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승민)_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6기
따릉이로 출근하는 남자.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 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 재미로 프로그래밍을 했다가 수익을 봤다며 가상화폐 투자 경험담을 털어놓는 남자. 36세 이준석의 이야기다.
보라색 드레스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선 여자. 등을 훤히 드러내며 타투의 아름다움과 합법성을 주장하는 여자. 30세 류호정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행동이 유독 가십으로 소비되는 건 아마도 그들의 무대가 여의도라서겠다. 수십 년간 정계에 몸담은 중진들이 주름 잡은 곳을 새파랗게 젊은 남녀가 뒤흔들고 있어서다. 그들에 대한 호불호나 정치적 이슈를 떠나 나는 이러한 돌풍이 몹시 반갑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가 아니었던가. 그간 쌓인 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기분이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씩 머물다 가는 인턴 친구들이 있다. 화창한 캠퍼스 대신 어두컴컴한 이곳의 사무실을 찾은 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현장에 뛰어든다. 인력적인 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개중에 반가운 건 그들의 톡톡 튀는 시선이다. 그네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부장들은 움찔한다. 한 번도 바라본 적 없는 관점,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화법으로 툭툭 내뱉을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도태되어있는지 깨닫는다. 그들의 독특한 시선은 언제나 귀한 자산이 된다.
조치원에서 활동하는 청년서포터즈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세종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청년들과 협업하겠노라 선언했다. 민관의 협업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점은 신선했다. 어느덧 햇수로 5년째다.
조치원엔 역사 깊은 전통시장이 있다. 여행지마다 재래시장을 꼭 찾아가는 습관이 있어서 도시재생사업을 고민할 때도 가장 관심을 두었다. 우연하게도 같은 화두를 고민하는 친구들과 팀이 되었다. 총 6주 동안 그들이 고민해온 결과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빌지만, 2019년 12월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년 반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 1~2일 재택으로 근무해도 업무에 차질이 없다는 걸 대다수 직장인이 깨달았다. 모자란 듯 아쉬운 듯 밤 열 시까지 마시는 술은 되레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불필요한 회식 자리는 앞으로도 거절할 것이라는 사람이 늘었다. 쇼핑과 수업, 만남, 여가 활동, 집회까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비대면이 더는 변화가 아닌 일상이라는 걸 체감했던 아이디어가 '라이브커머스'였다. 라이브커머스란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유튜브 생방송과 홈쇼핑을 결합한 방식이다. 실시간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6월 23일 오후 2시에 조치원 특산물 복숭아 판매!> 라는 식으로 기획한다면 이를 홍보하기 위해 주최 측은 할인이나 혜택을 끼워 넣는다. 짧고 굵게 이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화면 속 진행자 손에 들린 복숭아를 구경한다. 궁금한 건 바로바로 물어본다. 먹어보고 맛을 표현해달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산지도 매출 전표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대형마트나 온라인쇼핑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궁금증을 실시간으로 해소할 수 있다.
라이브커머스를 언급했던 팀은 전통시장의 생동감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되 양방향 소통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싶다며 제안해왔다. 대학생과 맘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긍정적인 선호도를 보였단다.
판매자가 자율권을 지닐 수 있으니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데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 날짜별로 육류, 과일, 곡식류로 나누어 판매한다던가 물건을 매대에 내놓기까지 그 과정을 콘텐츠화시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차별화를 위해 조치원의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다는 말로 매듭지었다. 조치원 특산물인 복숭아를 생방송으로 볼 날이 머지 않았다.
조치원의 캐릭터로 자리 잡은 낮도깨비를 이용해 축제를 만들자는 의견. 특산물인 복숭아로 잼 만들기 이벤트를 개최하자는 의견. 주민들이 직접 판매자가 되는 플리마켓을 열거나 스탬프투어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개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맵핑 프로그램이었다.
잊혀가는 낙후한 이미지의 전통시장 육성을 위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전국상인연합회는 '시장홍보지원'을 꼽았다고 한다. 팀원들은 시장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를 고민했다. 그들이 고른 대상은 어린이였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할 초등학생들이 직접 시장을 찾아간다. 먹어보고, 사보고, 체험해본다. 이렇게 경험한 다양한 장면들은 스티커로 제작된다. 아이들이 붙인 스티커를 기반으로 지도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그 어른역할을 마을 기록가들이 맡는다. 마을 기록가는 경력단절여성이나 취업이 어려운 주민을 대상으로 선출된다. 초등학생들이 따로 시간을 투자해 전통시장을 방문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방과 후 활동이나 사회 과목 수업으로 참여하도록 교육부와 연계한다. 도시재생, 일자리 창출, 현장 체험학습을 한 번에 이뤄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가장 매력적인 건 교육프로그램이 매년 이루어지면서 마을의 정보가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상인들과 접촉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마을에 대한 애착이 형성된다. 아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부모들과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애쓰지 않아도 젊은 세대의 유입이 해결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일회성에 끝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속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즐길 수 있게 전통시장의 고민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가치 있는 시간일 거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전통시장이라니. 상상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