가진 듯이 행복할 수도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