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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언제나 좋은 레퍼런스가 있다

작가(누들)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6기

(출처: 해녀의 부엌 페이스북)

바깥 활동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서울 곳곳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오래된 골목엔 공사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어떤 건물은 머무른 시간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무너지고 그 자리를 전혀 다른 건물이 채우는가하면 또 어떤 건물은 모양과 구조를 약간만 바꿀 뿐 뿌리를 그대로 내리고 있다. 그렇게 탈바꿈된 건물엔 음식점, 카페, 상점 등 다양한 취향과 특색을 담긴 곳이 속속 들어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취향도 다양하겠지만, 나는 많은 경우 어떤 사람과 공간이 갖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숨겨져있는 고유함을 발견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곳은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고 더 자주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네모 반듯하게 비슷한 건물보다 조금 낡고 불편해도 어딘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곳, 서툴고 평범해서 더 정이 가는 이야기. 대개 이런 정취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고유함을 꾸준히 지켜나가려고 할 때 더 잘 드러나고 또 유지된다. 


도시재생에서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내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하고, 그 일이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어야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공공 주도의 도시재생이 다 나쁘기만 한 걸까? 그렇지 않다. 도시재생은 특히 공공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여러 복잡한 행정 절차를 밟고, 민간에서는 쉽게 알 수 없는 정책정보를 빠르게 파악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등 마중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렇게 도시재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 그 다음은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각자의 고유함을 살리는 여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언제나 좋은 레퍼런스가 있다.



Humans of Seoul

Humans of Seoul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시리즈다.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다. ‘신문에서 보는 유명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진솔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섭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면서 종종 잊곤 하지만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행복, 슬픔, 용기 등에 대해서 물었고, 그때마다 모두 똑같아 보이던 낯선 사람들에게서 고유한 이야기들을 발견해 왔습니다.’ 읽으면서 코를 훌쩍이거나 눈물을 훔칠 때가 종종 있는데, 매주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는 시리즈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할 때 흔히 하는 오류 중 하나는 대단히 대단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엄청난 우여곡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Humans of Seoul은 그런 통념을 보기 좋게 넘어선다. 도시재생은 그 지역을 이루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은 제주도 종달리에 터를 잡고 있다. 해녀의 삶이 녹아있는 공연과 함께 해녀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국내 최초 ‘제주 해녀 다이닝’이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 주민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이 그 해결에 직접 참여하며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 제주에서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해녀의 삶을 주제로 하는 짧은 공연에서는 눈물 콧물이 쏙 빠졌고, 제주의 식재료로 꾸려진 밥상은 맛도 분위기도 훌륭했다. 해녀의 부엌을 시작한 김하원 대표는 해녀의 딸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어떻게 하면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해녀의 부엌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공간은 과거 해녀의 탈의장이나 어판장으로 쓰였던 유휴 공간을 그대로 쓰고, 공연과 부엌은 종달어촌계 해녀들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청년 예술인들이 함께 꾸려 에너지가 넘친다. 지역의 문제점을 조금씩 해결하면서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는 멋진 시도다.


알맹상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된 현대사회에서 마을을 이루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만큼 어렵고 도전적인 일도 없다. 하지만 살면서 언제나 아군은 필요한 법, 삶의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만큼 강력한 것도 역시 없다. 알맹상점은 포장 없이 알맹이만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이자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가게다. 망원시장 한 켠에서 시작해 지금은 어엿한 상점이 됐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환경에 최대한 해를 입히지 않고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알맹상점을 찾는 사람도 갈수록 늘어 요즘은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알맹상점 초기에 전국적인 확산을 목표로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스무 곳에 제공했는데 몇 달 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대부분 폐업했다고 한다. 이럴 때 공공에서 유휴공간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을 마련해 줄 수 있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면서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도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치원 도시재생에서 가장 기대하는 점은 무엇보다 청년 서포터즈들의 역할이다. 새로운 사례를 빠르게 흡수하고 이를 실행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고, 지역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파고들 수 있는 문제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지역으로의 탈바꿈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길 기대한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만 남지 않도록 공공과 민간의 멋진 협력이 조치원에서 탄생해 또 다른 지역이 참고할 수 있는 근사한 레퍼런스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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