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도란)_한뼘쯤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셨습니다.
전염병의 힘이 좀체 삭지 않는다. 조치원역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와 활동을 시작하면서 활동 기간에 꼭 한 번 조치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 온라인으로 네트워크 행사가 열린다고 했을 때, 조치원과 가까이 살며 자주 방문했던 서포터즈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간접경험에 고픈 상태였다고나 할까.
나와 네트워크 행사가 매칭된 서포터즈 팀은 총 4팀이었고, 최종 참석자는 3팀이었다. 미리 매칭명단을 전달받았지만, 막상 이름을 바라보면서는 은근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아무리 온라인으로 만난다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지?’
젊디젊은 학생들과 조치원이라는 접점 하나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궁금한 게 많은 내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쏟아놓는 건 아닐지, 질문을 쏟는다고 답을 잘 들을 순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엔 드문드문 창밖을 보거나 멍해지곤 했다.
이윽고 네트워크 행사 날, 줌을 통해 회의실에 입장했다. 잘게 쪼개진 네모마다 서포터즈의 얼굴이 떠올라있었다. 다시 소회의실로 분류돼 매칭팀들과 시간을 가졌다.
나와 매칭팀들의 활동 분야는 사업권역 내 상권 활성화 방안 탐구였다. 조치원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상상하는 나와 달리 조치원역 일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제안까지 한 그들이었다. 들어볼 만한 게 많을 터였다.
J팀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벽화를 그리고 벽화를 따라 이동하며 구경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소비자 편의를 위해 주변 교통정리와 주차장 여건 개선을 제안할 정도로 꼼꼼함도 보여줬다. 또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이들이 많아진 데서 착안해 밀키트 제작도 제안했다.
M팀은 중장년층 위주의 소비층에 청년을 유입시키기 위해 행사, 공연 등을 유치하고 테마가 있는 장날을 제안했다. 조치원을 방문하는 이들은 여행의 목적보다 교통편 환승 목적이 큰 편인데, 그런 목적이 없어도 즐겁게 방문할 수 있도록 역사부터 전통시장까지 테마를 입혀 컨텐츠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들은 테마가 있는 상업지역을 조성해 조치원이라는 지역의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춘천 하면 닭갈비, 부산 하면 자갈치시장을 떠올리듯 조치원을 떠올리면 따라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테마가 있는 장날이었다.
H팀은 조치원역 인근 도시 숲과 상권을 함께 활성화하기 위한 ‘그린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했다. 청과물 거리와 도시 숲과 조치원역 세 가지 요소를 엮어 조치원의 랜드마크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아이디어였다.
세 팀의 아이디어는 누가 들어도 혹할 만한 아이디어였다. 각자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내려면 조치원역 일대를 얼마나 방문하고, 걷고, 이야기하고, 바라봤을까.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던 학생들의 눈길은 조치원역 일대와 상업지역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그리고 재미있는 경험도 쌓였다.
“조치원역 주변 상업지역을 돌아다니는데 익숙한 화장품 로드샵 브랜드가 있어서 들어가 봤어요. 그런데 그 브랜드의 화장품만 파는 게 아니라 양말이나 생필품도 같이 파는 거예요. 얼핏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풍경 같으면서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어요.”
핑크빛 공주풍 화장품을 파는 로드샵 매장에서 양말과 생필품을 파는 조치원역 일대의 가게라니. 누군가는 경악할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화장품을 사러 간 김에 양말도 하나 사서 갈아신고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재미있는 경험은 또 있었다. 그린네트워크를 제안한 H팀의 경험담이 이어졌다.
“그린네트워크를 제안하기 전 청과물 거리 활성화에 의견이 모였어요. 저희가 봤을 땐 청과물 거리에 문 닫은 가게가 많고 활기가 없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작 그분들은 청과물 거리가 잘 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은 만족스럽게 장사를 하고 계시는데 저희는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예요.”
전통시장은 낡은 것, 그곳의 상인들은 대개 도움이 필요할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새겨온 선입견 속에서 조치원의 상업지역은 활성화가 필요한 죽은 거리였지만, 정작 상인들에겐 즐겁고 만족스러운 생계의 터전이었다.
서포터즈 학생들은 조치원역 일대 건물의 낡은 모습, 수수하게 차려입은 상인들의 겉모습만으로 단순히 장사가 안될 거라 생각한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흠칫했다고 한다. 오래된 상업지역의 설비와 환경이 불편할 거라 짐작한 것 역시 상인들에겐 전혀 어려움이 아니었다고 한다.
생각지 못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마주한 학생들은 인터뷰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상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만 접근하기 위해 조심스레 행동했다.
현장에 있지 않은 이상 결코 알 수 없었을 학생들의 ‘찐’ 경험담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에서 이미 조치원에 발을 들였다. 문을 닫은 듯 가게를 열어놓은 듯 경계를 알 수 없는 고요한 청과물 거리와 전통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한다. 양말을 파는 화장품 가게도 기웃거린다. 상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못한 안부도 학생들을 통해 걸어본다.
‘요즘 장사는 어떠세요?’
‘공실 때문에 걱정이 크지는 않고요?’
‘올해 장마는 왠지 빨리 오는 것 같지요.’
‘내년, 이 무렵 조치원역 주변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안부를 물으면 아마도 청과물 거리의 상인은 잘 익은 수박을 통통, 두드려 세모 조각으로 잘라 내어주며 이렇게 대답을 하지 않을까.
‘수박이 이렇게 잘 익었고, 과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사박사박 끊이지 않는데 걱정은 무슨.’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현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서포터즈 활동은 이력서에 빛나는 한 줄이자, 사회에서의 활약을 미리 맛보는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도움과 성과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동안 섣불리 타인을 판단한 건 아닌지 돌이켜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짐작보다 중요한 건 대화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런 과정은 숫자로 적어 내리는 성과보다 소중하다. 평소 같으면 오래도록 말을 섞을 관계가 아니지만 서포터즈라는 계기로 낯선 이들과 오래도록 이야기할 수 있던 귀중한 시간 역시 이때가 아니면 언제 통과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봄부터 여름으로 이어진 조치원역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의 이마에는 값진 경험에서 빚어진 땀이 송골송골 맺힐 터다. 활동이 끝날 무렵에는 한 뼘쯤 더 어른의 세계에 진입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계절을 통과하며 뜨겁게 고민하고 순수하게 마주했던 경험의 이력에 축복을 보내며.