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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gooni Dec 20. 2021

나중에 커서 뭐하지?

동기부여

난 생물학적으로 이미 다 컸다.  


성장하는 것은 멈춘 지 오래고 아마 퇴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다 커버린 나는 아직도 '나중에 커서 뭐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고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초등학생 때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로봇 만화를 보고 그런 꿈을 키운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에는 다양한 것을 것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의 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꿈을 유지한 채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전자과로 지원했다.   


전자과에 가면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4년의 학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을 거쳐 공학 박사가 되었다.  


엄밀히 말해 어렸을 때 꿈인 과학자는 아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공학자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는 나는 과학자와 공학자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론 나중에 커서 과학자가 되어야지 라는 꿈은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공학자가 되어 회사에 취직한 지금은 어렸을 때 바라던 대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바라던 꿈을 이미 이루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크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앞선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커서 뭐하지?라고 스스로 물어봤지만, 아직까지 그래 이거야!라고 할만한 꿈은 떠오르지 않는다.   


몇 년 전 중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가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은 어린 학생들의 꿈을 함께 찾는 것이었다.   


'얘들아 꿈을 찾아야 돼 하고 싶은 게 뭐니?' 

'잘하는 게 뭐야?'라고 물으며 아이들에게 꿈이 있어야 하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문득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은 뭐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지?'   


40년 넘게 살아온 나도 내가 잘하는 것이 무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잘 모르는데 15년 정도 살아온 중학생들에게 잘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 무책임해 보였다.  


나보다 많이 살아온 선배들이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주위에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께  '나중에 커서 뭐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각 분야에서 나름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기에 나중에 커서 뭐할지 이미 답을 구하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지만 의외로 돌아오는 대답은 그분들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당연히 그분들 중에는 명확한 꿈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었다.) 


그렇다.   


꿈을 찾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40년 가까이 살아도, 50년 가까이 살아도 모두가 똑같이 미래를 불안해하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많다고 미래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뚜렷하게 꿈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처절하게 고민 중이며, 어떤 사람은 꿈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꿈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은 꾸준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통해 계속 움직이고 생각할 것이다.   


꿈이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도 막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지금 당장 꿈이 없다는 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다.  


누군가는 절실히 꿈을 찾을 수 있었지만, 또 누군가는 꿈꿀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던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꿈을 가지려고 고민하고 생각해봤지만, 아직은 답을 찾지 못 한 사람도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미 다 커서 퇴화하고 있는 놈이 왜 자꾸 나중에 커서 뭐하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꿈이라는 것, 소망이라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준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미래를 그리며 지금 당장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버텨낸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나중에 커서 뭐하지'라는 질문을 할 때 나는 언제까지 이일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삶의 원동력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버렸기 때문에 의욕 없이 살았기 때문일까?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던 나 스스로가 나도 모르게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커서 뭐하지?'란 질문은 불안감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나중에 커서 뭐할지에 대한 답은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중에 커서 뭐하지?' 질문을 하게 되고 난 이후부터 더 고민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도 보고, 글도 써보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답은 나오지 않지만, 계속해서 물어보고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고 고민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의 작은 불씨였다. 무언가를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동기부여!


내가 어떤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동기부여를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움직이기 위한 힘이 필요했고, 그 때 '나중에 커서 뭐하지?'라는 질문은 나를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꿈이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꿈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지금 당장 꿈 없이 목표 없이 살아간다고 해도 그 시간 또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일 수 있다. 


방황을 해봐야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당장 꿈이 없고, 

해도 되는 것이 없고, 

무기력할지라도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 지금 없으면 나중에 꾸면 되고, 꿈이 없어도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있다면 꿈이 뭐 별건가?

하는 것마다 모두 다 잘 되면? 사람이 교만해지기 쉽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무기력하다면, 무기력한 그 시간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은 어떤가?  


지금 당장 꿈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고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것 같은 지금, 나는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겸손함을 배워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해서 무기력해 보이지만, 바닥을 딛고 뛰어오르기 위해 바닥에 아주 잠깐 머물러 에너지를 비축하는 중이다. 


모든 것은 다 쓸모가 있고 모든 때는 다 의미가 있다.  


오늘 한 번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오랜만에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조용히 한번 물어보자.

 

'나중에 커서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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